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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 번에 하루 씩만 살자.

37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6월 1일)

1
새롭게 시작하는 6월이다. 영어로 유월을 'June'이라 한다. 이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헤라 여신이 로마로 가면서 이름이 Juno(유노)로 바뀌면서 나온 것으로 본다. 헤라는 신화 속에서 결혼과 가정의 보호 신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6월에 결혼을 많이 한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6월의 신부는 행복하다." 헤라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라 한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여름의 첫 번째 달인 6월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 해당하는 '유노(Juno)의 달' 이다. '유노'는 '결혼과 가정의 수호여신'이다.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6월 초여름은 청년기에 해당한다. 고대에는 대개 청년기의 모든 남녀가 결혼으로 맺어졌다. 그리고 그 결혼의 가장 큰 결실은 무엇보다 아이들이었다.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성숙한 후 때가 되면 알아서 짝을 짓고 후손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순환주기는 계절의 순환주기와 많이 닮아 있다. 계절의 주기에서 신생의 봄은 성숙의 여름을 지나 결실의 가을과 쇠락의 겨울을 지나 또 한 번의 주기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 모두를 다그치고 몰아간다. 이런 순환 속에서 나의 <인문 일지>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당시의 상황이 내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글은 편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누구를 향해 흘러갈지 모른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 하는 것처럼, '6월'도 '육월'이 아니라, '유월'이라 한다. 몇 년 전에 카톡에서 만난 글을 잘 적어 두었다. "딱딱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길이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이 유연(柔然)해 유(柔)월, 세상 일에 다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 그저 남의 탓만 하지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유(由)월을 살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 자를 좋아한다. 특히 난 '일곱가지 유'를 자주 생각한다. "자유(自由)', '사유(思惟)', '여유(餘裕)', 향유(享有), 온유(溫柔), 치유(治癒) 그리고 YOU(당신). '유'자의 한문이 다 다르다. 'YOU'는 웃자고 넣은 거다.

2
몇 일 전부터, '한 번에 하루 씩만 살자'는 말을 되 뇌인다. 다음 기도를 자주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작은 것을 얻든 큰 것을 얻든
만족은 같게 하시고
일상의 소박한 것들에서
많은 감사를 발견하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시고
내가 상처 입어왔을 때에는
빨리 치유해 주소서.

이전에 나의 어리석음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 입힌 일이 있으면
나를 회개케 하여 빨리 사과하고
용서 받도록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투명하게 하소서.
왜곡이나 거짓이나 흐름이 없게 하시고
무엇이 내 마음을 통과할 때
그대로 지나가게 하소서.

그때 무엇인가 덧붙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나 이해나
감사나 희망이게 하소서.

약속을 조심스럽게 하게 하소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기 보다
잠시 미루게 하시고
순간의 감정을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시간을 아끼게 하소서.
하루 해가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 앞에 나타날 내일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해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 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과 안정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혹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정의 기쁨을 늘 가슴에 품게 하시고
이런 마음을 전할 기회를 자주 허락 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일하는 동안에는
열정이 식지 않게 하시고
열정이 식어 갈 때는
다음 사람에게 일을 넘겨주고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3
세 명의 벽돌공이 일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첫번째 벽돌공은 짜증냈다. “보면 몰라요?” 두번째 벽돌공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돈 벌고 있죠.” 마지막 벽돌공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죠.”

이 세 명이 갑자기 죽게 됐을 때, 각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첫번째 벽돌공은 “이까짓 벽돌이나 쌓다가 죽다니” 분노하고 후회할 지 모른다. 두번째 벽돌공은 “애써 일했지만 돈도 많이 못 벌고 벌어놓은 돈 제대로 쓰지도 못하네” 씁쓸해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세번째 벽돌공은? 아마 ”완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 아름다운 성당이 완공되면 사람들이 기도하고 위안 받을 거야"라고 기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 셋 중 어느 것이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동화나 우화의 해피 엔딩에 익숙할 뿐 아니라 객관식 문제 풀이에 고도로 숙련된 한국인은 누구 라 할 것 없이 3번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진짜 3번처럼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모두가 적당한 대답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개그맨 출신 사업가, 작가, 강사이자 유튜버인 고명환이 쓴 책 <<고전이 답했다 당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는 이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저 돈만 좇는다고 돈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을 먼저 위해야, 그래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이나 행동을 해야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남을 위해 가치를 생산하는 삶을 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소비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소비를 해야 하느냐, 이 소비가 괜찮은 것이냐, 스스로 의문이 들 때엔 이것이 생산을 위한 소비인가를 따져보라. 읽을 책을 사야 쓸 책이 나온다면, 그 책은 사야 한다. 그 이외 소비는 최소화하는 게 좋다.

벽돌공 이야기의 핵심도 거기에 있다. 일단 뭔가 남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열심히. 그걸 고명환은 “돈그릇을 키우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소소한 내 이익부터 챙기는 게 아니라 남을 구하려 들고 그러다 보면 고객감동이, 고객만족이 따라오고, 그에 따라 돈이 흘러들어오니 그게 바로 내가 가진 돈 그릇을 키우는 일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자신의 직업(Vocation)을 휴가(Vacation)로 만드는 것”이 출발이다.

4
읽다 만, 이정민(데비 리)이라는 분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을 다시 펼쳤다. 오늘 만난 화두는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에서 나 혼자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는 거다. 이 책을 계속 공유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길을 찾는 인생 수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로를 살피어 방향을 조정해주는 항해사도. 때마다 연료를 채워주는 기관사도, 배 안의 사람들을 돌보는 조리원과 승무원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여 마지막까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를 끼치는 이가 올라타기도 하고, 목적지가 달라 잠시 머물다 내리는 이들도 있다. 누구를 곁에 두고 누구를 떠나 보낼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선장인 나 자신의 몫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혼자서 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헬렌 캘러의 말이다. 인생이라는 항해 길에서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할 때, 우리의 삶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평화를 얻게 된다.

나는 이것을 갖고 있지만 저것이 없고, 어떤 사람들은 저것을 갖고 잇지만 이것이 없다. 그 빈 공간을 서로 채워주면서 가치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하루하루를 개척하며 살아가는 누구에게 나 각자의 짐이 있다. 그런 고단함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고됨을 알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응원하며 살 수 있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한 삶이 된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살려고 한다. "Honor today, live well"(강상구)를 외치면서. 이  말은 '오늘을 귀하게 대할 때 삶도 잘 살아진다'는 뜻이다. 산다는 것은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연속이다. 그렇게 살다가, 그날 주어진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다. 특별한 삶, 특별한 죽음은 없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기분이 좋은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폭풍우와 암초가 도사리는 절망의 바다에서도, 함께하는 이들의 사랑과 지지가 있다면 배는 좌초 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가 어디에 사는 지, 그 사람의 인기나, 사회적 위치, 경제적 영같이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여러 조건과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편견을 배제하고, 그 사람 자체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할 것이다. 다짐한다. 그것을 앞으로는 더 철저하게 실천하리라. 마음으로 관계를 맺을 생각이다.  편견 없이, 겉모습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만날 생각이다.

사람을 수치가 아닌 한 편의 이야기로 마주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남기는,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경험이다.

5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로 말씀은 <마르코 12,1-12>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늘 그러하기를>
하느님의 믿음에
나의 믿음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믿음일 때까지
하느님의 희망에
나의 희망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희망일 때까지
하느님의 사랑에
나의 희망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사랑일 때까지
하느님의 선함에
나의 선함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선함일 때까지
하느님의 기쁨에
나의 기쁨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기쁨일 때까지
하느님의 섬김에
나의 섬김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섬김일 때까지
하느님의 살림에
나의 살림을
늘 그러하기를
마침내 온 누리
살림일 때까지

6
생명이신 하느님 그리고 죽음의 문화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나요?
2026/6/1/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코 복음 12장 1-12절: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생명의 하느님
생명과 죽음의 기로가 선명하게 갈립니다. 복음 속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이 편히 농사지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생명의 길을 마련해 준 뒤 떠납니다. 이윽고 추수 때가 되어 소출의 일부를 거두고자 종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마치 그 밭이 제 것인 양 주인 행세를 하며 종들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주인의 아들을 보고도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라며 탐욕을 드러냅니다.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으나, 그들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비유를 묵상하다 보면 ‘어떻게 주인의 아들마저 죽일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돌아보면 이 비극적인 모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조롱하고, 낙태를 정당화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가 하느님의 법보다 앞서려 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생명의 신비를 알면서도 외면한 채,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죽음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어두운 단면입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우리는 이제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 참된 생명의 길을 밝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생활성서 2026년 6월호 '소금항아리'에서⠀

- 어떤 결정과 판단을 할 때,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선택한다.

7
2026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오늘은 2세기 중엽, 진리를 갈구하던 철학자에서 그리스도교의 참된 지혜를 발견하고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한 성 유스티노 순교자를 기리는 날입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소중한 선물을 어떻게 가꾸고,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깊이 일깨워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를 넘어, 하느님의 거룩함과 사랑 그리고 진실함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존재입니다. 이러한 은총을 지키기 위해 신앙은 매일 한 단계씩 사랑을 향해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2베드 1,5-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주인은 정성껏 일군 포도원을 소작인들에게 맡겼으나, 그들은 열매를 가로채기 위해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였고 마침내 주인이 보낸 사랑하는 아들마저 죽여 포도원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와 인간의 탐욕을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포도원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잠시 위탁하신 '세상'과 '우리의 삶'입니다. 성 유스티노는 자신이 가진 철학적 지식이라는 포도원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했으며, 결국 주인의 아드님을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소작인들은 아들을 죽여 없애려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아들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마르 12,10 참조) 하셨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실패한 순교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희생을 통해 교회의 기초를 세우십니다. 실제로 유스티노 성인이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며 남긴 변론들은 오늘날까지 가톨릭 신학의 소중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이 맡기신 삶의 포도원에서 합당한 사랑의 열매를 바치고 있습니까?. 성 유스티노는 사형 집행관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겪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구원이 되고 확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재능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쓰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나누어 봅시다. 세상의 부패에 휩쓸리지 않고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삶은 주님 보시기에 탐스러운 포도 송이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이 맡기신 삶의 포도원에서 충실한 소작인이 되게 하소서. 성 유스티노처럼 참된 진리를 탐구하고 수호하며, 저희의 모든 행실 속에 사랑을 더하여 당신께 기쁨의 열매를 봉헌하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