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70%는 내 의지와 관계 없이 그냥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내 뜻대로 안 된다. 각자에게 힘든 그 부분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남은 30%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문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타인의 70%를 가지고 탓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다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30% 정도만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 이 30%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으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이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딸과 3월의 영화로 <히든 피겨스>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바로, 언제가 읽은 위의 내용이 생각났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그냥 주어진 우리 각자의 70%를 가지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알 해리슨으로 등장하는 캐빈 코스트너는 "수학만 잘 하면, 인종도 성별도 개의치 않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심어주어는 그 가치가 돋보였다. 그러나 캐빈은 영화에서 인종차별주의자라기보다 무지때문에 차별을 방치하는 쪽의 모습도 보였다. 차별 앞에서 모르거나, 중립을 치키는 것은 차별주의자와 똑같다.
생각나는 대사들이 몇 개 된다. "나사에선 모든 사람의 소변 색은 똑같아!" "세상의 부조리를 부순다." "나사가 여성에게 일을 맡긴 이유는 치마를 입어서가 아니라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숨겨진 인물들>로 해석되는 이 영화는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인종차별이라는 고루한 제도가 공존했던 1960년에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던 세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며 나 또한 '내 안의 차별 의식'을 되돌아 보며, 더 깊은 인문정신을 지니게 해 주었다. 내 의지와 관계 없이 갖고 태어난 것을 가지고 차별하고 무시하며 배제하는 것은 참 나쁜 짓이다. 인종 차별, 성 차별, 지역 색 등등.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여권신장운동과 흑인인권운동으로 뜨거웠다. 다시 말해 그 시절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중의 차별에 맞서야 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한창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던 1960년대 초반,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 소속 세 여성 캐서린(타라지 P. 헨슨),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메리(저넬 모네이)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소평가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 천재 캐서린은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임시직으로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백인 남성 동료들은 캐서린을 동료로 여기지 않으며 사물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도 꺼려한다.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도로시는 부서 관리자로의 진급을 요구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맛보고,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메리 역시 백인들만 입학 가능한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지만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법을 바꿔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히든 피겨스>는 백인 남성 위주로 쓰인 미국 나사의 역사를 새로운 판본으로 서술한 것이다.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에서 핵심 업무를 수행한 실존 인물 캐서린 존슨과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 등 ‘숨은’ 공로자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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