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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

375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7월 26일)

1
오늘 아침은 매미 소리를 전한다. 매미는 5년에서 17년 동안 땅속에 있다가 2주 정도 삶을 산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미는 수년간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와 여름 한 철 울고가는 곤충이다. 매미의 일생을 알고 나면, 매미 소리는 삶을 더 살고 싶은 절규의 소리일 수도 있고, 짝짓기를 위해 구애자를 찾는 세레나데일 수도 있다. 매미는 집도 없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 아침 이슬 몇 방울이면 족하다. 그러니 재물을 모을 필요가 없다. 매미는 나무는 물론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때문에 옛 선비들은 매미에게 5덕(文, 淸, 廉, 儉, 信)이 있다고 여겼다. 

▪ 문(文): 매미의 머리 모양, 즉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이 갓끈과 같아서 학문에 뜻을 둔 선비와 같으니 '선비(文)의 덕', 
▪ 청(淸): 맑은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살아 '청렴(淸廉)의 덕', 
▪ 염(廉): 사람이 힘들게 지은 작물을 해치지 않는 염치를 아는 '겸손(謙遜)의 덕', 
▪ 검(儉): 자신이 살고자 하는 집을 짓지 않는 '검소(儉素)의 덕', 
▪ 신(信): 때를 보아 왔다가 때를 보아 사라지는 '믿음(信) 덕'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매미에게서 우리 선조들은 군자의 다섯가지 덕을 겸비한 것으로 여겼다. 조선왕조의 임금은 매미의 양 날개를 위로 향하게 형상화한 익선관(翼善冠) 또는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국정을 돌보았다. 매미를 한 문으로는 '선(蟬)'이라 한다. 만 원권 지폐에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그 익선관이다. 또한 조정의 신하들도 머리에 관모(冠帽)를 썼다. 왕의 모자와 달리 매미 날개 형상을 위로 향하게 하지 않고 양 옆으로 늘어뜨린 점이 임금이 쓴 익선관과 다르다. 이처럼 왕과 신하들이 머리에 쓰는 관모의 상징으로 매미의 날개를 삼은 데는 위에서 말했던 군자의 5 가지 덕을 상징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하여 의관문물을 중요시했는데,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실내에서도 관모(冠帽)를 썼었다. 머리에 관모를 쓰지 않을 때는 변소에 갈 때, 침상에 들 때, 죄수가 되었을 때 정도이며 일을 할 때도 벗지 아니했다. 관모 중에 벼슬아치들이 쓰는 것으로 사모(紗帽)가 있었다. 관 양쪽 뒤에 매미 날개를 단 형태의 모자였다. 이 매미 날개를 ‘사모 뿔'이라 한다. 이 매미 날개를 단 것은 매미의 청빈 고고한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매미의 날개를 달고 청빈하게 그리고 고고한 정신으로 살고 싶다. 오늘날 공무원들도 관을 쓰고 근무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임금들이 익선관을 쓰고 항상 백성을 염두에 두고 집무를 하였듯이 가슴에 떳떳이 공무원 명찰을 달고 한치의 부끄럼이 없이 민원을 해결하고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사항이다.

2
좀 어려운 시를 한 편 읽는다. 천천히 두 세 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그늘은 어둡고 서늘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이다. 오늘 시의 3연에서 5연까지 내용으로 상상력을 보태 읽어보면, 시인은 모르는 사람이었던 한 용접공의 인생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일찍 날아간 새"처럼 세상을 등진 용접공의 이야기를 듣고서, 시인은 그늘 같았던 그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고", 그가 남긴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을 다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찬찬히 바라본다는 것,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마음을 내어 오래 생각한다는 것. 귀를 찢을 듯한 울음 뒤에 매미가 남겨놓은 허물들처럼,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걸 내내 꿈꾸는 일일 것"이라고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tirol이라는 '시를 읽어 주는 남자'라는 분의 덧붙임을 공유한다.

여름의 할 일/김경인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 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투명하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 둘 걸어 들어가니
그늘은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올여름은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을 것
한 용접공이 일생을 바친 세 개의 불꽃
하나는 지상의 어둠을 모아 가동되는 제철소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다음은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무너지려는 몸통을 꼿꼿이 세운 날카로운 온기의 뼈대에,
또 하나는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속에,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이나 좋은 계절

너무 일찍 날아간 새의
텅 빈 새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여기에 남아
무릎에 묻은 피를 털며
안녕, 안녕,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넓은 이파리들이 환해 진 잠귀를 도로 연다

올여름엔 다시 깨지 않으리

3
24절기의 하나로 소서와 입추 사이에 위치한 대서(大暑)는 지난 수요일 22일이었다. 한국에서 이 시기는 대개 중복(中伏) 시기와 비슷하며 말목 전에 위치한 때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시기이다.  올해 중복 날짜는 어제 7월 25일(토)였고, 말복은 8월 14일(금)이다. 옛날부터 대서에는 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장마철 빗소리에 가려졌던 매미 울음소리가 창을 넘어 들어오고 열대야 예보가 시시 때때로 흘러나오며 담 벼락 아래로 능소화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큰 더위'라는 대서 이다. 여름의 마지막 절기이다. 한낮의 뙤약볕은 거대한 돋보기를 통과한 빛처럼 뜨겁다. 불볕더위와 습도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더위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앞으로 차차 식어갈 일만 남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찌는 무더위’ 는 가마솥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푹푹 쪄내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이 때 에어컨이나 제습기만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리듬이 깨진다. 무더위를 이기는 비결의 하나는 ‘희망’ 이다. "보름만 지나면"하며 희망을 갖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말복만 지나면 새벽엔 이불이 필요하다. 

대서 무렵이면, 자전거 페달을 힘겹게 밟아 여름 언덕의 꼭대기에 오른 기분이다. 매년 겼으면서도 그 자리에 올라서야 여름이란 이런 거였지 한다. 이제 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갈 일만 남았고 그 아래에는 마중 나온 가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이 언덕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여름 안에만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더위에 지치는 것도 여름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럴 때면 한 겨울을 상상한다. 한 겨울의 혹한 속에서 그리워할지 모를 순간이다. 주머니를 뒤집었을 때 나오는 모래 알갱이나 천 가방에 희미하게 밴 바다 냄새처럼, 겨울 속에 있을 때 내가 여름의 무엇을 그리워하곤 했는가  떠올리면, 눈앞의 여름을 좀 더 기운 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4
동양 고전을 읽으면, 이러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매년 무더위가 극에 이르면 나는 다음의 '3통'을 소환한다.
▪ 공자의 '궁즉통(窮卽通)' - 힘든 일이 닥치면 한 판 붙는다. 궁하면 통한다. 역경이 닥치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군자고궁(君子固窮)'"(<<논어>>)이란 말은 '군자란 어렵고 궁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뜻이다. '궁즉통은 원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에서 나온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세상은 변한다. 자연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이 순환한다. <주역>의 변화 철학으로 궁즉통의 4단계가 '궁, 변, 통, 구'이다. 그리고 '극즉반(極卽反)'이란 말도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 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 노자의 '허즉통(虛卽通)' - 자신을 비운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도덕경>>)에서 찾은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인생무상, 공수래 공수거이니 모든 것을 비우고 낮추며 섬기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루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위대하다. 이를 '허즉통'이라고 한다.
▪ 손자의 '변즉통(變卽通)' - 시대에 맞게 변한다. 손자는 만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이기고,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를 이상으로 보았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변즉통'으로 요약된다. 때와 장소를 알고, 흐름의 속도를 맞춰 나갈 수 있어야 된다. 상황에 따라 변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인문운동가가 무더위를 이기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적극적인 활동’ 을 하는 거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실천하는 것이다. 단 저녁 무렵에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는 농부들도 일 안 한다. 위험하니까. 대신 저녁 무렵에 집에 걸어오기, 텃밭 일하기, 산책하기 등으로 땀내기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여 동안 몸을 움직이면, 온몸이 땀으로 폭포수가 된다. 나는 가게 청소를 한다. 그러면 습기는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물줄기가 되면서 눅눅하고 끈끈한 기운이 사라진다. 온몸에 쌓였던 독기, 열기 때로는 한기까지도 일제히 밖으로 나오며 정화되고 새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무더위를 이기다가 새롭게 맞는 새벽의 서늘한 바람 한 조각은 훨씬 더 값지다.  그리고 습기를 머금은 무더위와 달리, 햇빛이 폭염(사납게 불탄다)인 날은 눅눅한 마음을 잠깐 씩 밖으로 나가 햇빛에 말리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습한 몸과 눅눅한 마음이 다 날아가니까. 사람은 다 ‘때’ 가 있다. 이 때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는 좀 쉬면서, 두꺼운 책을 읽는 것이 나의 더위 극복 방법이다. 평소에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을 이 시기에 읽는 것이다. 그것도 정리해가면서. 그 때 깨달음이나 평소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똑 떨어지게 정리된 정언들을 만나면 더위가 사라진다.

5
연중 제17주일로 말씀은 <마태오 13,44-46>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 비유를 끝맺는 말씀"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하늘나라>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길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인
사람이
걸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를
걷는
사람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인
사람인
하늘나라를
걸어
찾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찾아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품은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나누는
길입니다

6
나는 오늘 내 삶의 그물에서 무엇을 미련 없이 비워내고, 어떤 것을 가장 귀한 보물로 건져 올리겠습니까?
2026/7/26/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마태오 복음 13장 44-52절

단순해질수록 선명해지는 영혼의 보물
젊은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삶의 후반전에 접어드니, 손에 많이 쥐는 것이 꼭 풍요는 아니며 바깥으로 커 보이는 삶이 반드시 깊은 삶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심리학자 라르스 토른스탐은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더 깊이 추구하게 되는 내면의 변화를 ‘노년 초월’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값진 진주’를 발견하는 영적 시야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을 알아본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삶의 우선순위를 기꺼이 바꿉니다. 사실 가장 빛나는 보물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밥 한 끼, 미사 중에 밀려오는 고요한 평화, 지친 마음에 스며드는 말씀의 위로가 실은 하느님께서 평범한 일상의 밭에 숨겨두신 보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하늘나라를 온갖 고기를 모아들인 후 좋은 것을 가려내는 ‘그물’에 비유하십니다. 노년기는 인생이라는 바다에 던졌던 그물을 끌어올려 지난 삶을 갈무리하고 ‘자아 통합’을 이루어 가는 시기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물 안에는 지난 세월 겪어온 빛나는 감사와 사랑도 있지만, 상처와 미움, 내려놓지 못한 욕심도 함께 섞여 있습니다. 신앙은 흠 없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섞여 있는 것들 가운데 무엇이 영원히 간직할 보물인지, 무엇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할지 지혜롭게 가려내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참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삶은 화려해지기보다 오히려 단순하고 깊어집니다. 가장 귀한 것을 알기에, 나머지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동길 마리오 신부(마산교구)/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연중 제17주일 가해, 조부모와 노인의 날] 마태 13,44-52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1. 옳고, 가치있고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으려면 다른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귀하고 가치있는 것일수록,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가치도 커지지요. 내가 가진 유한한 재물과 능력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엇이 참으로 귀한 것인지를 알아보고 식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옳고, 가치있고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는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2. 또한 더 귀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3. 그리고 그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느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일임을 알았기에, 하느님께 ‘듣는 마음’, 즉 그분 말씀을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의 제1독서에 나오는 솔로몬이 바로 이 두가지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그분 뜻에 따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 꼭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했기에, ‘장수’나 ‘부’, ‘원수들의 목숨’ 같은 것을 바라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느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일임을 알았기에, 하느님께 ‘듣는 마음’, 즉 그분 말씀을 겸허한 자세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결과 참된 지혜라는 보물을 얻을 수 있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우리가 솔로몬과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천국]’라는 보물을 추구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1. 첫번째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아주 큰 보물을 발견하게 되자,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보통 귀한 보물을 땅 속에 깊이 묻어서 보관했는데, 전쟁을 많이 겪다 보니 그 보물을 묻어둔 사람이 죽거나, 멀리 유배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율법에 따르면 그 보물의 소유권은 그것이 묻혀 있는 땅 주인에게 있었기에,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먼저 그 밭을 통째로 사야만 합법적으로 그 보물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특징은 그것이 주는 ‘좋은 것들만’ 골라서 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 보물이 숨겨진 ‘인생’이라는 밭 전체를 온전히 ‘나의 것’으로 취해야 하는데, 인생이라는 밭 안에는 고통과 시련, 슬픔과 아픔, 실패와 좌절 같은 ‘십자가’들이 가득하지요. 결국 신앙생활이 주는 참된 기쁨과 보람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그런 십자가들을 기꺼이 끌어안아야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말이지요.

2. 두번째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입니다. 그가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대단한 것이라 해도 그 진주 ‘하나’를 얻기 위해 자기가 가진 진주 ‘모두’를 처분하는 상인의 모습은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석’이 지닌 특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기는 오해이지요.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100개와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한 개 중 어느 쪽의 가치가 더 클까요? 당연히 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압도적으로 크지요. 무게는 20그램으로 서로 같지만 1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100개의 가치가 1억원 정도라면, 100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한 개는 최소 250억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보석 상인 입장에서는 그 다이아몬드 ‘하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진 다이아몬드 ‘전부’를 처분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의 가치가 그렇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다 합쳐봐야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 하나의 가치에 한참 못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들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참된 행복 하나를 얻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것이지요.

3. 세번째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의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가, 즉 그분의 뜻과 다스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 많은 이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기에, 종말 때까지 밀과 가라지, 즉 선인과 악인들이 함께 자라도록 그대로 두시지요. 그러니 아직 종말의 때가 오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는 하느님 나라라는 그물 안에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가 ‘함께’ 담겨 있는 상태인 겁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그 그물에 담겨 있다고 해서 종말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그물에 담겨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종말의 때가 되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느님 뜻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온 ‘의인’들은 구원의 그릇에 담으시고, 하느님 뜻을 거스르며 살아온 ‘악인’들은 그물 밖으로 내던지시어 세상과 함께 멸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직 내가 하느님 나라라는 그물 안에 담겨있는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뜻을 충실히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보물이라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까지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얻고 싶다면 삶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에 비유하시면서, 그런 이들은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는 기본적으로 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성경’에 담긴 하느님 말씀, 즉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그저 율법을 지키는 것 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 그분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들도 귀 기울여 듣고 따르는 ‘하늘나라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내 마음에 드는 말씀, 내 기호에 맞는 말씀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주님 말씀 전체를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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