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4월 14일)
1
지난 4월 12일 <인문 일지>에 이어, 이정민(데비 리)이라는 분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을 계속 읽고 공유한다. 오늘은 "미운 오리는 아직 백조 무리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만난다.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 이야기 이다. 이 책에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어떤 무리에 동화되기 위해서 나만의 개성을 꽁꽁 숨겨야 했던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가 나로서 할 수 잇는 일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백조들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탐험해야 한다. "미운 오리"로 살면서 나 자신도, 저자처럼, 10여 년 전부터 <인문 일지>를 쓰며, 백조들의 무리를 찾았다. 나는 아침마다 이 <인문 일지>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그들과 함께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한 성찰을 나눈다.
이 때 중요한 것이 '기쁨'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즐겁고,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현장에 있는 것이다. 저자처럼, 나는 와인을 팔면서 글을 쓴다. 내 글 속에 쓴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친절을 행한다. 그것이 나 다운 일이고, 나를 알아 봐주는 백조 무리를 나에게 끌어 모아주는 일이라 믿는다. 그래 마을 활동가로 일하고, 자치위원으로 마을 자치에 힘을 보탠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며, 나 자신에 풍요로운 배움과 관계를 제공해줄 나만의 부족이 어딘 가에 반드시 있다. 오늘도 백조 무리를 만났을 때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나를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일상을 배치하며 살아간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세계를 만나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일이 아니라 생생한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2
다음은 "제품이 아닌 명품이 되는 삶"을 이야기 한다. 명품이 탄생하는 데는 언제 작가의 이름이 있다. 제품에 작가의 인생 스토리가 입혀지고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구현하려는 장인들의 혼이 담기면, 시중의 다른 흔한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명품이 탄생한다. 이런 명품은 세상이 변해도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쏟아져도, 작가의 독창성과 장인의 꼼꼼한 송길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품은 채 여전히 견고하게 제 기능을 다한다.
저자에게 명품은,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드러내는 위치재가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고유한 스토리와 가치를 품은 제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명품 브랜드 옷을 입는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리려 올라가는 사람, 마지막까지도 가치를 창출해서 주변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진정한 '명품 인간'이 된다.
그 길은 쉽지 않지만, 저자에게서 몇 가지 원칙을 배웠다.
- 적절한 관리가 첫 번째 원칙이다.
- 그 다음은 계속 가치를 창출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는 '작가'처럼 내 삶의 기획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장인'처럼 수고스럽더라도 혼을 담아 한 땀 한 땀 내 인생을 제작해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명품이 되는 사람을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 이름을 건 활동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도 최선을 다해 내 것, 내 이야기로 만들어 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주변에서 자꾸만 빠르고 쉬운 '공정'을 내게 권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내 안의 가치를 찾아서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여전히 빛나는, 대체 불가한 명품이 된다.
따라서 나는 아침마다 <인문 일지>를 쓰면 서 다짐한다. 명품 빈티지 삶을 위해 나를 가꾸고, 나를 사용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 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가꿔온 사람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를 품은, 대체 불가능한 명품 인간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3
나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중용>> 제23장의 다음 구절을 기억한다. "致曲 曲能有誠(치곡 곡능유성) (…) 唯天下至誠(유천하지성)이어 爲能化(위능화)"이다. '숨겨진 진실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란 뜻이다.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제23장은 우리가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지성(至誠)"을 잘 해석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두 단계이다. (1)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런 식으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작은 일에 최선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윤정구 교수는 이 "치곡(致曲)"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보다, '마음이나 의식의 굴곡진 것을 펴서 다스리는 것'으로 읽는다. '선한 생각을 하는 일'로 본다. 설사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힘은 본인이 하려는 것이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곡"의 다른 말이 '진성성(authenticity)'이라는 거다. '진정성'의 정의는 'true to oneself'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같은 상태를 의미 하기 때문이다. "곡(曲)"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감추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의식과 마음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치곡"이라는 거다.
4
<<중용>> 제23장에서 또한 "지성(至誠)"을 읽는다. "지성(至誠)"을 잘 해석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두 단계이다. (1)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런 식으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작은 일에 최선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중용>>의 원문을 읽어 본다.
其次(기차)는 致曲 曲能有誠(치곡 곡능유성)이니
誠則形(성즉형)하고
形則著(형즉저)하고
著則明(저즉명)하고
明則動(명즉동)하고
動則變(동즉변)하고 變則化(변즉화)니
唯天下至誠(유천하지성)이어 爲能化(위능화)니라
이를 해석하면,
숨겨진 진실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진심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형태가 만들어지고,
형태가 만들어지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명백해지고,
명백해지만 남을 감동시킨다.
남을 감동시키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되어진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변화의 완성은 오얏과 복숭아 향기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과수원을 찾아오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에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말이다. 오얏(자두)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모이게 하므로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하면, '복숭아 나무와 오얏(자두)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나무들은 일 년 내내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말없이 조용하게 정진해 왔던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내리나 서리가 내리나, 그 나무에겐 열매를 훌륭하게 맺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었다. 적당한 시간이 되니, 마침내 탐스런 복숭아와 자두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었다. 한문 '혜(蹊)'를 찾아 보면, 의미가 여럿이다. '좁은 길', '지름길', '발자국' 등이다. 혼자 생각해 보았다. 발자국을 남긴 좁은 길이 지름길이다. 지름길은 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요즈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군대에서 보냈던 허송세월을 사는 것 같다. 허(虛)하다. 그러나 복숭아 나무와 자주 나무처럼, 말없이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하며 보내면, 그 길이 지름길일 것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5
오늘은 부활 제2주간 화요일로 말씀은 <요한 3,7ㄱ.8-15>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다"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13)
땅으로
하늘을
내리는
사람의 아들
하늘로
땅을
올리는
사람의 아들
땅으로
내려오는
하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들
하늘로
오르는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들
땅에서
하늘 품어
하나 이루는
사람의 아들
하늘에서
땅 품어
하나 이루는
사람의 아들
6
성령의 바람이 나를 흔드는 걸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2026/4/14/부활 제2주간 화요일⠀
요한 복음 3장 7ㄱ.8-15절: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
정말 변화가 가능할까요?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잡을 수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살랑대는 들꽃,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를 보며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인간은 머리로 이해되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행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령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계산하고 계획한 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니코데모 역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이해하지는 못했기에,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이겠지요. 우리도 종종 ‘제가 정말 변화될 수 있을까요?’, ‘이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을까요?’라며 그분께 여쭈어보곤 합니다. 이 질문은 어쩌면 인간의 계산으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의 질문에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어 올린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광야에서 생명을 살린 것은 구리 뱀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본 이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를 지워 없애는 일도, 상처가 깨끗이 사라지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내 시선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으로 오늘의 삶을 바라볼 때, 그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닐까요? 김상태 사도 요한 신부(도미니코 수도회)/생활성서 2026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
- 이젠 세상 일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 보고, 그 분께 맡기자. 그러는 동안 나는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 신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마치 바람처럼 말이다. 신뢰와 희망,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하늘의 언어로 살아야 한다.
7
2026년 4월 14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와의 대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대화에서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그 신비가 마치 바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물을 흔들고 생명력을 전하듯, 성령의 사람 또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12)라고 물으십니다. 율법 학자였던 니코데모는 철저히 땅의 논리에 갇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는 생물학적인 질문만 던졌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며 '이만큼 봉사하면 이만큼 복을 주시겠지'라는 세상의 논리로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는 이제 신뢰와 희망,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하늘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어 올린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불평하다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들이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았듯이, 우리 역시 십자가에 드높이 올려진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내 죄와 상처에 매몰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죽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이들이 맺은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증언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라는 기록은 강요된 평등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을 맞은 이들이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일어난 자발적인 사랑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바르나바와 같은 이들이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놓았을 때 공동체에서 가난한 이들이 사라졌듯, 나눔이 기쁨이 되는 삶이야 말로 위로부터 태어난 이들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과연 성령의 사람입니까? 내 주머니와 권리에만 예민하다면 우리는 아직 땅의 사람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공동체의 평화를 선택하고, 고통받는 형제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다면 우리는 이미 바람 같은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 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정해 놓은 틀에 갇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고집과 계획이라는 틀을 조금만 허물어 보십시오. 그 틈 사이로 성령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고, 진정한 자유와 나눔의 기쁨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 시선을 땅에서 들어 하늘을 보게 하소서. 제 소유를 쥐고 있는 손을 펴서 형제들과 나누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미나리> (1) | 2026.04.29 |
|---|---|
| 멋지게 나이 드는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점 (1) | 2026.04.29 |
| 대화 나르시시즘 (0) | 2026.04.28 |
| 企者不立(기자불립), 跨者不行(과자불행) (0) | 2026.04.28 |
| 나는 그 지난한 시간을 담담하고 꿋꿋하게 살아낸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1) | 2026.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