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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발 끈을 묶으며/이수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계속되는 행복 담론 이야기를 공유한다. 유명해지면, 행복해질까? 나는 '명성=행복의 허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가며, 그 다양성을 음미하고 싶다. 명성을 위한 명성 추구는 대단히 뚜렷한 사회현상이다. 19세기 말에는 절대 다수의 젊은 이들이 역사적 위인처럼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는 영화나 스포츠 스타가 인기 순위에 올랐고,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는 '명성 그 자체'뿐인 텅 빈 명성이 번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켜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경력을 쌓겠다는 야망이 없다는 통계들이 나온다. TV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젊은이들은 그냥 예쁘고 옷을 잘 입기만 하면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유명해지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명성은 자신이 겪는 삶의 괴로움에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살면서 우리는 사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본래의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명성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사생활을 뺏긴 사람은 극도로 취약해질 수 있다.

말레네 뤼달은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서 심리학자들의 말을 소개한다. "명성은 모든 면에서 가속화를 유발한다. 유명인은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 받고, 사방에 걸린 자신의 이미지를 본다. 현실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고 더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다. (...) 명성은 전지전능하다는 인상 때문에, 일단 명성을 얻기만 하면 모든 꿈을 실현하고 현실을 무시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을 손에 넣었을 때, 모든 것이 가능해질 때, 공허는 커진다. 공허감이 커질수록 더 강력한 흥분으로 공허를 메워야 한다. 그럴수록 좌절할 위험도 커진다. (...) 명성은 자기도취를 부르고 정체성을 파괴한다. 석면이 건축 노동자의 폐를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허한 명성이, 행복으로 향하는 좋은 길이 아니다. 그러한 명성은 겉모습일 뿐이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녹아 없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SNS에 셀피(셀카)를 자주 올린다.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겉모습에만 집착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매우 제한적인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해도 된다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외모로 축소된 단순한 이미지는 풍요롭고 복합적인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존재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명성은 대중적 이미지와 실제의 '나'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대중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 사이의 거리가 벌어진다. 대중적 정체성과 실제 인격 사이의 격차를 말한다. 많은 스타들이 명성의 그림자 탓에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채로 유명해지면, 명성이 당신을 결정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다. 공적 인격이 인위적으로 구성될수록, 솔직한 자신과 멀어져 헤매다가 위험과 불안 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커진다.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도 항상 관찰 당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압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명성은 왔다가 사라지는 덧없음이다. 명성은 근본적으로 덧없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명성의 소유자는 명성을 통제할 수 없다. 명성은 그 전지전능함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는 불안정성 때문에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 대중의 시선이 사라지면, 명성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집착으로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대 조명에 익숙한 사람은 남의 눈에 뜨지 않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탄탄한 내면의 기반을 쌓지 못했다면 더욱 더 그렇다. 내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명성은 매우 중독적이다. 명성을 잃는 것은 두렵고 괴롭기 때문이다. 명성은 실재하는 물질이 아님에도, 실제로 중독을 일으킬 수 있고 의존, 행동장애, 고독, 불안, 편집증, 판단력 상실 등의 증상도 당연히 함께 나타난다. 게다가 명성 중독은 대개 다른 중독, 그러니까 약물 중독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명성의 일시성은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명성은 본래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에 명성으로는 지속적인 행복의 토대를 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명성에는 사생활 침해, 나아가 자유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악명 높은 파파라치들이 인기 스타들의 사생활을 불법 침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스타는 모든 순간에 자아를 내줘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자아는 침몰해버리고, 더는 내줄 것이 없어진다. 스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단순히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걸 괴로워한다. 스타들에게 명성은 견고하고 안정적이며 충만한 사생활 구축과 유지에 장애물이 된다. 그리고  대중의 판단과 평가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대중에 노출될 때는 그저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근본적인 가치와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 과다 노출의 시대의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현상이 문제이다. 여기서 트롤은 괴물이 아니라,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지만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닥치는 대로 마음껏 댓글을 달고 비난하며 조롱, 성차별, 인종차별 등으로 증오를 폭발 시키는 자들을 가리킨다.

어쨌든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명성은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냥 생기는 것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재능을 순수하게 탐색하며, 그 일에 대한 사랑을 일을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명성과 대중의 인기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서, 완전히 부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명성은 자기가 하는 일의 부산물일 뿐이다. 인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토대가 탄탄하면, 명성은 인생을 꽃피울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또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념이나, 세상의 변화를 위해 명성을 이용하면 명성의 숨은 위험을 피하고, 명성에 대해 더 크게 만족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긍정적 명성'이라 말한다. 명성을 높은 계획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모든 의욕을 다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면 많은 인기와 명성으로 생긴 자신의 이미지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앞장서서 대의를 실천하는 길을 우리는 택할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오드리 햅번의 경우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명성을 활용하면, 자기 인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타인의 생활환경 개선과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세상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다. 행복은 행복한 사람들을 만드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에 대해 생각할 때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보다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더 고민해야 한다. 명성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명성을 얻기 전에, 우리는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나다운 삶,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아는한 가장 탄탄한 행복의 토대이다. 유명하고 하지 않고는 관계없다. "명성=행복의 허상' 담론을 끝내며, 오프라 윈프리의 멋진 말을 인용한다. "당신은 하찮은 사람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당신이 유명해지기 전에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다면, 조명 아래에서도 여전히 쓰레기일 것이다. 더 밝게 비춰진 쓰레기일 뿐. 결국 명성은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낼 뿐이다."  

"산발 끈을 묶으며", 오늘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본다.

신발 끈을 묶으며/이수화

먼 길을 떠나려 할 땐
끈이 있는 신발을 신어야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삐걱이는 허리를 굽혀야 하는
불편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졸라맨 발목에서 숨이 콱콱 막히고
굵은 땀방울이 발등을 흐를지라도
거친 들길을 걸을 때에는
험난한 산길을 오를 때에는
끈이 달린 신발을 신어야겠습니다.

어지간한 비틀거림에는 끄덕도 하지 않고
힘에 겨워 넘어지고 쓰러질 때에라도
또다시 발목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그리운 먼 길을 걸어갈 때에는
헐거워진 가슴을 단단히 조여 매고
아린 발끝을 꼿꼿이 세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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