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피 말리는 싸움이 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6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대선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필요한 '매직 넘버'인 270명까지 6명만 남겨뒀다. 레드 미라쥐(Red Mirage: 붉은 신기루-개표 초반 당의 상징색이 빨강인 공화당 표가 많이 쏟아지다가 나중에 우편투표 개표가 속도를 내면서 공화당 우세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민주당에 역전 당하는 상황)가 현실화 되었다.
어제 아침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다음의 문장이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절제'. '중도', 아니 중용이 필요하다. 어느 날, 다른 사람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자공이 공자님께 물었다. 선생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어』"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 자기 절제가 곧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는 중도(中道)를 이야기하고, 그리스철학과 유학은 중용(中庸)을 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이 말은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중용』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다. '거이'는 거할 거+평범할 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을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보지 못했다. 나의 페친인 한 변호사의 담벼락에서 이런 문장을 어제 아침에 만났다. "드디어 silly하고 무례하며 제멋대로인(그래서 미국 정치에 환멸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미국 역대 최악의) 트럼프 대통령을 뉴스에서 안 볼 날도 올 듯하다."(강인철 변호사)
두 번째 이야기는 시를 읽고 한 숨 돌린 다음 이야기 한다. 오늘 아침 시는 어려서 부터 알고 있던 서정주 시인의<국화 옆에서>를 공유한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조 바이든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느끼는 엇박자는 엘리트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내일 아침 이야기 해 본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그의 겉모습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 단풍나무 같다. 그러나 내가 오바마 전 대통을 좋아하는데, 그가 조 바이든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데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국화 옆에서/서정주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내가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연설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당시 대선에 출마한 존 케리 상원 의원을 지명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기조연설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미국의 중심이자 링컨의 땅인 위대한 일리노이 주(州)를 대신하여 제가 여러분에게 이처럼 중요한 모임에서 연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에게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가 이 연단에 서 있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케냐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국 학생입니다. 그는 염소를 치면서 성장했고 양철 판 지붕으로 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의 아버지, 저의 할아버지는 가정부 요리사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미국은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 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내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내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 선임을 못한 채 혹은 정당한 법적인 절차 없이 체포 당했다면, 그것은 나의 시민권 침해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여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 문장이 감동이다. 성경에 나오는 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에덴동산에서 나와, 에덴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는다. 그 후에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숨어 있을 때, 신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세기> 4:9)고 묻는다. 그러자 카인은 "나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오히려 신에게 되묻는다.
오바마는 카인의 되묻는 질문에 "나는 내 동생, 내 이웃, 동료 인간을 지키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에덴의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존재의 위상 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 그것이 동생이던 친구이던, 이웃이던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카인은 퉁명스럽게 "저는 모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만, 자신의 가족만 지키는 자에서, 내 주위 사람, 아니 내 행동 반경을 넓혀 우리 사회, 심지어는 먼 곳의 이름 모를 사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정치인은 권모술수로 인기에 영합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관심의 영역을 넓혀, 나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까지 내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의 소유자였으면 한다.
두 번째로 나는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2017년 2월 이야기이다. 오바마가 퇴임 직전 자신의 친구가 된 부통령 바이든에게 훈장을 주자, 그 메달을 받고 바이든은 이런 말을 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은 바로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탈무드) 조 바이든과 오바마, 이 둘의 관계를 사람들은 브로맨스(bromance)라고 했다. 친구 간의 우정이지만 사랑으로 승화된 관계였다.
'친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프렌드(freind)의 원래 의미는 '사랑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원래 자신밖에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친구이다. 친구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미쿠스(amicus)도 '사랑한다'는 동사 '아미레(amire)'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한 때 좋은 친구였지만, 어려운 시절이 닥치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나 적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이 드러날까 봐, 두 눈을 크게 뜨고 모른다고 말한다. 그에게 친구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된 도구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나를 자신처럼 생각해 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친구와 더불어 둘이 된다면,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조 바이든이 이번 대선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정에 대한 세네카의 말을 들어 본다. "진정한 우정은 눈부십니다. 눈부신 모든 것들은 드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루 종일 돈만 생각합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없이도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정이 없다면 우리는 잘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은 허무합니다."
인간은 사냥, 채집 경제 체제로 진입하면서 중요한 두 가지 생존 전략이 있었다. 하나는 관찰이었다. 관찰이란 자신이 먹을 근채류와 곤충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 위해, 지형을 자세히 관찰하는 능력이다. 관찰의 상태를 우리는 '몰입'이라고 한다. 두 번째 전략은 우정이다. 내가 온전히 관찰하고 몰입할 때,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장치이다. 이 우정을 행사하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 내가 몰입할 때, 내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자, 그가 친구이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을 보고 나에게 충고하고 나를 지켜주는 자이다. 내가 이 친구와의 관계를 평상시에 돈독하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나는 외톨이가 되어 거친 들판에서 얼마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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