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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불감위선(不敢爲先): 감히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

378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8월 8일)

1
태풍의 영향인지 어제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기온이 내려가고, 상대적으로 덜 더웠다. 가을 바람이 그립다. '바람'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온도나 기압 등의 차이 때문에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으로 대기가 이동하여 바람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으로도 쓰인다. 일상 언어 중에는 '바람 피우다'란 말이 있는데, 한 이성에만 만족하지 아니하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지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주말농장을 해 보면, 야채가 햇빛으로만 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창문을 닫은 채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면 잘 자라지 않는다. 아마도 바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성장을 돕는다.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고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물 한 잔을 우묵한 곳에 부으면, 그 위에 검불은 띄울 수 있다. 
잔을 얹으면 바닥에 닿아 버린다. 물이 얕은데 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두텁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이 없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여기서 바람은 '신바람'이라는 말처럼, 우리 속에 움직이는 생기(生氣)를 의미한다.
실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신바람이 나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리스어로는 '프뉴마', 히브리어로는 '루악', 산스크리트어로는 '아트만', '프라나' 그리고 한문으로는 기(氣)와 통하는 개념이다. 우리 말로는 숨, 숨결, 생기, 기운, 바람을 뜻한다. 장자는 제2장 재물론에서는 '하늘의 퉁소 소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에게 말한다.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 실존을 뛰어 넘는 초월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려면,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라"고 말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여행 작가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책이 생각난다. 난 유학 시절에 이 구절을 아주 좋아했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을 날리며, 바람을 읽었다. 어제도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

바람이 전하는 말/최서림

이제 그만 납작 엎드려 민들레로 살라 하네.
몸 안에 공기 주머니를 차고 방울새로  살라 하네.
부딪히지 말고 돌아서 가는 물로  살라 하네.
위벽을 할퀴고 쥐어짜듯 아픈 새벽
유리창을 두드리며 바람이 일러주는 말,
비우면 채워지고 비우면 채워지니 강물처럼 살라 하네.
물새 똥 앉은 조약돌처럼 구르고 구르면서  살라 하네.

2
오늘 아침에 침대에서 만난 담벼락에서 "불감위선(不敢爲先)"이라는 말을 만났다. "감히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 뜻이다. 이 말은 노자 <<도덕경>> 제67장에 나오는 말이다.

我有三寶(아유삼보) 持而保之(지이보지): 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이를 간직하고 보존한다. 
一曰慈(일왈자) : 첫째는 자애로움 그러니까 사랑이고 
二曰儉(이왈검) : 둘째는 검소이고
三曰不敢爲天下先(삼왈불감위천하선) : 셋째는 천하에 앞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함부로 앞서지 않기 이다.
慈故能勇(자고능용) 儉故能廣(검고능광) 不敢爲天下先(불감위천하선) 故能成器長(고능성기장):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소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기 때문에 모든 그릇의 으뜸으로 자연스럽게 추대될 수 있는 것이다. 좀 다른 방식으로 읽기도 한다. 사랑하기에 사람들의 용기를 얻을 수 있고, 검소하기에 영토를 넓힐 수 있고, 세상에 함부로 앞서지 않기에 여러 신하의 수장이 된다.

여기서 "불강위선(不敢爲先)"은 내가 잘 낫다고 하지 않는 겸손이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당대표 선거가 한창인데, 서로 잘 낫다고 좀 심하게 싸운다. 이 말을 하고 싶다. "불감위선"이 되어야 겸손의 단계에 이르고,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 언제나 1등만이 최선이고, 가득한 것이 최고이며, 남과 경쟁하여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먼저, 빨리, 높이 도전하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 겸손 없는 자부심은 자만이 되고,
▪ 겸손 없는 용기는 만용, 무모함이 되고,
▪ 겸손 없는 지식은 아집이 되고,
▪ 겸손 없는 승리는 오만이 된다.
겸손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 자맘, 무모, 아집, 오만으로 가득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 것도 더 담을 수가 없다.

'항용유회(亢龍有悔)'이란 말을 소환한다. <<주역>>에서 하는 말로,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높이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내려올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 밖에 없게 된다. 

항용(亢龍)에 대한 공자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르게 높이 올라가면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으므로 항용에 이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라는 거다. 따라서 보름달보다는 열 나흘 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는 몽우리일 때가 더 가치 있으며, 완전 중앙이 아닌 미앙궁(未央宮)이 더 여유가 있다. 새길 일이다. 물극즉반(物極則反), 만물이 극에 이르면 기우는 법이다. 보름달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지만계영(持滿戒盈)'이란 말도 소환한다. 차면 덜어 내고 가득 참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정민의 세설신어>에서 읽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구경했다. 사당 안에 의기(欹器), 즉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묘지기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그릇인가?" "자리 곁에 놓아두었던 그릇(宥坐之器, 유좌지기)입니다.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게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집니다. 이것으로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그렇구려." 제자에게 물을 붓게 하니 과연 그 말과 꼭 같았다. 공자께서 탄식하셨다. "아!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을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

제자 자로(子路)가 물었다. "지만(持滿), 즉 가득 참을 유지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따라내어 덜면 된다." "더는 방법은 요?" "높아지면 내려오고 가득 차면 비우며 부유하면 검약하고 귀해지면 낮추는 것이지. 지혜로워도 어리석은 듯이 굴고 용감하나 겁먹은 듯이 한다. 말을 잘해도 어눌한 듯하고 많이 알더라도 조금밖에 모르는 듯이 해야지. 이를 두고 덜어내어 끝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방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지덕(至德)을 갖춘 사람 뿐이다."

지만계영(持滿戒盈)!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가(持滿)?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戒盈). 더 채우려 들지 말고 더 덜어내라. 환공은 이 그릇을 좌우(座右)에 두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곱씹었다. 고개를 숙여 받을 준비를 하고, 알맞게 받으면 똑바로 섰다가, 정도에 넘치면 엎어진다. 바로 여기서 중도에 맞게 똑바로 서서 바른 판단을 내리라는 상징을 읽었다. 가득 차 엎어지기 직전인데도 사람들은 욕심 사납게 퍼담기만 한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뒤집어져 몰락한다. 가득 참을 경계하라. 차면 덜어내라.

한국에서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인 하백원은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 그 잔도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이다. 이 잔은 술을 부으면 70%까지 채울 때는 술이 그대로 있지만, 그 이상을 넘으면 술이 없어진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은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은 오만함과 과욕으로 가득차기 십상이다.

만월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공자가 지만계영이라고 한것은 인간적 욕망에서 성취되는 자기 충족, 자기 완성, 자기 기만을 경계한 것이다. 되지도 않았으면서 다 된 것처럼, 과대 포장하여 기만하는 일 따위다. 가득 차면 엎어진다. 자꾸 자꾸 덜어 내야 한다. 꾸역꾸역 가득 채우려고 만 하지 말고 됐다 싶으면 엎어지고 비우고 고개 숙이고 덜어내고 바울이 말한 케노시스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필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역경은 때로 사람을 곤경에 몰아 넣는다. 하지만 역경을 견디는 자가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디는 자는 한 명에 불과하다" 많은 연단,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단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까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

진짜 힘든 것은 번영을 이겨내는 일이다. 부하고 힘 있고 지식이 있는 것이 우리가 구하고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은 몰락과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기 전에 비워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 엎어 쏟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화가 미친다. 지만계영 해야 한다.왜냐하면 풍요로움은 필연적으로 태만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혁신 의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채우고 채우고 쌓고 쌓으면 그 가득 찬 그릇이 넘어진다. 화를 자초한다. 그러기 전에 비우고, 모자라게, 무식하게, 약하게, 없는 듯이,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높아지면 낮을 궁리를, 차면 비울 방법을, 가득 담으면 나눌 마음을 모색하고 사는 것이 현명한 뜻일 것이다.

3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 중 "아제레 콘트라(agere contra)"를 소환한다. 이 말은 '거슬러 행하라'는 뜻이다.  '거꾸로, 하기 싫은 것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김임숙이라는 분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 좋아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그녀가 주장하는 '거꾸로 사랑'하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 주체의 변화: 낮아져서 사랑하라.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의 인식을 달리 할 때, ‘거꾸로 하는 사랑’은 시작된다. 우리 대부분은 사랑 받은 경험이 있다. 그 때 우리는 마치 왕자와 공주가 된 것처럼 행복함을 느낀다. 이는 상대가 나를 위해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 교만하고 잘난 척 하기 바쁜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자기가 낮아지는 순간이 자존심 상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에 빠지게 되면 누구나 다 내려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상대가 너무 귀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너와 나는 평등해, 다를 바가 없어' 라는 말은 '너와 나는 별 관계가 없어' 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무엇이라도 변화시키는 사랑은, 자신이 낮아질 때 일어난다.

▪ 대상의 변화: 사랑할 수 없을수록 사랑하라.
사랑하는 대상을 ‘거꾸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칭송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하고 물질을 투자한다. 하지만 추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위해서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랑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 양상도 맥락이 같다. 우리는 진정 아끼는 것을 씻길 때는 더러운 곳일수록 더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냄새 나고 불결한 곳은 피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기 부족함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모습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 한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사람, 나에게 상처 준 사람,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을, 더구나 그런 사람의 추하고 부족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때 그 사랑은 의미를 가진다. '거꾸로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사랑의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사랑의 의욕이 불타오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방법의 변화: 역설적으로 사랑하라.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사람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깊고 중요한 사이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동들로 감동을 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순간의 기억으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세상의 논리와 방법대로 관계를 맺으면 어떠한 특별한 관계도 형성될 수 없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불가능한 사랑을 할 때, 나는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는다. 기존의 상식은 뒤집어져야 되고 거꾸로 되어야 한다. 회사의 회장이 청소 아주머니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정치인이 여느 국민 한 사람 앞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어날 거라고 믿지 않는 사랑이 즐비할 때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랑은 이렇듯 늘 예상을 벗어난다. 문자 그대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도 위대한 힘을 가진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거꾸로 하는 사랑'이 이냐시오 성인이 하신 말씀일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남들보다 낮아져야 한다. 그리고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힘을 믿고 실천할 때, 세상에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제 '거꾸로 하는 사랑"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다.

4
아침에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에 엮여 e-북을 하나 샀다. <<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한누리-뉴욕털게 지음)이다. 여기서 "깨달은 들짐승"이란 숨 막히는 삶의 규칙 대신 순리를 우선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겠다는 다짐이라 했다. 인생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며,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보통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다시 태어난다는 거다.

숨 막히는 삶의 규칙 대신 자유로운 순리를 우선하고, 남들 과의 비교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단단하게 살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그게 특별해 지려고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자유롭게 사는 길이라는 거다.

이 책을 소개하는 다음 문장들이 마음에 바로 꽂혔다. 발상의 전환이다.
▪ 잘나가는 법은 몰라도 괜찮아지는 법은 알고 있다. 깨달은 들짐승처럼 사는 거다. 불안과 비교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무엇이라도 책임지는 삶을 사는 거다. 자존감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집안 일, 나의 월세, 고양이, 작은 화분 뭐라도 좋다.
▪ 누가 나를 힘들게 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든 그의 몫으로 나눈다.  상대를 털끝 만큼도 바꾸려 하지 마라. 이것이 곧 내 목 줄을 타인의 손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 '더 나은 미래의 나'라는 상을 세우고 나를 갈아 넣지 마라. 미래를 위해 비루한 지금을 버틴다 가 아니라, 내 현실에도 나름 괜찮은 점은 있다'를 조금씩 늘려가 보는 거다. 현재의 삶이 전혀 변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처럼 살아야 더 나은 미래가 올 수 있다.
▪ 내 한 몸 책임지는 보통의 삶은 존엄하다.

그리고 좀 길게 한 대목을 공유한다. 오늘 오후에 읽고 내일 다른 이야기들을 공유할 생각이다. 정신적인 독립을 이룬 다음, 나 다운 삶을 놓아버린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순리에 맞는 삶을 살면 된다. 순리란 무엇인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돈을 남이 쓰는 만큼 쓰려고 하지 않고 내가 버는 것에 씀씀이를 맞추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서 ‘나는 돈이 없다’고 고개 숙이지 않고 ‘나는 건강하게 돈 관리를 한다'고 어깨를 펴는 것.
▪ 내가 아침저녁으로 출 퇴근하며 힘들게 일하고 있으면, 스스로 존엄한 삶인 줄 아는 것. ‘힘들게 일하지만 박봉이다’라고 고개 숙이지 않고 ‘박봉이지만 나는 나를 책임지고 있다’고 가슴 펴는 것.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무엇이라도 책임지는 삶을 사는 거다. 자존감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집안 일, 나의 월세, 고양이, 작은 화분 뭐 라도 좋다.
▪ 대다수 보통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줄 아는 것. ‘난 잘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쭈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 나처럼 산다’고 어깨 펴고 사는 것.
▪ 10억을 모으지 못해도 경제적으로 노예가 되는 것이 전혀 아니니까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지금 나열한 것들은 특별할 것 없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실들이다. 이런 것들이 다 순리 아니겠는가?

5
연중 제19주일로 말씀은 <마태오 14,22-33> "물 위를 걸으시다" 이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낯선 당신>
분명 당신인데
내게 오시는 당신이
너무나도 낯설어 두렵습니다
납니다
언제나처럼 납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날 두렵게 하는
당신의 낯섦을 떨치도록
당신을 닮게 해주십시오
그래요 오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가듯이
그대 나에게 오십시오
한 걸음 두 걸음 그러나
당신 닮은 내가 오히려 내게 낯설어
또 다시 두려워 무너집니다
괜찮아요 나를 잡고 일어나십시오
나의 낯섦과 나 닮은 그대의 낯섦이
그대에게서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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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바로 그곳에서 나를 향해 계십니다.
2026/8/9/연중 제19주일
마태오 복음 14장 22-33절

풍랑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밤은 깊고, 바람은 거세고, 배는 흔들리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자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유령이라고 소리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여기서 “나다”라는 말은 단순히 “나”라는 뜻도 있지만,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의 깊은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풍랑 한가운데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이러한 풍랑을 만나곤 합니다. 가정의 걱정, 관계의 무너짐,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러면 우리는 풍랑만 보게 됩니다. 파도만 보고, 바람만 느끼고, 내가 지금 가라앉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보고 물 위를 걸어갔지만, 거센 바람을 보자 두려워졌고 곧 물에 빠집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선을 바람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장황한 기도를 한 게 아니라, 그저 외쳤습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어쩌면 가장 깊은 데서 나오는 기도는 길고 유려한 말이 아니라 간절한 순간에 나오는 짧은 한 마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이 간절한 한 마디 말이지요.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대구대교/생활성서 2026년 8월호 '소금항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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