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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월의 장미/나호열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연휴 기간동안 밀린 독서를 거의 다 끝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돈키호테>>를 또 한 번 다 읽었고, 까뮈의 <<페스트>>도 다 읽었다. 이번 주부터는 가벼운 마음으로 헤세의 <<데미안>>을 읽을 예정이다. 이 독서의 흐름은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의 "책 읽고 건너가기"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에 읽었던 고전 문학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은 완전히 새롭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가 있는데, 거기서 올해는 "우리대전같은책읽기"로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을 택했다. 지난 달부터 읽다가, 방치했는데, 이번 연휴에 다 읽었다. 새롭게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웠다. 인문운동가로서 이 문제들을 아침마다 조금씩 공유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람이 개별성을 최초로 인정받는 부모,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인권의 두 기둥인 자율과 공감이 뿌리내려 가족 내에서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행동, 가족 바깥에서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려는 태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특히 모든 아이들이 자율적 개인, 공감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경제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려면, 큰 권력과 제도의 개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위계적 질서를 걷어내고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 일상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마음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작은 민주주의가 일상의 곳곳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마음이다. 앞으로 아침마다 조금씩  <<이상한 정상 가족>>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이 책의 부제가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이다.

코로나-19로 강의가 거의 취소되어,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그만큼 많아졌다. 그러나 마음 속의 많은 이야기들을 대면으로 만나서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 싶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라는 책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발전이라고 간주하면서 용이 되기 위해 모든 고난을 감내하라는 식의 희망고문을 비판하였다. '개천에서 용 나는 ' 모델은 '억울하면 출세하라'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김희경 작가처럼, 나도 '용 키우기'에 달려드는 대신 미꾸라지들이 사는 개천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는 강문만 교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 나는 마을공동체 <우리마을대학>의 각 공방 대학을 키워, 개천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좀 매진할 생각이다.

까뮈의 <<페스트>>를 읽다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시탐탐 페스트로 봉쇄된 도시를 떠나려고만 했던 기자 랑베르가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에 주인공 리유가 말한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글이 길어지니 <페스트>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한다.

오늘도 온전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나를 온전한 '나'로 인정해 주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라는 장소다. ‘지금’과 ‘여기’가 없다면, 나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둘은 만물을 현존하게 만드는 존재의 집이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묵상에서 멋지게 표현했다. "과거를 삭제하고 미래를 앞당겨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이라면,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를 생경한 나로 전환시켜주고 더 나은 나로 수련 시키는 혁명의 장소다."

그걸 잘 보여준 것이 추석 전날에 있었던 나훈아의 비대면 콘서트였다고 본다. 나는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콘서트를 못 봤다. 다만 추석 연휴 내내 SNS를 나훈아가 달궜다. 단편적으로 접한 그의 쇼를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ICT 강국 답게 비대면으로 많은 연결을 했다. 정말 다른 나라에서는 못 할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74세의 나이인데, 어떻게 그 건강을 유지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도 자신감을 주었다. 난 아직 74세가 되려면 10년 이상이 남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처럼 꾸준히 하면, 나도 70이 넘으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시 나훈아는 프로라고 생각했다. 마침 배철현 교수도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로'는 자신이 올라선 무대를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마치 단두대에 올라선 사형수처럼 임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말의 어원은 '진실로 그 대상의 결과에 상관없이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프로'인 척하는 '아마추어'는 어제의 자신을 반복한다. 자신에게 감동적인 노래가 아니라, 관객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첨한다. 그런 사람은 구태의연한 어제를 반복하기에 급급하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시를 한 편 읽을 시간이다. 오늘은 나호열 시인의 <시월의 장미>이다. 연휴 기간에, 나는 내 폰을 가장 최근 버전의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사진을 위해서이다. 셀카봉에 장착하고 리모컨으로 찍으면 오늘 사진처럼 사물이 크게 나온다. 다들 겨울을 준비하며, 떠날 채비들로 바쁜데, 철모르는 장미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오늘 아침이 그 거다. 나훈아에게서 그 장미를 보았다. 그 정열. 장미처럼 오늘도 열정적으로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시월의 장미/나호열

고고하다
시월의 장미
시들어 버리지는 않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을 맞으며
똑똑 떨구어내는
선혈
붉음이 사라지고
장미꽃이 남는다
내 너를 위하여
담배를 피어주마
야윈 네 가시를 안아주마

나훈아는 이 공연을 위해 8개월 준비했다고 한다. 74살이 될 때까지 54년의 가수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녹슬지 않은 것은 연습 때문일 거다. 배철현 교수는 이 연습과 그 연습에 바친 몰입이 우리의 삶을 성숙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고 말한다. 나훈아는 이 무대를 준비하는 동료들에게 "연습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하면서 독려하였다고 한다. '연습'은 실전일 수밖에 없다. '깔끔한' 배교수의 글을 인용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연극무대에 비유해 <시학>이라는 책에서 인간문화의 정수를 글로 남겼다. 그는 그리스 비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극(悲劇)은 연습(演習)에 대한 재현(再現)이다. 그것은 심각(深刻)하고, 목적과 수단이 합일(合一)하고, 또한 압도(壓倒)적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무대에 오른 배우다. 배우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유일무이한 배역을 알아야 한다. 그 배역을 모른다면, 인생이 낭패다. 우리는 흔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나의 배역이라고 착각한다. 배역은, 자신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거룩한 임무다. 어떤 사람은 상인, 어떤 사람은 운동선수, 어떤 사람은 예능인, 어떤 사람은 위정자라는 배역을 맡는다. 각자가 맡는 배역에 몰입하는 것이 행복이고 권력이다."

"자신의 임무를 찾아 몰입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훌륭하게 완수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나훈아가 삶의 모토로 삼은 '연습'이다. 배우는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 역할을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 자신의 역할을 모르고 연기하는 배우처럼 안쓰러운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그 역할에 몰입할 리가 없고, 몰입이 가져다주는 신명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훈아의 평소 지식이나 독서 수준은 의심스럽다. 다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언뜻 인용되는 말들을 보면 거칠다. 그가 한 말을 가지고, 서로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는 꼴들은 문해력의 결핍에서 나온 것이다.

이어지는 배철현 교수의 주장은 나의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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