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5일)

3월 들어 첫 토요일이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춥지만, 한 낮은 봄바람을 느낄 수 있다. 드디어 나는 오늘부터 주말농장에 나갔다. 땅을 갈아 엎고, 퇴비를 뿌리고 왔다. 내 밭 옆 동료는 벌써 튤립을 심어, 오늘 아침 사진처럼, 새싹이 새의 부리처럼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면, 땅 속에서 얼었던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피어난다. 이게 봄 서리다. 흙은 늦가을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김훈은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라고 말한다. (김훈, <자전거 여행 1>) 풀 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이 올라온다. 이건 놀라운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경이(驚異)이다.
이런 경이 속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즐거운 낮잠을 잤다. 그러다가 오후에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국민을 기만해 정권을 잡고 정권을 연장하려는 잘못된 무력 패거리들의 버르장머리를 제가 확 뜯어고쳐 주겠다"면서 시민들을 향해 "버르장머리 없는 머슴들을 이번에 갈아치워 달라"고 호소했다. 문맥 없이 잘라낸 언설이지만, 참 걱정이다. 마음이 출렁거렸다.
정치권의 갈라치기 패거리 문화가 가장 심각하다. 동네에서도 그렇다. 내 편, 우리 동지만 맹목적으로 챙기고, 상대를 배척하고 멸시하는 낡은 폐습이 지배하는 정치문화의 폐해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나도 크다. 가장 시급한 것이 존경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나부터 바꿀 생각이다. 어쨌든 이번 주면, 길고도 지루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전이 막을 내린다. 오는 9일 밤이나 10일 새벽엔 새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후보들이 출마한 대선'이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어쨌든, 누가 됐든 오는 5월부터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우리 국민은 향후 5년간 동거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옭아맸던 비호감 이미지를 일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낙선한 후보를 위로하고 함께 선거운동을 펼쳐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표시하는 것으로부터 ‘존경 문화'를 세우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마음을 잡았다. 어떻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나서 이다. "때때로 사람들이 보내는 비판, 질투 혹은 도발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말주변이 없거나 용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지 무지한 사람이 말할 때, 똑똑한 사람은 웃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경멸을 받을 때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무지한 사람들이 질투하고 비난할 때, 현명한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웃어 넘긴다. 왜냐하면 결국 무지한 사람들은 본인의 무지함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난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비난은 자존심으로 지탱하는, 미묘하고 개인적인 균형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비판이 깊은 무지에 근거한다면, 결코 자존심 상해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설명해도 듣기를 거부하고, 설득 당하기를 거부한다면 조용히 그냥 웃고,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무지함은 편견에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편견은 특히 세가지이다. 종교적 믿음, 정치적 신념, 도덕적 확신이다.
『도덕경』 13장에는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총애를 받거나 반대로 치욕을 당하더라도 깜짝 놀란 듯이 경계하라'는 뜻이다. 좀 풀어서 말한다면, 총애를 받아도 그 총애가 네 것이 아니다. 너에게 있는 어떤 점이 총애를 해주는 사람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 점이 그저 총애를 해주는 사람의 맘에 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것이 달라지면, 총애가 비난으로 바로 바뀐다. 누가 너를 비난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마라. 네가 받은 비난이 사실은 네 것이 아니다. 잘못되었 다기보다도 너에게 있는 어떤 점이 비난하는 사람의 그것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애이건 비난이건 사실은 다 네 것이 아니다. 총애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 표현일 뿐이다. 거기에 좌우되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평판에 쉽게 좌우되는 한 자기 자신은 없다. 좀 비틀면, 다른 사람을 총애하거나 비난하는 일보다도 먼저 자신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도 된다. 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일 대부분은 자신의 맘에 든다는 것 이상이기 힘들다. 어떤 사람을 비난하는 일 대부분은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이상이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없고 자기에게 박힌 특정한 가치만 있는 꼴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확신에 차서 즉각적으로 아주 강하게 상대를 칭찬하고 비난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종교적 믿음, 정치적 신념, 도덕적 확신이다. 최진석 교수의 글에서 만난 것이다. 그 사람과 어떤 수준의 교유를 했고, 어떤 깊이의 대화를 했더라도, 갑자기 맘에 들지 않고 서운한 마음이 들면 자신이 그 사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박힌 정치적이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믿음들에 빠져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를 경계하는 좋은 삶의 지혜를 아침에 만났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람들을 가치관이 아닌 우리에 대한 행동으로 평가"하는 거다. 누구나 각자의 가치관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둔다면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만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존중심을 갖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여러 이점이 있다. 이건 그들의 가치관 때문이 아니다. 나를 수련 시키는 좋은 통찰이다. 특히 함께 하는 공간에 넘지 않을 선을 알아야 한다.그래도 속은 답답하다. 아직 덜 수련이 안 된 거다. 모두를 동무로 받아들일 다짐으로 오늘 아침 시를 공유한다.
어머니 말씀/나종영
배고플 때 양손에 든 떡 가운데
오른손에 더 큰 떡을
동무에게 내밀어 주거라
한여름 동무랑 먼 길을 갈 때
동구 앞 우물에 달려가 네가 마시기 전에
물 한 바가지 동무에게 떠다 주거라
머리 위에 따라오는
뭉게구름의 그늘도 내어주고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도
양보하거라
아가, 동무 간의 우정은 그런 거란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앞의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 본다. 가장 치명적인 무지함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잣대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가 자문해 본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무지함은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주 편협함과 무례함을 보인다. 본인만의 관점으로 다른 모든 이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들이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진실을 변호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1) 조작하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이다. 특히 무지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권력을 휘두르고자 할 때 제재해야 한다.
2)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의 언행, 모욕하는 행위, 비난을 보자마자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정치보복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국 현대정치사는 ‘적폐 청산'이란 꼬리표를 단 정치보복으로 점철돼 왔다. 특히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후임 대통령 정부에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번 대선전에서도 유력 후보들이 정치보복을 암시하는 말을 주고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죄가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죄를 물으면 된다. 문제는 누가 봐도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게 마련이다. 적폐를 가장한 정치보복은 결국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이 됐다. 제20대 대통령은 정치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의 역사적 의무이기도 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새 대통령 하기 나름이다. 반쪽짜리가 되기 싫다면, 진정으로 모두가 윈윈하고 상생하는 나라로 만들려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나만 옳다는 독선, 대선에 승리한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상대 진영을 패자로 몰아붙이는 반쪽짜리 승리로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없다. 대선에서의 승자든 패자든 모두가 승리자가 되게 만드는 정치가 돼야 한다. 이게 존경 문화이다. 다른 이를 존중하는 문화이다. 그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을 갖추게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람들을 가치관이 아닌 우리에 대한 행동으로 평가"하는 거다. 요즘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마치 적대하는 것처럼 느껴 지기 쉬운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가치관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친절한지를 생각해야한다. 결국 가치관이란 지식, 혹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져 다양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란 개인의 교육적, 문화적 맥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남에게 하는 행동이란 그 사람의 공감 능력과 직결된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대하는 방식은 곧 우리의 얼굴이다. 공감 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또한 그 사람의 입장과 우선순위를 파악할 줄 아는 안목이다. 공감 능력은 감정 이입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뉜다. 감정 이입이란 타인의 정신 상태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에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방의 관점이나 정신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말을 들어주고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심리학자는 본다면 우리의 가치관보다는 타인과 어떻게 교류하는지가 인관관계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가치관은 불가항력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비난 받아서도, 칭찬 받아서도 안된다. 인간은 가치관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Percy Bysshe Shelley)
우리는 주변 환경, 세상에 대해 받은 정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해석은 우리만의 것이다. 우리만의 기대치, 욕구와 가치관인 것이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어 필요하다. 이는 즉 우리가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이며 이는 곧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과도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타인의 반응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기 때문에 자의식은 타인에 대한 의식과 연관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행할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위해 타인을 분류할 줄 알아야한다. 이는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적응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들을 잘 분석해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야한다. 우리는 그들과 가까워질지, 거리를 둬야 할지, 혹은 그냥 지나쳐야 할지 알기 위해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을 받을 때 꽃을 피울 것이다.”(Thich Nhat Hanh)
주변에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둬라.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고,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상냥하고 고결하며 애정이 많고 존중 받을 만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한다. 반대로 우리의 방식, 결정, 혹은 세상에 대한 관점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다. 우리와 생각은 비슷하지만 건방진 사람을 곁에 두는게 좋을까? 아니면 생각은 약간 다르지만 친절하고 우리를 아끼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게 좋을까?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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