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해부터, 노은의 <소소한 연구소>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에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2>를 함께 읽는다. 오늘 오후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는 독일의 사업가 겸 고고학자였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교외의 목사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풍족한 삶을 물려주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큰 꿈을 아들에게 심어주었고, 아들은 그 꿈을 이룬다. 난 그의 '삶의 기술'에 박수를 보내고, 그처럼, 꿈을 갖고, 그걸 실행하는 사람을 나도 꿈꾸워왔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사실 그가 아니었으면, 오랜기간 신화 속에 잠자던 트로이를 역사적 실재로 깨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의 아버지는 그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단다. "아버지, 아킬레우스는 진짜 있었나요? 오디세우스와 헥토르는요?" 어릴 적부터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세상의 전부였다. 매일같이 트로이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를 찾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단다. "영웅들은 당연히 있구 말구. 저 구름 뒤엔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살았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가보렴." 그 때부터 하인리히의 인생목표는 <일리아드>의 전설을 찾아가는 것이었단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그 꿈을 실현한다.
가난했기에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하인리히 슐리만은 젊은 시절 잡화상 점원부터 선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트로이의 유적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밤에는 공부를 했다. 고고학을 독학하고, 외국어를 습득했다. 그가 외국어 공부하던 방법은 나름 유명하다. 특유의 끈기와 열정으로 서부개척시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는 큰 돈을 벌어 사업가로 성공했다.
1868년 46세에, 그는 드디어 아킬레우스와 영웅들을 만나려고, 과거 트로이 전쟁의 주 무대였던 터키로 떠났다. 그 당시 그의 행동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무모한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왜냐하면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그저 전설일 뿐이고,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던 트로이가 허구의 이야기라는 게 당시의 통념이었다.
그런데 발굴 작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고 나서 하인리히 슐리만의 꿈은 현실이 된다. 오랜 세월 목동과 양떼만 지나다녔던 트루바(트로이의 터어키) 마을의 언덕이 신화 속의 배경이라는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한 소년의 꿈이 신화 속에서 잠자던 트로이를 역사적 실재로 깨우게 된 것이다. 놀랍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가 보다.
그 후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Arthur Evans, 1851-1941)가 크레타 섬에서 크노소스 왕궁을 발견하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실체가 규명된다. 이 왕궁은 그리스 신화에서 반인반수(머리는 소이고 몽뚱아리는 사람)인 미노타우로스가 있던 곳으로 전해내려 온다.
슐리만과 에번스의 노력으로 30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그리스 초기 문명이 역사 앞에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이 문명을 지중해의 에게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에게 문명'이라고 한다. 주경철 교수의 『대항해 시대』를 보면, 해상의 교통을 잡은 문명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중해 문명에서 대서양 문명으로 이동하여 지금은 태평양 문명이 중심이라고 생각된다.


신종인지 변종인지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장악해, 세상이 어수선하다. 그래도 나는 늘 해오던 대로 내 일상을 잃지 않고,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날씨는 춥고, 걸려 오는 전화는 없고, 대부분의 약속이 취소되는 문자들 뿐이다. 그래 오늘은 하루 종일 <미술 이야기>를 읽으며 보낼 생각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장석주
나는 안다, 내 깃발은 찢기고
더 이상 나는 청춘이 아니다.
내 방황 속에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한 번 흘러간 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
내 어찌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 올라
여길 다시 찾아 올 수 있으랴.
ㅡ 쉽게 스러지는 가을 석양 탓이다.
ㅡ 잃어버린 지도 탓이다.
얼비치는 벗은 나무들의 그림자를 안고 흐르는
계곡의 물이여,
여긴 어딘가, 내 새로 발디디는 곳
암암히...... 황혼이 지는 곳.
ㅡ 서편 하늘에 풀씨처럼 흩어져 불타는 새들,
ㅡ 어둠에 멱살 잡혀 가는 나.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_마이크로_칼리지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장석주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덧붙임:
에게문명 다시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구분된다. 에게 문명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통해 여러 지역과 교류하며 유럽 역사상 가장 첫 번째의 문명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해를 위해 다음 지도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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