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쩌다가 잘 모르는 류근 시인이 페친이다. 최근에는 그의 포스팅을 읽으면서, 웃음이 고이지만, 뒷맛은 늘 쓸쓸하고 통쾌하다. 우리가 잘 아는 김광석이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류근 시인의 시를 노래한 것이다.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운전하다가 조폭과 접촉사고를 내도 안에 "수험생 있어요"라고 말하면 시비고 뭐고 무조건 보내준다는 수능 일입니다."
누가 수능일 아니라고, 날씨가 춥다. 류근 시인은 수험생들의 긴장 때문에 날이 추워진다고 하는 속설을 말한다. 그러나 내 주장은 수능 치는 학생들의 어머니가 너무 뜨거운 기도를 해, 하느님이 너무 참을 수 없이 뜨거워서, 식히느라 칼 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를 만든다고 본다. 인생 좀 살아보면,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큰 시험이지만, 그냥 시험일 뿐 인생은 점수로 품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류근)을 우리는 잘 안다. 시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험 성적 좋아서 두드러진 사람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차라리 좀 부족해도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양심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훨씬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성적과 학벌이 점점 더 소용 없는 세상 쪽으로 나아가고 았다는 건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류근)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시인들의 글은 깔끔하다.
어제는 서울 강의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흐린 가을 비보다 더 심한 소나기를 만났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 있었다. 대신 찬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런데 그만 김연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차에 놓고 내렸다. 학교에 다 와서 생각났다. 바로 고속터미널에 전화를 했더니 그 책을 발견했고 금호고속 고객센터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그까지 것, 누가 나 대신 그 책을 읽고 나는 다시 사면 되지 했지만, 김연수 작가가 써준 사인이 들어 있어, 집으로 오는 길에 밤이 늦었지만 찾아 왔다.
그 책에서 만난 다음의 표를 공유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천천히 잘 보면, 흥미로운 그림이다.
소설가가 소설의 '말'을 다루는 방식이라 한다. 위의 그림처럼, 동심원의 안쪽에 저울을 놓는다. 이 저울은 가치관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한 쪽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올려놓는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성장배경과 교육환경에 따라서 다들 다를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생길 때마다 이 저울 위에다가 올려놓는다. 그렇게 해서 저울이 선택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게 바로 욕망이다. 그 다음 동심원에는 원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 세번째 동심원에는 감정이라 쓰고, 한 쪽에는 진짜 감정, 다른 쪽에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쓴다. 여기서 진짜 감정은 표정, 몸짓 그리고 행동으로 연결되고, 사회적 감정에는 말을 연결시킨다.

그러니까 말은 관계 속의 감정이다. 진짜 감정에 반하는 가짜 감정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소설 속의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의 속내를 감추는 역할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속내를 감춘다. 이때 속내라는 건 저울(가치관), 원하는 것(욕망), 감정이다. 말이란 늘 캐릭터의 욕망을 배반하는 원치 않은 부산물이다. 그건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자주 서로를 오해하는데, 그건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진짜 욕망이 아니라, 가짜 욕망을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인문운동가도 세상만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보는 사람이다. 뭔가 심사가 꼬여 대세에 순응하지 않고 자꾸만 인생의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구석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다면, 그는 인문운동가이다. 왜? 그 곳에 가야 인생의 빛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학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이야기"이다. 다르게 말하면, "평생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버둥대는 이야기"이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이런 공식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 하는 이야기.
문학은 없는 것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생고생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래 문학은 동사가, 아니 말과 표정 및 몸짓 그리고 행동이 중요하다.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흐린 비 온다/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내 노래 세상에 없다/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그래도 선물도 받은 오늘을 잘 달릴 생각이다.
어떤 흐린 가을 비/류 근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씨네마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선 꽃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어 눕고 싶을 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 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 술잔 속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젖는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류근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단풍 드는 날/도종환 (0) | 2021.11.14 |
|---|---|
| 11월/배한봉 (0) | 2021.11.14 |
| 오십 미터/허연 (0) | 2021.11.14 |
| 가을의 기도/김현승 (0) | 2021.11.13 |
| 거룩한 식사/황지우 (0) | 2021.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