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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192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8일)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서울 강의를 위해 무궁화로 기차여행을 한다. 기차 안에서 아쉬움 없는 대통령 뽑기 선거를 위해, 마지막 밭갈이하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인문학자로 입을 다물고 있을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인문 일기>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 이유나 설명은 하지 않는다. 개인 생각으로 정말 윤석렬이라는 후보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데, 일부 세력들은 야단이다. 특히 주변의 노인들은 말도 부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함량미달의 윤석렬과 어렵게 싸워야 하는지 설명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SNS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인문 운동가로 감은 잡고 있었지만, 정리하여 말하지 못했다. SNS 지적에 의하면, 윤석열은 이재명과 싸우고 있지만, 이재명은 지금 윤석열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사법개혁으로 수십억 전관예우가 박살 날 2500명의 검사, 3000명의 판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2. 이재명은 윤석열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개혁되면 막대한 이득이 사라질 신문 2만 명, 방송 2만 명 정도라는 '기레기(기자+쓰레기)'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3. 이재명은 야당인 <국민의 > 하고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예산권을 빼앗겠다는 기재부 모피아(재무관료( 재무부를 뜻하는  MOF 마피아의 합성어), 에너지 대 전환하겠다고 원자력 마피아, 모든 인,허가를 쥐고 나라를 주물딱거리던 고위관료들과 싸우고 있다. 군인관료하고 싸우는 건 덤이다.
  4. 개혁을 원한다면서 온갖 도덕적 잣대 함몰된 좌파 먹물 서생들은 이재명의 도덕성이 윤석열을 압도하지 못하니 여론조사에서 밀린다고 한다. 인구 1억2천 일본의 정치 여론조사 회사가 20개, 7천만 프랑스가 13개인데, 인구 5천만 대한민국은 76개나 된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여론 조사 기관들이 기득권의 돈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이렇게 불리하고 편파적인 전쟁터에서 필사적으로 이기고 있다. 최소한 밀리지는 않고 있는 것이 기적인 것이다.
  5. 230만 명의 부동산 다주택자와 싸운다. 이것이 성남 시립병원 설립을 기치로 무상 교복 무상생리대 청년배당 등등 서민을 챙겨보겠다고, 아등바등 기득권과 싸워 온 대한민국 정치인이 마주한 마지막 전쟁터의 현실이다.

 

이번 선거는 해방이후, 친.일 세력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윤석열로 총 결집한, 조금은 힘든 대선이다. 이 고비를 넘으면 대한민국은 정치를 포함해서 단숨에 30년은 발전한다. SNS에서 퍼온 글이지만, 내 생각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지금 우리는 결단의 순간 앞에 있다. 사람이든 집단이든, 인생을 걸든 집단의 명운을 걸든 결단을 내리고 선택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할 , 행동하지 못할 나약하게 포기하고 "우리는 안될 거야" 지레 머리를 긁는 순간, 집단 전체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선택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정치 리스크는 혐오와 계급주의, 배금주의가 습관화 된 이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박선화 교수의 멋진 통찰을 언급하지 않을 없다. 결국 말이 아니라 일관성을 갖고 드러나는 습성을 잘 포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교수가 담벼락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설득력 있는 쓰는 교수가 부럽다.

  1. 국힘의 당대표는 여성을 대놓고 혐오하는 이다.
  2. 국힘 언론특보에 올랐다가 9일만에 해촉된 윤서인씨는 독립유공자 멸시로 논란이 되었고, 평소에도 약자나 없는 자들을 조롱하는 이다.
  3. 역시 국힘의 선대본 특보 신광조라는 이는 “광주.전라도인들이 오기만 똥구녘까지 찬 거렁뱅이 인생들”이라는 글을 페북에 썼다 들켰다 한다.
  4. 대선 후보인 윤석열씨는 “거 뭐 40년 전에 민주화 위해 데모 좀 했다고~” 하며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던 모든 이들을 대놓고 모욕한다.

 

"힘들어 못살겠다고들 하지만, 일제 시대에 비하면, 독재 시대에 비하면 백배 천배 좋은 세상이다. 친일로 먹고 살거나 권력에 붙어 살았던 이들 눈에야 못난 것들이 기어오르는 재수 없고 짜증 나는 세상이 되었겠지만.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온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마움은 모를지라도 독립유공자를, 민주화 인사들을, 여성과 내 딸들이 이만큼이라도 살게 만든 페미니즘을, 대한민국 민주화의 보루인 지역민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은 상식 있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국힘은 이런 인사들로 가득찬 당이고 보수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도 진보/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무개념 부패당”과 “보수화 되어가는 못난당”의 대결이다. 그 주변에 발전 없는 진보당과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적 엘리트가 폭파시킨 당과 군소당들이 있다." 정치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다시 촛불 정신으로 시작하는 거다.

 

윤석렬 후보 개인도 문제가 많다. 아침에 만난 중에는 류근 시인이 주장하고 있다. "그는 특수부 검사로 근육을 키우면서 세상의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특권의식과 비틀린 가치관을 절대선으로 믿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겁박합니다. 거짓말과 상말과 혐오와 증오가 일상화돼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와 애정이 거세돼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아예 모릅니다. 인간적 품위에 대한 성찰이 전무합니다. 오직 권력만 차지하면 그뿐입니다. 지금 그와 그 부인, 처가에 얽힌 비리와 범죄 혐의가 100~170여 가지입니다. 본인, 부인, 장모의 전과가 0입니다. 대단한 집안입니다. 검사 빽으로 이 정도인데 이제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10원 한푼 손해끼친 적 없다"는 도덕성으로 무장한 채 거짓말에 대한 죄의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불길합니다." 그래 잠이 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짐승과 악마들에게 표를 달라고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의지가 있는 분들은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온갖 거짓 정보에 속아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에도 윤석열은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 아직 일굴 수 있는 밭이 많다는 뜻입니다. 1표만 더 가져오면 이깁니다." 그래 글을 <인문 일기>에서 공유하는 거다.

 

"다시 또 세월호 참사를 초래하고 방관하는 무능 정권을 견딜 수는 없습니다. 경제 폭망, 주가 폭망, 민생 폭망, 안보 불안, 신변 불안에 시달리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 정견은 하나도 없이 상대 후보 욕이나 하다가 대통령 되는 나라가 가당키나 한가요? 국격에 맞는 선택이 옳습니다."

 

이번 선거판에서, 우리는 야합(野合) 정치, 배신의 정치에 신물이 났다. 국민의 당이 국민 먼저 버리고, 국민의 힘에 안긴 것은 검찰권력이 국민보다 높다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굳센 의지를 투표로 보여주어야 한다. 선택해야 한다. 삶은 선택이다. 비전 없는 무대뽀, 막가파식 정권 교체이냐, 국민통합 정치 교체이냐? 집권  자체가 목표인 야합이냐,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통합이냐? 대립과 반목의 정치이냐? 상생과 협력을 위한 정치이냐? 선택해야 한다. 그래 오늘도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거다. 대신 오늘 아침 시는 짧은 것으로 공유한다.

 

마지막으로 인문 운동가의 입장에서, 분노와 복수로, 분열을 조장하는 마음으로는 리더가 없다. 리더가 되는 것은 표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칼을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다. 인문 운동가의 견해이다. 우리 사회가 심각하다. 성질 못이기면 산에 놓고, 사람 망치로 까고 이건 돈과 이념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국민 정서 순화를 위한 인문학이 매우 필요하다. 엄벌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없다. 선거 후에 일이 너무 많다.

 

 

짝사랑/김병훈

 

한 사람을 알고부터

내 스스로가 선택한 가장 아름다운 고통

 

 

글이 길어지고, 문해력이 필요한 철학적 담론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다' 말이 있다. 말이 중요한가 하면, 의식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게 하는 거다. 자신의 계급을 잊게 한다는 거다.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계급은 노동자인데 의식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처럼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어려운 말로 하면, 이유는 '존재' 대한 철학적 인식이 부족해서이다. 말은 마르크스가 유물론에서 제기했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말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존재론에서 존재의 형성에 있어, 주체의 형성과정을 유물론과 관념론은 상반된다. 관념론에서 데카르트의 코키토(존재) 인용한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에서 생각하는 나는 물질적 관계 속에서 아니라, 관념에서 정립되는 주체로, 스스로 주체를 규정한다. 내가 누구인 가라는 관념적 사유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이다. 반면, 유물론에서 주체의 형성은 철저하게 관계로 해석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체가 형성된다. 나는 내가 규정하는 나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예컨대, 나가 노동자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로 관계 지어질 노동자로 존재가 규정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임을 거부하게 만드는 편견이 우리 스스로의 존재감을 이질화 시킨다. 한국 사회의 노동 경시 문화 때문이다. 노동, 노동자 경시 풍조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 자신의 계급을 부정하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노동자로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게 만들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 스스로 자신 있게 노동자라고 선언해야 한다. 노동당 지지하는 것으로는 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요구해야 한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은 개인 요구의 반영 이라기보다 사호공공성 확충을 요구한 공화주의 이념이다. 자유와 평등 의식과 함께 연대와 인권 의식을 전제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 의식이 부재한 탓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면, 수구기득권 세력은 바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니 좌파적 발상이니 하는 논리를 편다. 빨갱이로 몬다. 북한으로 가라고 댓글을 단다. 그것은 바로 수구기득권 세력이 민주공화국의 기본인 사회공공성, 공익성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 뜻하며, 바로 그들이 분단이후 반세기를 넘는 동안 민주공화국을 철저히 배반하면서 사익을 추구해 왔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누구나 듯이 남한에서 친일파로 불리는 일제 부역 세력은 청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아니다. 바로 그들이 이른바 민주공화국의 모든 공적 부분을 장악한  헤게모니 집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분야에서 지배세력 자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민족적 정체성을 가질 없었던 그들은 강대국의 (특히 미국의 ) 빌려 비어 있는 일부를 채웠고, 그들은 좌우 분단구도를 타고 '보수' '민족' 참칭함으로써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여기서 '참칭(僭稱)'이란 말을 강조하고 싶다. 말은 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임금이라고 칭하거나, 분수에 넘치는 칭호로 스스로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사적 이익이나 일신을 위해 민족을 배반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민족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적 이익 추구에 열심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가 독재에 의해 유린되었기 때문이다. 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냉전의식에 바탕을 색깔론과 지역 패권주의(지역 강화) 도움이었다. 게다가 교육과 언론을 장악한 지배집단은 이를 이용하여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주입시켜 형성 시켰다. 오랫동안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는 의식화를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데카르트의 존재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래에서 의식하는 존재로서 그러나 인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칸트는 인간은 의식하는 존재이긴 하나 자유롭게 의식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했다. 의식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집안, 어떤 교육, 어떤 사회 환경이냐에 따라 인간의 의식은 규정된다고 했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함으로써 의식을 규정하는 출발점이 존재 자체임을 명료하게 주장했다. 지금은 교육과정과 대중매체에 의해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거나 부정하는 의식형성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사회구성원들을 자발적으로 종속되도록 노예화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일제침탈, 분단, 전쟁과 독재로 이어지면서 의식 주입과 세뇌가 이루어져, 이젠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자기 존재의 요구조차 스스로 거부하고 부정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태극기 부대들의 대부분이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말은 자본가는 자본가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본가의 의식을 갖고, 노동자, 농민은 노동자, 농민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노동자, 농민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계급적 존재가 계급의식의 당연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명제가 한국에서는 배반 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자신의 계급을 잊고, 자본가와 수구 기득권에게 투표를 한다. 아니다. 나이 일부는 냉전의식화, 안보의식화, 질서의식화, 친미사대의식화, 물신숭배 의식화, 지역감정 의식화 까지 이루어져 있다. 그래 수구 보수 기득권의 노예로 산다.

 

오늘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탈의식화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벗어내야 한다.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의식을 지워야 한다. 자기 존재에 상응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도 강조했듯이 사람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조차 무지와 헤게모니(패권, 覇權 지배권) 작동에 의해 고집한다. 진보가 되고 느리고 어렵고, 불편한 까닭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진보의 길이 어려운 아니다. 어렵기 때문에 진보인 것이다. 건너  가기는 불편하다. ? 지금 있는 곳이 편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이기고 건너가야 , 자신을 주체적으로 아니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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