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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4)

1764.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28일)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 법칙인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를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나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거다.

위태롭게 흔들리며 지옥으로 추락하는 세상을 천국으로 옮겨 놓는 일에 우리 자신의 역할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각자 은밀하게 개인적인 각자의 지옥이 있다. 프랑스어에 '샤꾕 아 싸 메르드(Chacun a sa merde)'란 말이 있다.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직역하면, '사람은 다 자신만의 문제[자신의 똥]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는 자신의 더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살다 보면, 교집합 없는 사건은 없다. 나 자신에게 온 사건 중에 내가 빠져 있는 채로 이루어진 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건도 내 안에 있는 세포와의 상호작용이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 각자는 자신의 안에 가지고 있는 문제, 즉 지옥이 무엇인지 철저히 파악하면 그런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있다.아니 애초에 그런 지옥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거다. 그러면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또한 죄악으로 가득 본성이 구원받는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동행하는 힘을 다시 배운 사람 답게 부끄러운 자의식을 떨쳐 내고, 자연스러운 자긍심과 당당한 자신감을 찾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몇일 동안 <창세기>를 다시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어제 공유했던 내용은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제안한 열매를 먹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러나 하와와 아담에게 저주를 내렸다. 하와 여자가 받은 저주는 단순하지 않다.

그 저주의 내용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뇌 용량이 크게 늘었다. 늘어난 뇌 용량 덕분에 자의식도 생겼다. 이때 태아 머리와 여성 골반 사이에 치열한 진화 경쟁이 벌어졌다. 여성은 달리기가 불편할 정도로 골반을 넓혔고, 인간의 아기는 비슷한 몸집의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하면 물렁물렁한 머리로 1년 이상 먼저 태어나게 진화됐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출산과 육아는 여성과 아기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 다름없이 첫해에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성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젠 <창세기>의 다음 구절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제3장 16절)고 말했다

아담과 그 후손까지도 만만치 않은 벌을 받았다. 하느님은 대략 이렇게 말했다. "남자야, 너는 여자의 말에 넘어가 눈이 열리고 밝아졌다. 뱀과 열매와 사랑하는 여자가 허락한 시력 덕분에 너는 멀리, 심지어 먼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은 재앙이 다가오는 것도 볼 수 있으므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영원히 희생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 항상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네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좋아하면 좋겠구나. 네 주변에 그런 것들이 잔뜩 자랄 테니까."

<창세기> 제3장 17장-19장을 공유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장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자연(大自然)은 육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 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기기 위한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夫大塊載我以形(부대괴재아이형) 勞我以生(로아이생) 佚我以老(일아이로) 息我以死(식아이사) 故善吾生者(고선오생자) 乃所以善吾死也(내소이선오사야)"

원문을 나름대로 다시 풀이해 본다. 사는 것이 힘들 때, 나를 위로 해주는 문장들이다.
(1) 夫大塊載我以形(부대괴재아이형): 자연은 우리에게 육체라는 모습을 주어 이 세상을 살게 한다. 여기서 '대괴'가 혼돈이다. 혼돈은 여성이고, 거기서 우리의 모습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2) 勞我以生(로아이생) : 또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의 수고로 살아야 한다. 공짜는 없다.
(3) 佚我以老(일아이로) :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하게 한다. 그러니까 은퇴하면 편안하게 지내는 거다. 그래 나는 가급적 하루 한 가지 씩만 일을 하려 한다.
(4) 息我以死(식아이사) :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어 다행인 거다.
(5) 故善吾生者(고선오생자) 乃所以善吾死也(내소이선오사야) :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는 것은 곧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 있어도 좋고, 죽어도 좋다. 다 똑같다.

너무 길어지니, 오늘의 화두와 맞고, 이 계절에 어울리는 좋은 시 하나를 공유한다.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을 샀다. 내가 좋아하는 류근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왜 <인문 일기>에서 매일 시를 한 편 씩 공유하는지 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이 시집에 있는 거의 모든 시들이 <인문 일기>에서 소개하였음을 확인했다. "여기에 당신이 모르는 시는 없다. 다만 잊고 사는 시일 뿐. 당신이 지금 외롭고 고단한 것은 시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모서리가 없어서/최하연

1.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식탁에 올려놓고
얼음물을 붓는다
산봉우리에서 구름이 사라지고
가문비나무와 졸참나무 사이에
바람이 머무는 동안
한 모금 마시고
또 물을 붓는다
오후의 햇살이 식탁을 가로지르자
갈색도 아니고 분홍은 더욱더 아닌
서재가 가라앉는다
달력의 숫자 하나가
머리부터 흠뻑 젖는다
폴리에틸렌 프탈레이트 투명 컵 안으로
前.後.左.右.上.下.어제.그제.그리고.太初가
수면 아래
꼭꼭 숨어 있다
이제 또 물을 부으면

2.
흰 구름 아래, 하얀 날개
백로 한 쌍이 무논 위를 저벅저벅 걷다가
아가의 속살처럼 날아오른다
봄 가고 여름이면
언제까지가 꽃이고
어디서부터가 열매일까
그 경계로 물이 차오르고
그 다음은 푸른 적막이어서
벼는 여름 햇살에 익고
소금쟁이는
네 발로 수면에서 버티는 중
논이 하늘에 빠지지 않게
하늘이 논에 젖지 않게

*大方無隅(대방무우), ‘극한의 네모는 모서리가 없다’는 『노자』의 한 구절.


다시 오늘의 화두로 다시 돌아 온다. 하느님은 저주의 말과 함께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한다. 그 의미는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의식이 없는 유아기의 동물 세계에서 쫓겨나 공포로 가득한 역사의 세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에덴동산의 정문을 지키게 하였다. 왜냐하면 몰래 들어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조치를 했을까? 우리의 눈에는 옹졸한 짓 같지만, 천국은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하면, 영생은 우리가 땀을 흘려 얻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다. 내 수고로 내 천국을 만드는 거다.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에서 두 번째 법칙인 '우리 자신을 마치 도와주어야 할 사람처럼 대해 주라'는 것이 이젠 더 이해가 잘 된다. 피터슨은 이 책에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왜 아픈 강아지에게는 처방 약을 열심히 먹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아담의 후손만큼이나 발가벗고 추하고 방어적이고 비판적이고 무가치하고 비열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그 존재를 애지중지 보살펴야 한다는 거다..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죄, 희망, 노동, 고통은 <창세기>의 주요 주제이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여기서 '고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최근의 정치 이야기를 좀 한다.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장항준 감독이 했다는 말, 서로 분노하는 지점과 웃는 지점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오늘 아침 다시 소환한다. 웃는 포인트가 같다는 건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분노하는 지점이 같다는 건 세계관이 통한다는 말이다.

그 세계관은 신념체계에서 나온다. 신념체계를 공유하면,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신념체계는 단순히 믿음만은 아니다. 신념체계를 다르게 말하면, 가치관이다. 그래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가치관이나 신념체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기에 사이좋게 협력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경쟁마저 평화롭게 할 수 있다. 공유된 신념 체계는 모든 사람을 단순한 잣대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들은 단순하다. 그들은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애를 쓴다. 이런 체계가 위협받으면 중대한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해가 간다. 진영으로 나뉘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를 말이다.

사람들은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은 혼돈의 감정을 줄이려고 신념체계가 같은 진영에서 논다. 행동은 말보다 힘이 세다. 공유된 신념 체계는 동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위와 기대의 공유 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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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문 일기>에서 분노를 느낀다면, 분노의 지점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길 바란다. 오늘 아침 세 가지 최근 화젯거리를 인문운동가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

하나는 '화천대유' 사건 게이트이다. 이름이 좋은데, 왜 정의롭게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동양철학과 나온 분이 이 말은 몰랐던 것일까?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어째든 회사 이름은 좋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天)의 불(火), 태양을 의미하고, 대유(大有)는 크게 만족하고, 크게 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늘의 불인 태양이 밝게 타올라 세상을 비추게 되어 모두 만족하고 천하를 소유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 정정당당하게 천하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그래 최근 유행하는 인사가 '화천대유하세요!'이다. 농담으로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충청도에서는 '화천대~유'라고 답한다. '화천대유'에 대한 해석으로 '하늘에 붙어있는 밝은 해가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를 나는 더 좋아한다. 더 나아가 '하늘의 도움을 받는 자가 천하를 소유하고 다스린다'라고 해석 되기도 하니, 대선 후보들은 이 말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하다.

'화천대유'의 자회사인 '천화동인(天火同人)' 주식회사의 이름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함을 하나로 합쳐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주역에서는 마음 먹은 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운으로 푼다. 천화는 불이 하늘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마음 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이 동양철학과 출신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이다. 이것은 인생의 막다른 곳까지 내몰린 이들이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탈락하면 죽음이라는 잔인한 게임 룰은 극한 경쟁으로 내몰린 현대사회를 직설적으로 풍자한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를 꼬집어내 글로벌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한류 드라마와 결이 다르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오늘 저녁부터 볼 생각이다.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것은, <오징어 게임>을 보면, 돈이 없는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점이란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는다고 해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깐부라는 말이 나오는데, 친구, 짝꿍, 동료, 내 팀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 한다.

평소에 신뢰를 갖고 있는 윤정구 교수의 담벼락에서는 이 드라마를 이렇게 말하였다. "이 드라마는 땀과 노력이 아니라 돈을 놓고 논 먹기로 벌이는 과실 지상주의 대한민국을 풍자한다.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서 과일나무를 통해 거두어들이는 과일의 맛을 체험하는 땀의 공정성(Sweat Equity)를 폐기 처분하고 땀 흘리지 않고 과일을 얻어내는 게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땀과 노력을 통해 미래를 만드는 것에 희망을 잃은 결과물이다. 미래에 대한 건강한 희망의 상실이 대한민국이 부동산 투기, 가상화폐투기, 주식투기 등 각종 투기장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무한경쟁, 일확천금, 승자독식이라는 자본주의 게임에 점령되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는듯 보인다. 경제학 게임은 N번의 게임이지만 이 게임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매번 리셋되어 가며 End Game을 향해 진행되게 되어 있다. 마지막 게임은 진짜 고수가 동원 가능한 모든 마키아벨리 전략을 동원하는 혹독한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말들은 앞에 그레이하운드 개 경주처럼 앞에 먹이감을 쫒아 달리지만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이를 가져가는 사람들은 VIP로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진짜 이런 오징어 게임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가 미래를 어떻게 건강하게 복원할 것인지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공정한 운동장에서 땀을 통해 얻어낸 결실에 대한 귀중한 체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복원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언론도 문제이다. 어제 한 신문에서 본 것이다. 주요 종합일간지의 1면 관련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5000억 번 화천대유, 대리 성과급이 50억”(조선일보)
“아들 50억 퇴직금 논란 곽상도 국민의힘 탈당”(중앙일보)
“야로 번진 ‘화천대유’...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동아일보)
“아들 화천대유 50억 퇴직금 논란... 곽상도 탈당”(세계일보)
“곽상도 아들 퇴직금 50억... 화천대유 수상한 돈잔치”(국민일보)
“곽상도 아들, 6년 근무 화천대유 퇴직금 50억”(경향신문)
“곽상도 아들 ‘50억 퇴직금’... 대장동 의혹 새 국면”(한겨레)
“CEO보다 많은 ‘곽 대리’의 50억 퇴직금”(한국일보)
“화천대유 6년간 총퇴직금 3억원 곽상도 아들은 혼자 50억 받았다”(서울신문)

곽상도 아들 50억원에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에 ‘곽상도 의원 아들’ 언급 안 했다. 이게 한국 언론의 현실인데, 다름으로 받아들이자. 다양성으로 위로 삼자. 정의는 그 안에 숨에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대권 후보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순전히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도움을 받은 것은 이원배라는 분의 글이다. 몇 일동안 최초의 인간부터 우리는 원초적으로 고통을 갖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나는 공유하고 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수고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을 모르는 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외로움', '공포', '고통'이라는 감정들에 대해 좀 살펴보자.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사회신경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 카치오포(John T. Cacioppo)는 외로움을 인류 진화의 핵심 요소로 꼽는다. 누구나 알다시피 외로우면 고통스럽다. 그런데 고통은 인류를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아침마다 하는 이야기이다.

다음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피가 나는데 고통스럽지 않다면 인류는 치료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처가 너무 고통스럽기에 인류는 그것을 치료하려고 시도했고, 살아남았다. 공포도 마찬가지다. 공포는 절대적으로 생존을 위해 생긴 감정이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위험한 상황에서 몸에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코르티솔의 역할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것이다. 심장이 빨리 뛰어야 온 몸에 피가 더 빨리 공급되고, 그래야 더 빨리 도망가거나 싸울 수 있다.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땀도 더 많이 흐르는데, 그래야 몸이 미끄러워져 천적에게 쉽게 붙잡히지 않는다. 공포는 더 나은 도주, 혹은 더 나은 투쟁을 위해 생긴 생존 도구라는 이야기다. 이완배 기자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외로울 때 고통을 느끼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인류는 외로우면 절대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인류는 다른 초식 동물처럼 빠르지도 않았고, 육식 동물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었다. 이런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돕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인류는 외로울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 고통이 있어야 인류는 외로움을 피하려 하고, 그래야 더 나은 생존 가능성을 거머쥘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민중들은 외로움의 고통과 고립의 공포를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이런 이들에게는 당연히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생긴다. 내가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배제할 것이고 그러면 연대의 가능성이 깨진다. 이 일이 누적되면 나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대선 후보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다. 이완배 기자는 최근 1일 1논란을 일으키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 평가한다. "저 사람은 잡식동물이 아니라 애초부터 육식동물로 태어난 게 아닐까?" 이완배 가지가 들고 있는 예는 다음과 같다.

(1) 그에게는 배려라는 것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1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를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된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등의 발언을 보면 그렇다. 논란이 일자 그는 “취지가 그게 아니다”라고 열심히 해명을 했다. 그런데 100보를 양보해 해명이 맞다 쳐도(사실 해명도 엉망진창이었지만), 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민중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저런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거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류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의 고통, 고립의 공포를 느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통 평생을 권력자로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세상이 자기를 대접해주니 ‘나에게는 상대가 필요하고 그래서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기본적 감정이 사라진 것이다. 평생 칼을 들고 누군가를 썰어온 그런 인물들에게는 특히 잡식동물의 본능은 사라지고, 군림하고 포식하는 육식동물의 본성만 남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번, ‘나에게는 상대가 필요하고 그래서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기본적 감정이 없는 거다.

둘째, 그는 민중들이 생존을 위해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을 거의 못 느낀다. “집이 없어서 청약 통장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발언을 생각해보라. 이게 말이냐, 항문으로 새어 나오는 가스냐? 사람들은 “그가 주택정책에 대해 이해가 전무하다”거나, “이런 사람에게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맡기냐?”라고 비판하던데, 나는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집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해본 사람은, 무주택자의 설움을 겪어본 사람은 이런 말실수를 절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주 가운데 ‘주(住)’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생존을 위협하는 엄청난 공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집이 없는데도" 이런 공포를 느껴보지 않았다. 왜? 짐작 컨대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언제이건 집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두려움이 없고, 그러니 청약통장에 관심이 없다. 그의 정서는 이미 민중들의 그것과 심각하게 괴리돼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신경과학자 카치오포에 따르면, 인류는 외로움의 고통과 공포를 알기에 배려를 배우고 연대와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됐다. 이런 측면서, 이완배 기자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도, 인문운동가로서,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우리의 지도자가 민중들이 느끼는 그 고통과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내가 느끼는 삶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그 감정을 함께 느껴야 서로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후보는 이에 합당한 인물인가? 합당은 개뿔, 아무리 살펴봐도 나는 그에게서 민중 위에 군림하는 오만함 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그의 습관화된 쩍벌이 최상위 포식자 육식동물의 과시욕으로 보일 정도다. 그리고 잡식동물인 나는, 절대 육식동물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