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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나 자신

365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4월 12일)

1
아침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잘 사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애를 쓰지만, 관성에 젖어 그냥 시간을 막 흘려 보내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다. 이 때 나는 물처럼 살자고 다짐한다. 즉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가야 할 곳을 정해 놓고 계속 흐르면 된다고 자기 위로를 하면서.

생명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정된 삶과 질병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할 것이 바로 “햇빛, 공기, 물, 영양, 파장(파동)" 다섯가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계속적인 이상 기후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할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본다.  이중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햇빛, 공기, 물, 영양“으로 자연에서 오는 것이고, “파장(파동)과 희망“은 본인의 선택사항이다.

그럼에도 생명은 아프다. 아프지 않은 생명은 없다. 모두 다 고통의 속사정이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식물의 푸른 덩굴이 팔을 뻗어 위쪽을 향해 자라듯이, 우리의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바닷가 모래밭에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수는 제 몸을 불태우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만큼 에는 이르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존재들이 곤란을 견디고 있다. 고통 없이는 빛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반짝이는 별의 배경은 긴 밤이고, 캄캄한 어둠이다. 꽃도 나비도 살아 있음을 아픔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가고 싶어"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바다처럼 넓고 큰 세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힘내자. 물처럼 사는 거다.

물처럼 살자는 것은 물은 흐르다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채워주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은 빨리 간다고 뽐내지 않고 늦게 간다 안타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은 자리를 다투지 않고, 앞서 거니 뒤서 거니 더불어 함께 흐르기 때문이다. 물은 흘러온 만큼 흘려보내고, 흘러간 만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은 채운 후 흐른다'는 맹자(孟子)의 이루하(离婁下)에 나오는 영과후진(盈科後進)에서 유래한 명언입니다. 이는 흐르는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후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억지로 서두르지 않고 순리대로 하나하나 기초를 쌓아 나가는 학문과 인생의 자세를 강조하는 교훈이다.

물처럼 살자는 것은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나누어 주고 가라는 것이다. 물처럼 살자는 것은 빨리 간다 늦게 간다 조급해 말고, 앞에 선들 뒤에 선들 괘념치 말라는 것이다. 물처럼 살라는 것은 받은 만큼 나누고, 나눈 만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흐르는 물 못 내 아쉽다고, 붙잡아 가두면 언젠가 넘쳐가듯, 가는 세월 못 잊어 붙잡고 있으면, 그대로 마음의 짐이 되어 고통으로 남는다. 물처럼 살라는 것은 미움도 아픔도 물처럼 그냥 흘려보내라는 것이다.

2
오늘은 묘비명(墓碑銘,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자기 구원의 가이드 맵"이란 부제가 붙은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한형조 독해)의 첫 장에 이황의 묘비명인 "자명(自銘)"이 나온다. 

퇴계 이황의 자명(自銘, 묘비문을 스스로 쓴 내용): 4언 24구 96자로 압축했다. 그 해석들은 다양하다.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커 가면서 병 치레도 많았다. 중년에는 어이해 배움을 즐겼으며 만년에는 어이해 벼슬을 받았다. 배움은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할수록 더욱 불어났다. 나아가 일함에는 실패하고, 물러나 갈무리함에는 뜻을 지켰다. 나라 은혜에 깊이 부끄럽고 성인 말씀에 참으로 두렵 도다. 산은 높고 높으며 물은 솟아나서 끊임없이 없는데 벼슬 전 평민 옷을 너울거리며 온갖 비방 훌훌 벗어버렸으나, 내 그리운 님 길이 막혔으나 나의 패물 누가 봐 줄거나, 옛사람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나의 뜻을 쥐고 있었지만, 나는 어찌 오는 세상을 알 수 있으리오. 지금의 눈 앞도 잡지 못하는데, 근심 속에 즐거움 있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 있는 법, 조화를 타고 다함으로 돌아가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랴."

생이대치(生而大癡): 태어나서는 크게 어리석었고
장이다질(壯而多疾): 장성해서는 병도 많았다.
중하기학(中何嗜學): 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만하도작(晩何叨爵): 느지막에 벼슬길에 들었다.

학구유막(學求猶邈): 학문은 구할수록 오히려 멀어지고
작사유영(爵辭愈嬰):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 더 얽어 매였다.
진행지겁(進行之跲): 벼슬길에 나아가기 어려워서
퇴장지정(退藏之貞): 물러나 갈무리는 곧게 하였다.

심참국은(深慙國恩): 나라의 은혜에 매우 부끄럽고
단외성언(亶畏聖言): 성현의 말씀이 참으로 두려웠다.
유산억억(有山嶷嶷): 산은 높고 높이 솟아 있고
유수원원(有水源源): 물은 끊임없이 흘렀다. 

파사초복(婆裟初服): 벼슬살이 벗어나 한가로우니
탈략중산(脫略衆訕): 뭇 사람 비방에서 벗어났다.
아회이조(我懷伊阻): 나의 뜻이 이렇게 막히니
아패수완(我佩誰玩): 의 학문 그 누가 즐기리.

아사고인(我思古人): 내가 옛 사람을 생각하니
실획아심(實獲我心): 실로 그 예사람을 내 마음에 얻었다.
영지내세(寧知來世): 어찌 알리요, 다음 세상이
불획금혜(不獲今兮): 지금의 내 마음, 내가 걸은 길에 알아줄 것이다.

우중유락(憂中有樂): 근심 속에 즐거움이 있고
락중유우(樂中有憂):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네.
승화귀진(乘化歸盡): 조화를 타고 사라짐이여
부하구혜(復何求兮):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이황의 <자명> 16-19구가 인상적이다. 삶이 어떤 도정으로 흘러가는지 알고자 한다면 '오래된 학문(古學)'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걸은 길을 후세가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영혼을 돌보는 법이 그리운 사람들, 휘황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막막한 사람들"(한형조)에게 지도(地圖, 가이드)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3
지난 4월 10일 <인문 일지>에 이어, 이정민(데비 리)이라는 분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을 읽는다. 삶이라는 항해를 하면서 배에는 소중한 가치나 염원을 담아서 이름을 붙인다. 내게 주어진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을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내 배에는 진짜 이름이 붙는다. 주어진 사람을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손에 나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되 단호함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결연함이 없을 때는 상대방이 갑이든 을이든 우리를 이용하곤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늘 하는 안전 교육에서도 긴급 상황에서 산소마스크는 자신 것을 먼저 쓰라고 교육한다.  자기가 숨을 쉴 수 있어야 옆 사람도 도울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연예인들은 즐거움, 의사는 건강, 청소부는 쾌적함, 기술자는 편리함, 작가는 통찰과 감동 등 우리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유무형의 가치를 만들고 타인에게 전하며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내가 즐겁지 않고, 건강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고, 감동이 없는데 다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주려고 할 때가 있다. 잠깐은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탈이 나고 말 것이다. 내가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치를 펼칠 수 있다.

배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어렵다. 성철 스님은 지독한 독서 광이었다. 하지만 수자오계(修者五戒) 즉 '수행자를 위한 다섯 가지 가르침'에서는 '책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평소 수행하는 제자들에게도 '진리는 문장 아닌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였다. 높은 단계의 경지에 오르려는 포부는 가졌어도 근기가 그 포부의 무게를 감당할 정도로 갖춰지지 못한 사람이 성철 스님의 이 말을 듣는다면, 바로 책읽기를 끊을 수 있다. 그것이 훨씬 간편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책 읽지 말라'는 이 말이 독서광으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문장과 마음'의 관계를 깨달은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단한 책읽기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으면서 바로 책 끊기의 경지에 오르려 하다 가는 인생에서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어떤 큰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계율을 넘나들 수 있었다. 이것을 본 새끼 스님도 덩달아 계율을 넘나든다. 계율을 넘나든 것은 같으나 그 높이와 깊이는 다르다. 높이와 깊이가 다르면 감화력이 다르다. 새끼스님도 큰 스님이 아주 긴 시간동안 수계(受戒)의 고통과 지난함을 정성껏 거치고 나서 높은 위치에 오른 후 에야 수계(受戒)의 한 형식으로서 계율을 넘나든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새끼 스님은 그 고통과 지난함을 피하고자 계율을 넘나드는 행위만 따라서 한다. 지적인 게으름이다. '착실한 보폭'이 없는 깨달음은 늘 경박하게 쪼그라든다.  

착실한 보폭과 함께 자기 존중도 중요하다. 나의 비전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나의 고통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이 세상에 오로지 나 뿐이다. 그런 나를 아껴주고 쓰다듬어줘야 건강한 자존감이 빚어진다. 그리고 자신을 존중할수록 비교하는 마음이 줄어 든다. 나를 사랑하면, 나를 증명하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건강하게 도울 수 잇다. 자신을 존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세상의 기준을 먼저 듣는다. 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어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지 등 이런 것들을 파악하는 활동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반면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괜찮아 보이면서 안정적인 보수를 받는 직업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먼저,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다운 일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도록 은근히 강요하거나 때로는 다그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든 나를 찾고자 노력할 때,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내가 누군인지를 섬세하게 들여다 보는 것은 내 길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만들어주고 환경이 바뀔 때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쿠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느리고, 때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발견하는 작은 깨달음 하나하나가 삶을 온전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되어 가는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나는 전우용 교수가 담벼락에 글을 올리면 꼭 읽는다. 나의 멘토이다. 아침에 만난 문장이다. 작금의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 생각하여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후, 인류는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자멸(自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었습니다. 전쟁 없는 세계를 만들려면 국가간 평등을 실현해야 했으며, 그 전제는 ‘인류 평등’이었습니다. UN이 창설되고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으며, ‘구(舊) 식민지 질서 타파’, 즉 ‘탈(脫)식민’이 인류사적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물론 이 과제는 양면적이었습니다. 
• 식민지를 지배했던 나라 국민들에게는 제국주의와 패권주의, 자민족 우월주의를 청산/극복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고, 
• 식민지였던 지역 주민들에게는 종속적 사회와 경제구조 타파, 빈곤과 자민족 열등의식 극복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이 과제를 수행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었어도 구(舊) 식민 모국의 언어와 문자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구(舊) 식민지 주민 다수는 자기 생각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고 자기 문자로 기록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 식민지 체제'가 해체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식민지였던 나라 대다수는 아직도 독재와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민지였다가 이른바 ‘선진국 그룹'에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그가  세종학당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취임사는 여러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 일부를 갈무리하며 공유한다.

▪ 한글에 대한 자부심: 한글은 해방 후 민족 문화 재건과 국민통합, 경제성장 그리고 민주화를 촉진한 지렛대였다.

"한글은 식민지하 한국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고, 해방 후 민족문화 재건과 국민통합, 경제성장을 촉진한 지렛대였습니다. 한글은 작업장 내의 효율적인 의사 소통과 국민들 사이의 사회적 토론을 쉽고 빠르게 매개했습니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에 편안케 할 따름’이라던 세종대왕의 뜻은 한국전쟁 이후 신분의식 소멸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전면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한글을 매개로 빠르게 형성된 ‘집단지성’은 식민지배의 유산인 독재와 빈곤을 극복하는 데에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한국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은 ‘탈식민'의 인류사적 과제를 선두에서 수행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문화는 제국주의적 오만함도, 식민지적 비굴함도 없는 지점에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소구력(訴求力, appeal, 관심을 끄는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도, 미국 국적의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제국주의적 코드가 없는 데에 있습니다."

▪ 우리는 나름의 발전 모델을 갖고 탈식민 근대화의 모법으로 자리 잡는데, 한글을 갖고 집단 지성을 발휘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7년 「나의 소원」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습니다. ‘탈식민의 세계’를 향한 꿈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도 ‘탈식민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미숙성을 드러냈고, 시행착오들을 범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민주국가/선진국가로의 ‘이행’을 ‘민족적 과제’로 삼으면서 ‘모범 국가’들을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국인들은 자기 나름의 ‘발전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식민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다 청산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인들은 독재체제를 타도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주정'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군사력과 경제규모면에서도 ‘열강(列强)’의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이제 한국은 식민지를 겪은 많은 나라 국민들에게 미국이나 유럽국가, 일본과는 다른 ‘탈 식민 근대 화’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인들에게는 ‘탈식민’의 경험을 전 인류와 공유할 책임이 부과된 셈입니다."

▪ 전 인류의 꿈이었던 ‘평화로운 지구’, ‘탈식민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에 세종학당재단의 책무는 더욱 막중해 졌다.

"최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반성적 사유에 기초한 현대 문명이 급속히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류평등과 주권평등의 원칙이 무너지고, ‘힘이 지배하는 세계’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전 인류의 꿈이었던 ‘평화로운 지구’, ‘탈식민의 세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인들이 가꾸고 다듬어 온 ‘탈식민의 가치’를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일은 더욱 절실합니다. 이제 우리 세종학당재단의 책무는 더욱 막중해졌습니다. 우리가 세계인에게 보급해야 하는 것은 ‘언어’만이 아닙니다. 우리 말과 우리 문화에는 세계평화와 인류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탈식민의 가치’가 녹아 있습니다. 세종학당재단은 세계인과 함께 이 가치를 수호하는 보루가 되어야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5
오늘은 부활 제2주일 /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말씀은 <요한 20,19-31>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예수님과 토마스, 복음서를 쓴 목적" 이다.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 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평화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19,19.21.26)

벗을 품으니
내가 평화입니다
벗을 바라보니
눈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들으니
귀가 평화입니다
벗에게 말하니
입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내미니
손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다가가니
발이 평화입니다
벗을 그리니
마음이 평화입니다
벗과 함께하니
삶이 평화입니다
벗을 있게 하니
살림이 평화입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이어야 합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이고 싶습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입니다

6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에 지배당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지는 않나요?
2026/4/12/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요한 복음 20장 19-31절

두려움에서 평화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처럼 그들의 마음 역시 닫혀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 건네신 첫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문을 열어야만 들어오는 평화가 아니라,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는 평화인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도 두려움의 문, 상처의 문, 실패의 문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주시는 첫 말씀 역시 “평화가 너희와 함께”일 테지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말하는 다른 제자들의 고백에도 토마스는 자신이 직접 보고 또 만져 보지 않고서는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토마스의 반응은 진솔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드레 뒤에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토마스의 마음을 아신 듯 이렇게 이르시지요.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이에 토마스는 사람들의 말을 빌린 고백이 아니라 자기의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신앙은 직접 체험해야만 자라는가 봅니다. 토마스 역시 이 체험으로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신앙생활의 목적은 삶의 지식을 늘리거나, 윤리적 가르침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분이신 그분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일 것입니다. 김상태 사도 요한 신부(도미니코 수도회)/생활성서 2026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