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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알 때, 인간의 모든 선(善)의 가능성과 악(惡)의 가능성을 직시하게 되고, 바른 처방이 가능해진다. 인간 본래의 선한 본성을 직시할 때, 모든 악은 그 뿌리가 뽑히게 되어 결국 성스러운 인간(聖人)이 될 수 있다.

격물치지란 사물의 본말과 시종을 파악하여 지혜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1. 물건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대학>>>에서 말하는 것은 이렇다.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을 닦고, 그 몸 가짐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생각을 성실하게 하고, 그 생각을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혜를 이루었으니, 그 지혜를 이루는 것은 사물의 본말을 파악함에 있다.

다음은 그 반대이다.
덕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살펴야 하는
-물건(物)에는 생각(意), 마음(心), 자신(身), 집안(家), 나라(國), 천하(天下)가 있고,
물건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인 일(사)에는
-성실하게 함(誠), 바르게 함(正), 닦음(修), 가지런히 함(薺), 다스림(治), 화평하게 함(平)이 있다.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니, 생각(意), 마음(心), 자신(身)이 ‘근본’이 되고, 집안(家), 나라(國), 천하(天下)가 말단이 된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근본이 되고, ‘타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말단이 된다.)

그리고 덕을 닦는 일(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성실하게 함(誠), 바르게 함(正), 닦음(修)은 ‘시작’이 되고, 가지런히 함(薺), 다스림(治), 화평하게 함(平)은 ‘끝’이 된다.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시작이 되고,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말단이 된다.)

지혜란 바로 시작과 끝(始終), 근본과 말단(本末)을 분명히 하여, 그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선후)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격물치지의 핵심은 왜곡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대로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해가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무지를 바로잡는 것이다.

격물치지의 구체적 방법론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다.
- 본연지(본연지), 즉 직관력을 밝히는 도의 형이상학적 방법
- 견문지, 즉 연구력과 분석력을 활용하여 지혜를 이루는 방법
견문지를 넓히는 방법은 <<중용>>에 있다.
“널리 배우고, 치밀하게 질문하여,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여, 독실하게 행동하라.
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변지, 독행지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辯지, 篤行之

-박학: 격물치지 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배우거나 책을 통하여 널리 정확한 정보 모은다.
-심문: 습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전문가에게 치밀한 질문을 하여 빠뜨리는 것이 없이 해야 한다.
-신사: 스스로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한 뒤
-명변: 명쾌하게 분별을 하여 자신의 답안을 얻는다.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독행: 그런 후에 실제 일에 나아가서 독실하게 실천해 보아 자신의 답안을 검토하고, 답안에 오류가 발생되었을 때에는 동일과정을 통하여 수정하여야 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점차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지혜를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신의 지혜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거짓 없이 진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논어>>의 이 문장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이 무지한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으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도 비슷한 말이다.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知爲知知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 ‘위정’ 1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네가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앎이니라, 다시 말하면 “안다고 하는 것이다.”

격물치지에서 중요하는 것이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알기 쉬운 것’부터 먼저 알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시선도 높아지고 자신의 위치도 이동되어서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 넓어진다.

“절문이근사 切問而近思” 간절하게 질문하되, 가까이 있는 것부터 연구하라 (<<논어>> 자장) 구체적인 질문과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사색을 하라는 말이다. 지혜는 바로 상식을 남보다 더 정확하고, 더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치지(致知)란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격물치지는 격물하다 보면, 치지가 되고, 반대로 치지를 하다보면 또 격물이 된다.
먼저 아를 알아서 남을 알게 되며, 남을 알아가는 중에 나자신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다.

2.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지신을 닦는 것(修身)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근본(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 일러 ‘지혜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수신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이고,
치인은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 여기서 수신이 근본이고, 치인이 말단이다. 이는 <<중용>>에서 말하는 세 가지 두루 통하는 덕(삼달덕 三達德, 지인용 知仁勇)이 갖춰
지게 된다.

치인, 즉 올바른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본이 수신이다. 그리고 수신의 근본은 격물치지이다. 그리고 덕을 통해서 온 세계를 화평하게 만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왜곡된 고정 관념을 벗어 던지고, 정확히 사물의 본질(理)과 인간의 본성(性)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되밝히는 것이 도(道) 공부이다.
도에 이르면, 격물치지로 사물의 본질에 다다른다. 그러려면 근본이 먼저 다스려져 한다.

사물의 근본(本)이니 말단(末)이니 하는 말이 모두 마무 목(木)자에서 나온다. 한 그루의 나무에 뿌리(本)와 가지(末)이 있듯이, 각각의 사물에도 근본과 말단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