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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사진 김지유

산책을 하면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은  머리를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배승민이라는 의사의 칼럼에서에서 읽은 것이다. 공유한다. "어느 날 진료시간에 '쉴 때는 주로 무얼 하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유치원생부터 초·중·고 학생까지, 그리고 그들의 부모마저 같은 답을 했다. '스마트폰 보죠 뭐.' 나 역시 업무 뿐 아니라 자투리 시간에도 언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핑계로 좀처럼 폰을 내려놓지 못하지만,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도 세대를 막론하고 천편일률로 단 하나의 방법만을 찾는다는 것은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스마트’하게 쓰지 않는다면 집중력까지 망치기 쉬운 썩은 동아줄 같은 그것이 모두의 유일한 도피처라니 말이다. "

수년 전 <<멍 때려라>>라는 책이 있었다. 그만큼 바쁜 현대인에게 뇌를 쉬게 하는 시간이 얼마나 절실한지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 탓에 아직 말도 못 뗀 영유아까지도 멍 때리는 놀이 시간을 도둑맞고 있는 것 같다. 식당에서 어린 꼬마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의사 배승민의 쉬는 방법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이런 식을 하는 것이다. "주차장같이 꽉 막힌 지루한 고속도로 출퇴근길, 아무리 바빠도 길 위에 갇혀 있는 셈이니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거나 창밖을 보며 쉴 수밖에 없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만 해도 미세먼지 가득한 퀴퀴한 날씨 탓에 창 밖이나 안이나 암울하기 그지없었건만, 요즘은 코로나 시대의 장점일는 지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가도 창틀이 액자로 보일 만큼 선명하게 빛나는 하늘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게 멍하니 낯선 곳에 떨어진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창밖을 보다 보면, 어느새 지친 나를 저 하늘이 가만가만 위로해 주려는 건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든다. 빈부나 지위와 무관하게 우리가 보는 하늘은 똑같은 곳에 있다. 잠시 뇌의 인위적인 과열을 식힐 겸 시간의 흐름이 선물해주는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우리 뇌에 꼭 필요한 ‘멍 때리기’와 함께." (배승민) 나는 늘 다니는 탄동천 산책길에서 멍을 때린다.

이어서  어제에 이어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말하고 있는, "에로스는 로고스를 열망한다. 에로스는 생의 원동력이다"란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에로스 이야기를 하려면,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그가 말한 동굴의 비유를 알아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하찮은 순간이 영원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묶인 채로 진실이 아닌 허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을 속박했던 족쇄를 부순다. '한순간에(suddenly, 불현듯이-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느닷없이)' 낯선 현실을 만나고 고통스러워 한다. 이것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갑자기/한순간에', '결정적 순간'에 일어난다. 이 순간이 우리의 타성과 게으름을 일깨우며 한 곳에 의미 없이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래야 그림자의 허상이 아닌 빛이 일깨우는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