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제는 프랑스 샹빠뉴 지방으로 입양을 가 1888년에 창립된 샴페인 하우스의 가업을 이어 받은 두 청년을 생각하며, 가족이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토마 데뤼에(김영현)를 만나 명함을 주고 받은 것은 지난 가을이다. 그는 생후 3개월 만에 프랑스 샹빠뉴 지방의 한 농가에 입양되었다. 아이가 없던 데뤼에 부부는 위탁모 품에에서 자라던 핏덩이 남자아이를 받아들였고, 몇 년 후 토마보다 두 살 어린 남자아이를 한국의 고아원에서 입양했다. 데뤼에 가문에 입양된 토마와 마티아스는 먼 프랑스에서 피붙이보다 가까운 형제의 인연을 맺었다. 나는 토마 동생을 만나 보지는 못했다. 동영상에서만 보았다.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그의 민박집에 가 몇일 보낼 생각이다.
어제 오늘 모두 구정 명절 연휴인데, 우리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다. 아쉽지만, 또 시원하기도 하다. 가족은 양면성이 있다. 그리고 가족의 개념이 옛날과 다르다. 나는 지난해 설 명절부터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말한 것을 올해 설 명절에도 실천한다. 그는 최대한 평소처럼 보낸다고 한다. "저희 가족은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하고, 명절 즈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자기 방식대로 만나고 있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그런데 주변에서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부모님, 친지는 대규모로 떼 지어 다닐 게 아니라 각자 보고 싶을 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례를 없애지 못하는 집안도 있고 각자 처지가 다르지만, 제가 일반적으로 권하는 건 만화를 보며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잘 쉬고 체력을 보강하란 말이죠.”
이런 저런 생각에 어제 오후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고민을 했다. 『사람, 장소, 환대』 라는 책을 쓴 인류학자 김현경은 "출생기록이 철저히 지워져서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입양인들,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왔지만 경찰에 의해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지는 아이들, 그리고 행복해 보이지만 마음 속은 상처투성이인 '정상 가족'의 자녀들, 이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말하였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지난 금요일에 했던 공지영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다. 그래 오늘 아침 더 이야기 하고, 오늘로 그 이야기는 마친다. 나는 다음 이야기에 눈이 갔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무겁다. 버겁고, 굼뜨며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 빙하기가 닥쳐왔을 때 그 거대한 지배자 공룡은 자신의 크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설도 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소수였던 포유류들은 그 작은 몸집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거라 한다. 나도 코로나-19 이후에 깨달었다. 가진 게 없어, 일상의 삶들을 줄였더니, 삶이 버겁지 않다. 전과 다름 없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잘 견디고 잘 산다.
실제 내 주변을 보면, 많이 가지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혼자 생각에, 저 정도 가졌으면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살고, 남과 나누며 살아도 될 법한 데, 신기하게 그러지 못하다. 어쨌든 가지고, 가지지 않고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것은 소유한 재화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그 집착의 정도가 문제일 뿐이다. 나는 가난해 오히려 행복하다. 그래 변방으로 탈주했고, 거기서 원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특히 속이 편해져 내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한 잔의 와인과 <복합와인문화공방 뱅샾62>에 오시는 분들과 나는 행복해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잠시 내게 머무는 것일 뿐, 결코 내 것이 아니니 그것이 내 것이라는 집착을 버리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100살을 넘기신 김형석 교수는 지금도 활동이 왕성하다. 그러나 하시는 말씀이 '너무' 반복되어 지금은 새롭지 않지만, 100살이 넘도록 강의를 하시고 글을 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분이 그러셨다. 100을 살며 되돌아 보니, 인생의 가장 황금기는 65세에서 75세 사이였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았지만 60이 넘어보니, 그 말씀에 동의한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파워 교수가 제시한 인생의 행복 곡선은 47-48살을 최저점 삼아 반등한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선진국의 경우는 47.2살, 개발도상국은 48.2살이다. 이미 여러 연구자료들도 40대에서 50대까지 걸치는 일정 시기를 생애주기 별 'U'자형 행복 곡선의 바닥으로 지목했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예외는 있고, 처한 상황에 따라 바닥의 높이는 다를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부와 건강,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이 시기의 불행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U'자형 행복곡선의 양쪽 끝에는 어떤 연령이 있을까? 통상적으로 왼쪽 끝에는 20 언저리가 놓이고, 오른쪽 끝에는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을 아우르는 10여년이 있다.
왜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일까? 노인의학 전문의인 후이즈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시인 메리 루플을 인용한다. "(늙었다고 남들이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투명 인간이 되는 순간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방의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 스타나 벼락 부자나 석학의 꿈을 버려야 할 시점이 왔다는 냉철한 감각이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중년을 구원한다는 말이다."
공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젊은 시절, 하루라도 젊은 시절의 고난과 고통은 덕이 된다." 그러나 "나이 들어 겪는 고통은 힘겹다. 실제로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서 성장의 동력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체력도 필요하다. 오늘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젊다. 그러므로 오늘의 고통은 당신에게 유익하다. 이 말을 믿는다면 그때부터 기승을 부리던 고통은 약간 누그러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
불평등한 세상이라지만 행복만은 평등하게 주어졌다. 돈이 많다고, 권세가 크다고 더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물욕이 앞서면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알 것을 알지 못한다. 그걸 망령된 마음이라고 한다. 그건 허깨비이다. 이 시를 소개한 [먼. 산. 바. 라. 기.]님의 말이다. 우리 동네 현충원의 아름다운 둘레길에 들어서려면, 오늘 아침 사진의 돌계단을 건너야 한다. 나는 그걸 '행복의 계단'이라 부른다.
행복의 계단/이후재
창문을 넘어온
손수건 한 장 같은 아침
말간 햇살과의 만남이 첫 계단
작은 식탁에 앉아
아내의 손맛에 취해
날마다 감개무량하다면 두 번째
누군가의 초대로 길을 나서며
이웃의 온기 머금은
인사를 받는 것은 세 번째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포시 포옹하는 두 나비에게
배시시 웃음 던지면 그건 네 번째
아, 그러나
탱글탱글한 물상物象 앞에서
소유욕이 돋아나면 그것은 망령
이 번에 또 다른 통찰 한 조각.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랑을 받음으로 서도 해결되지만, 사랑함으로 써도 치유된다"고 말하며 공지영 작가는 성녀 데레사의 말을 소개했다. 인도에서 마더 데레사가 하는 봉사의 의미는 "한 덩이의 빵, 한마디의 따스한 말, 한 번의 부드러운 보살핌의 손길로 생을 완전히 행복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눔은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말에 나는 눈이 크게 떠졌다. 공지영 작가는 17년 째 감옥의 사형수들을 방문하면서, "아무 것 소유하지 못한 그들이 나의 엄청난 소유를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잘 모르고, 남이 많이 가진 것을 부러워 한다. 공지영 작가는 봉사를 하면서 인간이 남에게 줄 때 받는 것이 얼마나 많은 줄을 진정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비우고 나면 다시 무언가 채워진다. 마음과 물질이 아닌 영혼 깊이 모두를 비워내다 못해 긍휼과 사랑으로 가난하게 되어야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재물이 부자인 사람은 근심이 한 짐이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행복이 한 짐이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이,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 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 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나는 청빈(淸貧)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청빈’하려면 만족할 줄 알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청빈의 원래 뜻은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다. 청빈의 반대는 '부자'가 아니라, '탐욕'이다. '탐(貪)자'는 조개 '패(貝)'자에 이제 '금(今)'자로 이루어져 있고, '빈(貧)'자는 조개 '패(貝)'위에 나눌 '분(分)'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탐욕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청빈은 그것을 나눈다는 것이다.
준다는 것은 신비하다. 우리는 주면서 대가를 바란다. 그래 진짜 준다는 것은 오로지 모르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에게만 대가 없이 줄 수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의 파랑새를 쫓느라 발 밑은 바라볼 줄은 모른다. 행복은 멀리, 높이 있지 않다. 내가 내딛는 작은 발걸음에 행복으로 향하는 계단이 놓여 있다. 그저 한 발 내닫기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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