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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습정양졸

189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1일)

인문운동가로 나는 들판의 목동과 같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자식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의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그 예가 목동들이다. 목동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인도해 초원으로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거나 시냇가로 인도해 물을 먹이는 노동자다. 목동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유한 임무를 묵묵히 완수하는 자다. 그는 양떼를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며, 양을 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다. 

그러나 나는 일상의 생계를 위해 묵묵하게 일하는 보통 사람이고 싶다. 지금의 상황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내 일이 있어 좋다. 그러나 가끔씩 그 일을 잊고 주변 사람들과 활동을 한다. 사는 것은 관계와 활동이다. 관계를 해야 활동을 하고, 활동을 해야 관계가 생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꾸준함이 이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걸 '엉덩이의 힘'이라고 부른다.

나는 삶의 플롯을 짜는 씨줄로 생각, 말가 행동을 "지성에서 영성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정주에서 유목으로"(고미숙) 건너가려 한다. 우선 활동을 한다. <우리마을대학>과 <신성마을연구소>를 잘 이어간다. 그리고 자치위원회가 아닌 자치회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 접속을 한다. 그러면서 '우정'을 만드는 관계를 잘 만들고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차이를 생성하기 위해, 올해도 열심히 책을 읽고 배운다. 이를 통해 2022년의 서사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씨줄은 플롯이 되어 자신의 삶의 날줄과 상황에 개입해 고유한 변화의 네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2022년을 꿈꾼다. 씨줄도 없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은 삶에 대한 기만이다. 삶은 자신의 스토리도 없는 사람이 열심히 살겠다는 삶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삶의 날줄을 위해, 일상 속에서 나는 5무(無)에서 5유(有)로 건너가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살아갈 생각이다. 욕심과 탐욕의 세계에서 안빈낙도하는 만족과 소유자족의 세계로, TMT(too much talk)의 세계에서 침묵의 세계로 건너가 3분의 2법칙(주어진 대화 시간의 3분의 2를 듣고, 나머지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데 쓰기로 한다)을, 초조와 조급함의 세계에서 여유의 세계로 건너가 삶을 존 더 향유를, 투덜거림의 세계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세계로, 하소연이나 푸념의 세계에서 삶의 양명성을 받아들이는 세계로 건너는 습관을 굳히는 2022년이 되고 싶다.

올해는 글을 짧게 쓸 생각이다. 이어지는 생각은 블로그로 옮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그리고 올해도 매일 시를 한 편 공유할 생각이다. 아침 사진은 제주도 사계 해수욕장 바다에서 찍은 거다. 운 좋게 제주에 갈 때마다 해를 만난다.

바람과 나/주광일

나는 작고 약한 사람.
그래서 가벼운 사람.
그러니 나더러 가볍다고
나무라지 마셔요.
어려서부터 나는 늘 바람을
닮고 싶어 했기 때문이에요.

바람이 무거우면
바람일 수가 있나요?

오, 바람의 가벼움이여.
도저히 닮을 수가 없는
나 어릴 적 꿈이여.


2022년을 시작하며, 일상의 지표로 삼을 사자성어(四子成語)를 다섯 개 선택했다.
(1) 습정양졸(習靜養拙)
(2) 화이불창(和而不唱)
(3) 승물유심(乘物遊心)
(4) 외천활리(畏天活理)
(5) 명철보신(明哲保身)

'습정양졸(習靜養拙)'은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靜)'과 '졸(拙)'은 한 통속이다. 졸은 '고졸하다'라고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는 말이다. 도자기 가게에 가면, 기계에서 찍어 나온 듯 흠잡을 데가 없이 반듯반듯하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가진 도자기는 상식적이라 눈길이 안 간다. 뭔가 균형도 잡히지 않은 것 같고, 어딘가 거칠고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구수하고 은근하고 정답고 살아 숨쉬는 듯한 것이 마음에 끌리고 편하게 느껴진다. 그게 내가 '키우고 싶은 '양졸(養拙)' 이다.

그리고 정(靜)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빈곤의 심리'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그 반대가 '풍요의 심리'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이다. 이런 빈곤의 심리는 배타주의를 낳고, 풍요의 심리는 포용을 할 줄 알게 된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의 우상은 출세"라 했다. 출세는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치환됨을 알기에 사람들은 출세에 집착한다. 출세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고요함을 잃게 된다. 고요함을 습관들이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습정양졸'의 정신이 필요하다. <<장자>>에 "감어지수(鑑於止水)"라는 말이 있다. '흐르지 않고 고요한 물에 사람들은 거울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본다'는 말이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춰 볼 수 없는 것처럼 고요함이 없는 마음에  우리의 모습은 비쳐지지 않는다.

내가 바쁜 와중에도, <<장자>>를 함께 읽는 이유는 저마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다를 뿐, 틀린 인생은 없다는 생각에서, 조금 다른 삶을 꿈꾸기 위해서이다. "물 한 바가지 붓는다고 바닷물이 넘치지 않는다.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억지로 바꾸려 든다고 바뀌지 않는다. 본성이 그렇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산속에 들어가 도 닦고 신선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말이다."(강상구, <<그때 장자를 만났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훌륭하게 실천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리라고 충고한다. 배교수는 이런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공유한다. "행복한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곁에서 얼쩡거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타인을 험담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 않습니다." 다윗이 <시편> 제1편에서 한 말이라 한다. 자신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라는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 나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도, <평정심에 관하여> 재7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사람을 선택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부여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부동심(不動心), 즉 정신의 평정(平靜, 아타락시아) 때문이다. 그래 나는 '습정양졸(習靜養拙"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고 실천하랴 한다.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참석할 모임에 대한 기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사려가 깊은 사람이나 철학자가 주선한 모임이나 연화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만일 그런 모임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면 말을 삼가하라고 말한다. "침묵이 연회에서 당신의 규범이 되게 하십시오. 혹은 필요한 말만 몇 마디 하십시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검투사, 경마, 운동선수들, 마실 것, 먹을 것, 특히 누구를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적당한 대화를 유지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침묵하십시오, 모르는 사람이나 무식한 자가 추천하는 잔치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가야한다면, 당신은 정신을 차리고 성급한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에픽테토스 <인생수첩>)  당시 사람들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상관이 없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축냈는가 보다. 우리에게 하루는 누구와 만나고 어울리느냐 에 그 가치가 매겨진다. 그보다도 먼저 '나'라는 인격, 나의  개성과 성향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특징으로 발전시키는 하루 하루가 되도록 수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습정양졸'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近日習靜養拙, 覺世間百千萬快樂如意事, 總不如自己上有安心下氣四字. 心苟安矣, 氣苟下矣, 方知眼前櫻觸, 無非吾分內事. 忿嫉愎戾之情, 漸漸消滅. 目爲之瞭, 眉爲之展, 脣爲之單辰, 血脈爲之和暢, 四肢爲之舒泰. 而凡有所謂不如意事, 皆怡然可樂).” 

화이불창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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