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22일)

어제까지 읽은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도(道)의 가장 큰 속성은 비움(충, 沖)이다. 빈 그릇, 빈 방처럼 도에는 내용물이 차 있지 않고 비어져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의 시작, 으뜸,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거다. 빈 그릇에는 무슨 음식이든 다 담을 수 있고, 빈 방에는 무슨 물건이든 다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그릇에 물이 담겨 있거나 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 있으면 나머지 것들은 모두 배제된다.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다. 따라서 '도'는 배제가 아니라 수용이다. 그 어떤 것도 내치지 않고 무조건 다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궁은 비어 있기 때문에 생명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거와 같은 이치이다. 빈 타석, 빈 자리도 이 같은 형태로 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타석이 비어 있어야 타자가 들어설 수 있고, 경기는 진행된다. 자리는 비어 있기 때문에 앉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점유된 자리는 앉음이라는 도의 실체, 내용물을 생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비우고 나면 다시 무언가 채워진다. 마음과 물질이 아닌 영혼 깊이 모두를 비워내다 못해 긍휼과 사랑으로 가난하게 되어야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재물이 부자인 사람은 근심이 한 짐이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행복이 한 짐이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이게 <<도덕경>> 제4장의 말이다. 제5장에서도 도의 가장 큰 속성인 비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5장의 원문을 읽어 본다.
① 天地不仁(천지불인) 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 하늘과 땅은 무심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만물을 풀 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② 聖人不仁(성인불인) 以百姓爲芻狗(이백성위추구): 성인도 무심하다. (성인은 인자하지 않다.)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백성을 풀 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③ 天地之間(천지지간) 其猶槖籥乎(기유탁약호):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
④ 虛而不屈(허이불굴) 動而愈出(동이유출) :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생성시킨다. (속은 텅 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내뿜는다.)
⑤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 : 말이 많으면 처지가 궁색해진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 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
이를 오강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시처럼 해석을 한다.
하늘과 땅은 편애(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집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의 바람통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내놓는 것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
중심(中)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첫 문장 "天地不仁(천지불인)"을 말 그대로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천지는 인하지 않다." 이보다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는다"고 하면, 좀 알듯 모를 듯 하다. 나는 "하늘과 땅은 무심하다"는 해석이 제일 마음에 든다.
"天地不仁(천지불인)"과 "聖人不仁(성인불인) "은 노자의 사유체계를 대변 하는 문장으로 자주 인용된다. 도올의 강의를 들어 보면, 여기서 말하는 '불인(不仁)"의 "인(仁)"은 반드시 유가사상을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도올은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유가적 개념이라 말하기 전에 그냥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말로서 이해하는 게 좋다고 했다.
오강남 교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는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는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도올에 의하면, "천지불인"은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좀 더 명쾌하게 이해가 된다. 도올은 천지불인에 대한 왕필의 주석을 소개하였다. 좀 길지만, 천지와 성인, 즉 '도'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유한다.
"천지는 항상 스스로 그러함(自然)에 자신을 맡긴다. 천지는 억지로 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그래서 천지가 생하는 만물도 스슬 서로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불인(不仁)하다고 말한 것이다. 인(仁)하다고 한다면, 반드시 조작적으로 세우는 것이 있고, 베풀어 변화를 주게 된다. 그리고 은혜가 있고 만들어 줌이 있게 된다. 조작적으로 세우고 베풀어 변화를 주게 되면 사물은 진정한 본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은혜가 있고 만들어 줌이 있으면 사물은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한다.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하면 천지는 구비된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천지는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아니한다는 거다. 천지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는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를 향해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조르거나 간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니 도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이기적 요구 사항에 죄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같은 도의 근분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인(仁)을 '사랑'이란 말로 바꾸면, 그 '사랑'이 힘든 거다. 그러나 고 신영복 교수님은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거고,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는 보는 것"이라 말씀 하셨다.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그 '인(사랑)'의 문제를 좀 더 길게 사유해 본다.
사람은 사랑한만큼 산다/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유가의 공자에 따르면 인(仁)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정서이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을 인간에게 하는 정서인 것이다. 공자가 꿈꾸는 세상은 바로 이 인(仁)이 보장되고, 이 인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되는 세상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인'이 제일 중요하다. 나머지 다른 덕목들은 모두 이 '인'을 보장하는 목적에 봉사하도록 기획된 것으로 본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보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주역』의 '건괘'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원(元)'은 으뜸 원으로, 시작함을 나타내고, 형(亨)은 형통할 형으로 번창함을 나타나며, 이(利)는 이로울 이로 유익함을 나타내고, 정(貞)은 곧을 정으로 바르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에 보면, 나무(木)는 동쪽에 있고, 거기 원(元)이라 적혀 있고, 불(火)은 남쪽에 형(亨), 서쪽에 이(利), 북쪽에 정(貞)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는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원기(元)을 상징하고, 여름은 뜨겁게(火) 곡식과 열매가 성장(亨)한다. 가을은 서늘(金)해지면서 수확(利)하는 계절이고, 겨울은 검은 불(水)의 긴 잠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계절이다. 지금은 겨울이고, 코로나-19로 비대면을 요구하고 있는 시기기지만, 계절적으로도 꿋꿋하게 버티는 시기이다.
"원형이정"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라고도 말한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고,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사랑(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절(禮)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正義)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선비를 꿈꾸는 나는 이 네가지 덕(德)을 행하며, "원형이정"의 순환을 마음농사의 도구로 삼고 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본성은? 이런 질문 때마다, 나는 맹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사람의 선한 본성으로 답한다.
-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 잘못을 미워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 (羞惡之心)
- 예의를 지키는 사양지심(辭讓之心)
-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시비지심(是非之心)
맹자는 이 선한 마음으로 부터 유교의 핵심 덕목인 "인의예지(인의여지)가 나온다고 했다. 이 마음을 맹자는 '사단(四端)'이라고 했다.
- 측은지심에서 나오는 인(仁)-사랑
- 수오지심에서 나오는 의(義)-정의
- 사양지심에서 나오는 예(禮)-예절
- 시비지심에서 나오는 지(智)-지혜
우리가 이미 잘 알다시피, 이 '네가지 단서'가 사람의 본성 속에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사람의 '천성(天性)'이라 한다. 이 '사단'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할 마음이다. 그러니까 맹자는 이 네 가지가 사람됨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노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을 말한다. 이 말은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도법자연)" 에서 나온 말이다. 이를 도식화 하면, "인-지-천-도-자연"이다. 사람은 땅에 의지해 살고, 땅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며, 하늘은 그 바른 도리(=순리)에 따르는 것이고, 그 바른 도리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가는 것이다. <<도덕경>> 25편에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법(法)을 '본받다', '법칙으로 삼는다'는 타동사로 해석한다. 그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노자는, 공자처럼, 어떤 정해진 법칙들,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결정하고,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무위(無爲)를 덕으로 여기는 노자가 생각하는 '법'의 의미는 다르다. 사람은 땅 위에서 산다. 그러니까 땅의 법칙을 어기고 살 수가 없다. 먹는 것도 다 땅에서 나오고, 죽어서도 다시 한 줌의 땅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 땅은 하늘을 본받는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땅은 그 생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늘과의 교섭에서 모든 풍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여기서 도(道)는 길(way)이며 사물 운행의 법칙(law)이다. 하늘은 법칙을 본받아 운행하는 것이다. 사계절이 반복되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모두 도이다. 그러한 도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 여기서 자연은 영어로 nature를 뛰어 넘는 개념이다. 도는 그런 자연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自) 그러함(然)'을 본받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험'이 곧 자연이다. 그것은 사람과 땅과 하늘과 도의 궁극적 모습이다. 왕필(王弼)은 자연을 '무칭지언(無稱之言)'이라 했다. '스스로 그러함'은 인간의 언어를 단절시키고, 인간의 모든 인위적 조작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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