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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나는 개가 아니라, 늑대이고 싶다.


늑대의 처연함*, 의연함*을 배우고 싶다.
처연함은 눈앞의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선 너머를 보는 데서 나온다.
의연함은 들썩거림이 없이 미끄러지듯 활주*하는 데서 나온다.
늑대는 항상 스스로 고독을 불러들인다. 이 고독의 깊이가 눈으로 들어가 쓸쓸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나도 처연한 눈빛을 만들 것이다. 고독을 받아들여서.
사자의 눈은 늑대보다 더 처연하다. 사자의 고독을 알 수 있다.
 
강한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쓸쓸한 눈빛은 고독에서 나온다.
고독을 감당하는 놈이라야 강하다.
 
혼자 있으면서도, 편안할 수 있는 일은 매우 깊은 내공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혼자서 그 고독의 깊이를 온통 감당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 자신의 그릇 함량을 재보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익숙한 자신을 벗어나 떠나보아야 한다.
단순히 공간만의 떠남이 아니라, 자기를 지배하던 이념과 신념이 결부된 시간의 문제도 다 버리는 것이다.
 
고독은 그 고독을 자초*할 힘이 있는 사람에게서라야 비로소 고독 그자체로 현현한다.
강제된 고독은 그저 불편이나 고통일 뿐이다.
"자초한 고독" 속에서 고독을 즐겨야  혼자를 즐길 수 있다.

정해진 곳 안에서 '우리'로 지내는 일이 이미 생명의 활기를 놓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그 '우리'를 벗어나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고독'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자처럼, "봄날처럼 따뜻하면서도, 가을처럼 처연하게(처연이추, 난연이춘 淒然以秋, 煖然以春)"(<장자>, "대종사" 6),
'위대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변화'를 놓친 맥 빠진 '우리'들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자태를 지니면서, 나는 그저 쓸쓸할 뿐이다.

개같은 눈빛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늑대의 쓸쓸한 눈을 유지할 생각이다.
늑대의 털은 쓸쓸한 눈빛을 데우지 못한다.
 
재래시장에서 만나는 식용견의 눈은 외부세계를 경계하는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용견의 눈빛은 순하고, 초점이 분명치 않아서 개가 어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처ː연―하다 (悽然―) 애달프고 구슬프다. ┈┈• 처연한 내 신세.
*의연하다. (毅然) 의지가 굳세어 당당하다.
*활주滑走 ① 땅이나 물 위를 미끄러져 내달음. ② 비행기가 이착륙하기 위해 미끄러져 내달음.
*자초(自招) 어떤 결과를 자기가 생기게 함.
*凄然 처연 기운이 차고 쓸쓸하다. '쓸쓸할 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