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7월 10일)
1
지난 주일에는 딸과 동네에 있는 <이응노 미술관>에 갔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관과 공동 기획한 <이응노, 김창열> 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시는 파리를 무대로 활동한 두 작가가 문자를 회화의 조형 언어로 확장한 동시대적 흐름에 응답하면서도, 동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립한 과정을 조망한다. 이응노는 나무를 깎아 만든 조작이나 꼴라쥐를 통해 문자 조형의 영역을 확장한다. 반면 김창열은 신문지, 지도, 목판처럼 이미 기호와 구조를 지닌 매체 위에 물방울을 배치하여 기존의 질서 위에 회화적 형상을 덧입힌다. 나는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에 많은 시선을 보냈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이승희 시인의 <물방울>을 공유한다.
물방울/이승희
물방울은 왜 모여지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일까? 맺힌다는 그 말 속 들어 있는 단단한 뼈 같은 마디들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하나의 맺힘이 있기까지 그 오랜 습기의 기억들은 어느 바람 속, 어느 쓸쓸한 저녁의 이름으로 돌아온 것일까. 얼마나 사무쳤기에 저리도 둥글어진 것이냐. 물방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러므로 사랑은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만나는 것처럼 그런 것이어야 한다.
2
뇌가 진짜 하는 일을 알아 본다.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생명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심장이 잘 뛰어야 하고 숨을 잘 쉬어야 한다. 또 외부에서 영양과 에너지-칼로리를 섭취해야 하고 이를 분해 흡수해야 한다. 동물의 슬픈 운명이다. 식물은 외부에서 흡수하는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면역 시스템도 잘 작동해야 한다. 뇌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내'가 의식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뇌'는 주변의 조건에 적응하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신체 예산을 배분하고 조절한다. 이게 뇌가 진짜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나’의 의식,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독특한 진화의 부산물을 얻었다. 발성 기관을 잘 활용해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고 뇌에 빚어진 고도로 복잡한 언어 체계를 표현하고 주변의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이야기 한다. 메타인지 수준의 복잡한 생각, 의식도 갖게 되었다. 마음도 복잡 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하늘의 무수한 천체 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귀하고 위대한 기술을 터득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고, 근대 이원론은 이 토대 위에서 작동했다. 그런데 현대 뇌과학은 이를 뒤집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는 이렇게 수정되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도 한다.’
3
스트레스는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흔히들 말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없애야 한다고.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진화학의 설명은 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사고 실험이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 한 분이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와 마주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 호랑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서 도망친다.
- 호랑이보다 더 힘이 세져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호랑이보다 더 빠르거나 더 힘이 세 지려면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순식간에 힘이 세지는 마법 같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야 한다. 이때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코르티졸’이 활약한다. 마치 공습경보 사이렌을 울리듯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비상! 비상!’을 외친다.
평소에 심장은 뇌, 소화기관 등으로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그런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비상 상황이 되면 뇌는 평소의 시스템을 뒤집어서 근육으로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만약 스트레스, 코로티졸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호랑이와 마주쳤던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느긋하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반면,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생존의 확률을 높인 조상들은 더 많은 후손을 남겼고 우성 유전자로 새겨졌다. 스트레스는 생존 확률을 높이는 유용한 적응이었다. 인류는 이 ‘스트레스’라는 선물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다른 동물에겐 없는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트레스는 생명의 에너지, 생명의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사랑에 빠지거나 설레거나 행복에 겨워 마구 흥분하거나 혹은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고통에 빠졌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살아있음은 늘 스트레스와 함께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4
쉬는 순간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허 하라!” ‘멍 때리기 대회’라는 야릇한 퍼포먼스의 슬로건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어떤 청년이 무려 60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잘 때려서 우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의 규정을 보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하게 된다. 졸아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고 대화도 안 되며 휴대폰을 보거나 시간을 확인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바로 탈락이다. 그리고 1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해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한 사람이 우승하게 된다.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멍때리기 대회’를 소개한 이런저런 영상을 보면서 뇌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가지 궁금한게 생겼다. 참가자들의 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뇌를 스캔해 보면 어떤 반응들이 관찰될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지 언어학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언어학을 미국의 현실 정치에 적용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제목은 기억하고 이야기할 만큼 유명한 문구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순간 우리 뇌는 언어의 프레임에 갇혀서 끊임없이 코끼리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뇌에서는 분주히 코끼리가 맴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나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뇌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은 ‘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하는 순간, 더 나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집착하는 순간,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인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쯤 되면 그러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라며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쉼이란 무엇인가?
많은 뇌과학자는 ‘명상(Meditation)’에 주목한다. 명상 할 때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보면 좋은 ‘쉼’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뇌 과학자들이 명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뇌에서 일어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는 상태 때문이다. 비유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초기화 모드에 해당한다. 뇌는 쉬는 상태, 잠자는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잠들지 않고 끊임없이 일한다. 이는 뇌가 감각이라는 생명의 통로로 얻은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계속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한 이 현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뇌는 특별한 선물을 얻었다.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외부의 정보가 뇌에 전해지는 통로 즉 감각 정보가 단순해 졌을 때 뇌의 이 네트워크는 오히려 활성화된다. 이 역시 뇌의 활발한 활동이다. 정보의 유입이 적어지면서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지우기도 하는 등 뇌 안에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많은 뇌과학자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의해 확보된 이 여유 공간을 통찰력과 창의성의 생물학적 원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의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등 모든 감각 기관을 잠시 쉬게 하는 것이다. 뇌과학이 알려 주는 좋은 쉼의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깨워라!’
‘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쉼은 일상과는 뚝 떨어진 작위적인 행위, 또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뇌과학자가 우리 뇌를 ‘근육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근육은 꾸준한 운동을 통해 강화된다. 반면 운동을 게을리하면 강화됐던 근육은 도로 약해진다. 살아있는 한 우리 뇌도 강화되고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언어, 지능, 마음, 자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에 새겨져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정해지면 끝까지 계속 가는 것도 아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굳이 특별한 행위, 이벤트를 벌이지 않아도, 어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얼마든지 좋은 ‘쉼’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한 시간에 한 번, 단 몇 분 만이라도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잠재워 보자. 입으로 들어가던 모든 것을 잠시 멈춰 보자. 그리고 심장의 리듬과 들고 나는 숨결을 느껴 보자. 그러면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깨어난다. 바로 이 순간이 좋은 ‘쉼’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쉬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뇌를 응원한다.
정리하면, 디폴트모드네트워크(DMN)는 뇌의 일부 영역으로, 멍하니 있거나 몽상에 빠졌을 때 활발해지는 뇌 네트워크이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내측측두엽, 내측전전두엽피질, 후대상피질, 두정엽피질 등의 두뇌 영역을 포함한다
▪ 특정 작업에 집중할 때는 활성이 감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이 증가한다
▪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응고화하고, 내부적인 자극을 민감하게 처리한다
▪ 타인에 대한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 축적된 기억과 경험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역할은 이런 것들이다.
▪ 멍 때리기, 공상하기, 딴생각하기와 같은 행동들로 생각할 수 있다
▪ 명상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활동이다
▪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에 늘 피곤해질 수도 있다
5
연중 제14주간 금요일로 말씀은 <마태오 10,16-23> "박해를 각오하여라"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마태 10,17)
사람을
기뻐하기에
사람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반기기에
사람이
반기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맞기에
사람이
맞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품기에
사람이
품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에게
스미기에
사람이
스미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믿기에
사람이
믿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바라기에
사람이
바라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사랑하기에
사람이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벗하기에
사람이
벗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사람을
살리기에
사람이
살리는
그런 사람이기를
6
하느님 사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2026/7/10/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태오 복음 10장 16-23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
주님 마음, 부모 마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가톨릭에서 표어로 삼아도 될 만큼 성경의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자주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분이라고 하는데, 왜 나쁜 일들이 일어나나요?’ 세상의 험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느님의 입장을 부모의 마음에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마주하는 세상은 점차 넓어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채워갑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에는 위험한 것들도 있습니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유롭게 행동하다가 다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요.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역시 아픕니다. 그러는 동시에, 주어진 자유 안에서 온전히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가 올바로 성장하기를 기다립니다. 무조건 감싸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면 주님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오늘 하루,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이름과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경태 마르티노 신부(서울대교구)/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 전례의 말씀은 험난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현실적인 지혜와 함께, 우리가 언제나 삶의 닻을 내려야 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해 들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주님은 신앙의 길이 결코 평탄한 꽃 길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기심과 시기, 물질주의 등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리 떼 같은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말씀대로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신앙인은 때로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오해와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님이 제시하신 처방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뱀 같은 슬기로움은 악한 세상의 유혹과 음모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입니다. 무조건 착하기만 해서 세상의 꾐에 쉽게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며 무엇이 악의 유혹인지 명확히 분별하는 지혜를 뜻합니다. 비둘기 같은 순박함은 세상의 수단에 물들지 않는 마음의 순수함 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되 나 또한 세상처럼 똑같이 영악해지 거나 남을 속이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움만 추구하다가 영악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며, 순박함만 고집하다가 대책 없이 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도 복음의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우리를 법정에 넘기고 채찍질할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십니다. 박해의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느님께서 직접 일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내 얄팍한 지식이나 변명으로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 곁에 순박하게 머물러 있을 때, 우리 안의 성령께서 가장 완벽한 시기에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우리 입에 담아 주실 것입니다.
이번 주간 내내 이스라엘의 죄를 아프게 꾸짖었던 호세아 예언서는 오늘 마지막 장에 이르러 감동적인 화해와 회복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돌아 오라"고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호세 14,5-6).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리 떼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아 슬기로움을 잃고 순박함을 더럽혔을지라도, 하느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를 온전히 치유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메마른 우리 영혼에 밤사이 내리는 부드러운 이슬이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 이슬을 머금은 영혼은 다시 나리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뒤에는 우리의 배반까지도 기꺼이 고쳐 주시는 자비로운 하느님이 계시고, 우리 안에는 이리 떼를 이길 지혜를 주시는 성령께서 함께 계십니다. 오늘 하루, 복잡한 인간관계와 문제들 앞에서 뱀 같은 분별력을 달라고 청합시다. 동시에 마음의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비둘기 같은 순박함을 구합시다. 주님의 이슬을 머금고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혜와 자비의 주님, 저희를 늑대 같은 세상 속에 파견하시며 늘 염려하고 지켜 주심에 감사 하나이다. 저희에게 세상을 꿰뚫어 보는 슬기로움을 주시어 악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동시에 당신 만을 바라보는 순박함을 주시어 세상의 모진 마음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지치고 상처받은 모습 그대로 당신께 돌아가오니, 오늘 저희 영혼에 새 이슬을 내려 주시고 다시금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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