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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복(復)"은 회복(回復)으로 원 상태를 되찾는 것이다.

373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7월 5일)

1
어제 오후에는 동네 탄동천 산책을 길게 하였다. 금계국이 곳곳에 뽐내고 있었고, 개망초 꽃이 지천이었다. 개망초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나쁜 이름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꽃 모양 덕택에 '계란 후라이꽃'이라고도 불렀다. 번식력이 대단하다. 이와 관련된 시를 한편 공유한다. 농부들이 그랬다 한다. 망할 놈의 풀이란 뜻의 '망초(亡草)'라고, 뽑아도 뽑아도 돌아서면 돋아나고, 밑둥 바짝 잘라도 자고 나면 다시 돋는 풀로 번식력이 좋나 밭을 망치는 풀이라는 거다. '망초' 앞의 '개'란 접두어는 '~보다 못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느냐는 우리 조상들의 분노가 섞여 있는 것 아닐까? 북한에서는 순 우리말로 '돌잔꽃'이라 부른다. '개망초꽃'의 꽃말은 이름과 다르다. '화해'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는 거다. 어쨌든 개망초꽃은 노란색과 흰색이 조화롭고, 크기마저 앙증맞은 것이 아름다운 꽃이다.

개망초꽃/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 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 잘 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또 다른 버전이 있다. 구한말 나라가 어지러울 무렵 철도 건설 등에 쓰이는 침목을 들여올 때 함께 묻어 들어온 외래 식물로, 이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자 "나라가 망할 때 피어난 풀"이라 하여 "망초(망초)'라 불렸다는 거다.  그러나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다른 농작물이 더 이상 희망을 버렸을 때에 핀다. 외진 땅뙈기에 주변 잡풀들과 더불어 자란다. 공동체적 친환경적 친인간적인 꽃이다. 개망초꽃은 아무 곳에서나 잘 뛰노는 아이들을 닮았다.

2
어제 오전에는 <<주역>>  제24괘인 <지뢰 복>괘를 읽었다. 영혼의 근육이 두터워졌다. "복(復)"은 '인'의 회복이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사랑하는 마음의 회복이다. "복"은 회복(回復)으로 원 상태를 되찾는 것이다. 또한 복귀(復歸)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복(反復)으로 순환의 도를 되풀이하는 것이고, 부활(復活)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먹지 않고 남겨 두었던 <산지 박> 괘 '상구'의 "석과(碩果)"가 제2괘 <중지 곤> 괘의 대지에 씨앗으로 묻혀 <지뢰 복> 괘 '초구'의 새 생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가치와 본성의 회복이고, 초심과 당위(當爲)로의 복귀이며, 생사와 종지의 반복이고, 희망과 용기의 부활이다.

이러한 "복(復)"의 여러 상징 중 공자는 마음의 수양과 정신의 수련, 행실의 교정을 통한 가치의 본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공자는 <<계사전 하>> 제5장에서 제자 안회(顔回)를 기리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子曰(자왈) 顔氏之子(안씨지자) 其殆庶幾乎(기태서기호)인저. 有不善(유불선)이면 未嘗不知(미상부지)하며 知之(지지)면 未嘗復行也(미상부행야)하나니 易曰(역왈) 不遠復(불원복)이라 无祗悔(무지회)니 元吉(원길)이라하니라." 번역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씨의 자식(안자)이 거의 (성인에) 가까울 것이다. 착하지 않음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못하지 않으며, 그것을 알면 일찍이 다시는 행하지 않으니, 역(易)에 이르길 머지않아 회복한다. 뉘우치는데 이름이 없으니 크게 길하다라고 하였다'가 된다. 

안회는 거의 완전하도다! 선하지 않음이 있으면 알지 못함이 없었고(선하지 못한 불선을 금방 알아채고), 알면 다시는 행하지 않았다는 거다. 역에 말하였다. 머지않아 회복하여 후회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으니 매우 길할 것이다. "불선(不善)을 들고 "복(復)"을 이야기했으니 "복"의 의미가 가치와 본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명확하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로 32살에 요절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안회의 '인(仁)'을 극찬한 바 있다. 안회를 "복성공(復聖公)"이라고 부르는데, '인을 회복한 성인과 같은 사람'의 뜻이다.

'초구'는 <지뢰 복> 괘의 유일한 양으로 맨 처음에 있으니 제23괘 <산지박> 괘의 '상구'에서 <지뢰 복> 괘이 '초구'에 도달하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안회의 사례에서 보듯 잘못을 범해도 재빨리 알아채고 반성하여 고치는 것이니 후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잘못된 일, 선하지 않은 일임을 알면 아예 시작하지 않을 것이니 뉘우칠 일이 아예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 다음과 같다.
▪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뉘우치지 않거나
▪ 아예 잘못을 알면서도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거나
▪ 자신은 옳고 상대방만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 상대방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도 받아주지 않는 일도 흔하다.

정치 판은 더 하다. 온갖 논리로 정적을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치에서 조차 사안에 따라서는 상대 당을 높이고 자당의 잘못을 인정할 때 품격 높은 정쟁이 가능해진다. 남녀의 사랑이 흔들리며 위기에 처하는 것 역시 상대의 본성과 관계의 본질을 보는 대신 자기 기준에 상대발을 억지로 맞추려 하거나 상대방을 진심을 외면하고 자기 판단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안회가 '인의 회복자'가 된 것은 안회의 '복심(腹心)'을 들여다 볼 줄 아는 공자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3
물론 그런 공자조차 완벽한 인간이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가 적어 둔 글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로 가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적이 있었다. 아끼는 수제자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 와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 보다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았다. 공자는 깜짝 놀랐다. 안회는 제자 가운데 도덕 수양이 가장 잘되어 아끼는 제자였다. 공자는크게 실망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훍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나의 머리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所信者目也, 소신자목야 而目猶不可信, 이목유불가신 所恃者心也, 소시자심야 而心猶不足恃, 이심유부족시)." <<여씨 춘추>>에 나오는 이야기라 한다. 

성인군자라도 일주일씩 굶주리다 보면 이성이 본능에 질식되는 것이 차라리 당연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곧바로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스승이라는 자가 한심하기 그지없군'과 같이 안회가 생각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갔을 것이다. 이 일화는 공자가 '후회하는 정도까지 이르지 않은' 사람임을, 안회가 인간적인 면모로 그 사람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큰 그릇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성인 공자도 이렇게 오해를 했는데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떠 하겠는가? 때문에 귀로 직접 듣거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항상 심사숙고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그 사건 자체에 대해 허심 탄회 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섣불리 결론을 내려 평생 후회할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4
<<논어>> <안연편(顔淵編)>에 보면 안연(顔子)이 공자에게 어짊(仁)을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이 장면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 즉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顔淵問仁(안연문인)한대 子曰(자왈) :  <안연>이 仁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이니 : “사심을 극복하고 예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仁(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  어느 날 사심을 극복하고 예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하리니 :  천하 사람들이 너를 인자라 칭찬할 것이니.       
爲仁由己(위인유기)니 :  인의 실천은 자기에게 달려있는 것이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   어찌 남에게서 의지할 것인가?”     
     
顔淵曰(안연왈) : <안연>이 말하기를,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  “청컨대, 그 조목을 묻고자 하나이다.”      
子曰 非禮勿視(자왈 비례물시)하며 :  공자 말씀하시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顔淵曰 回雖不敏(안연왈 회수불민)이나 :  <안연>이 말하기를, “저 안회가 비록 불민하지만(어리석으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  청컨대,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자가 '초구'에서 "수신(修身)"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상전>이 "象曰(상왈) 不遠之復(불원지복)은 以脩身也(이수신야)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머지않아 회복함은 몸을 닦아서 이다'가 된다. 머지않아 회복하는 것은 수신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희망이 피어났으니 수신의 자세로 나아가라는 거다. TMI: 脩:포 수·마를 수·닦을 수(修). 머지않아 회복함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수양을 통해 몸을 닦아야 회복할 수 있다. 몸을 닦아 회복하는 것은 극기복례(克己復禮)이고 곧 어짊(仁)을 회복하는 것이다.

'不遠復(불원복)'이라 쓰여 있는 태극기를 알게 되었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 한다'는 불원복 태극기이다. 이 태극기의 주인공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라도 구례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던 의병장 녹천(鹿泉) 고광순(高光洵)선생이다.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장군의 12대 손으로 나라사랑의 가통을 이어받아 1907년 선생은 태극 문양의 양방은 홍색으로, 음방과 건곤감리의 4괘는 검은색 천을 잘라 박음질하였으며, 위쪽 가운데에는 붉은 색실로 '不遠復'이라는 글자를 수놓았다. 비록 지금은 나라를 빼앗겼지만 머지않아 회복하리라는 신념으로 가슴에 품고 다녔으며 지리산의 의병 진영에 나부꼈을 때는 결사항전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한번 죽어 나라에 보답하는 것은 평소 마음을 정한 바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그 후 이 태극기는 항일 독립운동의 사료적 가치가 커 국가등록문화재 제394호로 지정되었다.

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로 <마태오 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믿음 때문에
오히려 불신당하더라도
끝까지 믿으리라
희망 때문에
오히려 꺾어지더라도
끝까지 희망하리라
사랑 때문에
오히려 미움 받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리라
진실 때문에
오히려 모함당하더라도
끝까지 진실하리라
함께 때문에
오히려 쫓겨나더라도
끝까지 함께하리라
나눔 때문에
오히려 빼앗기더라도
끝까지 나누리라
축복 때문에
오히려 저주받더라도
끝까지 축복하리라
섬김 때문에
오히려 짓밟히더라도
끝까지 섬기리라
살림 때문에
오히려 죽임당하더라도
끝까지 살리리라

6
고민하는 것과 맡겨드리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2026/7/5/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마태오 복음 10장 17-22절: 주님의 부르심에 바치는 것

10년. 사제직을 바라보면서 오롯이 공부한 기간입니다. 신학교에서 7년을, 군대에서 2년을, 교외 봉사로 1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에 교가를 많이도 불렀습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교가를 부를 때마다 가사가 나름 의미 있다는 정도의 느낌만 있었을 뿐, 그보다는 빨리 서품을 받아서 본당 사목자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꿈으로 가득 찬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예산을 어떻게 정리하고 결재해야 할지, 행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에 들어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되뇌며 위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내가 언제까지 사제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냥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매일 같이 반복되는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존경하던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참례했는데, 말미에 다함께 신학교 교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예전에는 그저 형식적으로 부르던 가사가 새삼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소중한 만큼 나의 자격을 고민했던 것이었구나….’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을 반복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생각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억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모든 상황이 더 어려웠을 김대건 신부님을 되새겨 봅니다. 세상도 청춘도 목숨까지도 내어드린 그 마음을 새기며, 오늘 하루를 다시 한번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김경태 마르티노 신부(서울대교구)/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8
오늘 7월 5일은 우리 한국 교회의 크나큰 은총이자 자랑인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일입니다.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김대건 신부님의 불꽃 같은 삶을 묵상하면, 사제인 저의 마음 또한 뜨거운 감동과 깊은 성찰로 가득 차오릅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서한을 통해, 박해 속에서도 서로를 잊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박해가 가라앉은 뒤에 여러분이 모두 기쁨 속에 다시 만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서한 중에서)
오늘날 우리도 일상의 시련과 영적 메마름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고 계십니다. 성인의 굳건한 믿음을 본받아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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