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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노자가 말하는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익혀, 내 삶에 구현하며 '노자적 삶'을 살자는 거다.

194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3일)

 

인문학은 말한다. 반드시 알아야 세상의 가지 법칙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인문적 삶이다.

  1. 세상에는 카르마()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으면 벌을 받는 순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운이 좋아 이번 생에 죄값을 받았다면 후손이나 다음 생에 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1법칙은 업보 쌓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왜냐하면 내가 벌하지 않아도 상대가 계속 죄를 쌓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를 거다.
  2. 세상의 모든 거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내야 한다. 스타일로 말하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공짜로 얻는 없고 어쩌다 운이 좋아 뭔가를 쉽게 얻었 어도 신은 때가 되면 값을 받아 가기 마련이다.

 

법칙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 자신만의 원칙들을 실제 일상에 가지 정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착하게는 살아도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항상 정당한 비용을 내려고 노력한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상대에겐 사소한 부탁도 한다. 모든 은혜는 어떤 식으로 든 갚아야 하기에 마음의 빚을 함부로 쌓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인문정신이다. 그리고 이런 인문정신으로 살자고 외치는 사람이 인문 운동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 <도덕경>> 공유하는 거다. 노자가 말하는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익혀, 삶에 구현하며 '노자적 ' 살자는 거다. 오늘 읽을 12장은 후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바뀌며 극에 이르다가, 지난 2 전부터 코로나-19 우리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아쉬운 것은 거의 2500 전에 노자가 이미 우리들에게 말해 주었는데, 공부를 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자가 12장의 전문을 우선 공유한다.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는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말달리며 들사냥질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가 되지 눈이 되질 않는다. (성인은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원문은 이렇다. 한문을 아시는 분은 꼼꼼하게 길을 주면 흥미롭다. "", "", "", 운율이 느껴진다.

 

五色令人目盲(오색령인목맹)

五音令人耳聾(오음령인이롱)

五味令人口爽(오미령인구상)

 

馳騁畋獵令人心發狂(치빙전렵령인심발광)

難得之貨令人行妨(난득지화령인행방)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 不爲目(불위목)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이같은 인문적 지식을 듣고 배워 익힐 차례이다. 일상의 삶에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이다. 오만 가지의 색깔(오색), 오만 가지의 소리(오음), 오만 가지의 맛(오미)는 사람을 도(, 삶의 원칙과 문법)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말을 달리면서 하는 사냥(치빙전렵, 오늘날의 스피드광적인 형태들)과 구하기 힘든 재물(난득지화)도 사람의 행동을 번잡하고, 광포하고, 방자하게 만든다. 재물이 많다고 삶이 도()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을 비울 때 도에 가까워진다. 성인은 배를 위하되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삶의 본질적 요소와 비본질적 요소를 구분하라는 의미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거피취차(去彼取此)도 같은 맥락이다. 버려야 할 저것은 많은 재물, 많은 음식과 같은 비본질적인 것이고 취해야 할 것은 소박하고 단출한 생활, 즉 삶의 본질이다.

 

새로운 교육문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문법은 능력주의였다. 인간의 좋은 품격이나 좋은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경쟁에서 이겨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점수를 올리는 기법에만 몰두하는 문법이었다.그런데 우리 교육은 1990년대 이후 훌륭한사람,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나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서 행복한사람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행복의 내용이었다. “큰 집은 필요 없어, 적당히 30평짜리. 좋은 차 필요 없어, 3,000cc.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냐.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녀오는 정도면 돼.” 이 말을 잘 들여다보면, 이런 행복의 실체는 우리 사회에서 고용의 불안이 전혀 없고 수입이 상당히 보장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이다. 소박하다고 말하는 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노자적 삶과 학교 문법이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늘 고맙습니다/작자미상

 

멋진 사람이 되지 말고

따뜻한 사람이 되세요.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 줍니다.

 

잘난 사람이 되지 말고

진실한 사람이 되세요.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어 지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어 집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세요.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줍니다.

 

인도의 르타(rta)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이 르타가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 적용되면 다르마이고, 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적용되면 카르마이다. 다르마와 카르마는 중국으로 들어가 '법(法)'과 '업(業)'으로 번역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욕심을 버리고 의로움에 헌신하는 다르마! 한 사회가 순리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 사회의 약자를 인식하고 그들을 헤아리는 마음인 '연민'이다. 그래야 '법'이 서고, '법'이 서야 사회가 순리대로 작동한다. '다르마'는 인간의 옳음이다. '옳음'이란 자신의 양심이 자신에게 해가 되더라도 그것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내적인 훈련이자 원칙이다. 이 양심인 옳음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터무니없고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옳은 양심을 행하는 것이 다르마, '법(法)'이다. 이 법이 '자연'일 있다.

 

아시아에서는 예부터 '오행(오행)' 원리에 따라 '오복', '오륜'이니 '오관'이니 하는 것처럼 많은 것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습관이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도 '오색' , , , , 흑의 다섯 가지 색깔만을 뜻한다 기보다는 '여러 가지 색깔'이라는 뜻이다. 오음(, , , , ) 오미(신맛, 짠맛, 단맛, 매운맛, 쓴맛)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음률, 여러 가지 맛을 말한다.

 

12장은 감각적 문명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광기에 대해 이토록 적나라한 비판을 접하기 힘들 것이라고 도올은 강의에서 말했다. 감각적 자극이 때로는 스트레스를 풀고 우울증을 흩날리는 유용한 측면도 있지만, 문명의 욕망은 결국 인간을 더욱 자극에로 휘몰아가며, 인간은 삶의 길을 잃게 수도 있다는 경고이다.

 

왕필의 주석으로 달고 있는  다음의 내용은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우리 신체의 감각가관, 이목구비심(이목구비심) 모두 본래적 성질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본성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그러한 것을 해치게 되면, 멀고, 멀고, 입버리고, 미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어지는 야기는 내일 이어간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