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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우리들 삶에 '소금'을 치다. (30)

우리들 삶에 '소금'을 치다. (30)
1
모든 비극은 아주 사소한 ‘게으름’에서 시작된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구약의 다윗 이야기를 한다. 구약에서 다윗의 죄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2사무 11,1).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한가로이 거닐던 다윗의 눈에 목욕하는 여인, 밧 세바가 들어온다. 다윗은 밧 세바를 보고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게 된다. 
1. 시선(눈의 간음)-방심이 문제이다. 처음에 다윗은 목욕하는 밧 세바로부터 눈을 돌렸어야 했다.
2. 간통-욕망의 문제이다. 다윗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범한다.
3. 기만- 술수가 시작된다. 다윗은 자신의 간통을 덮으려고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전장에서 불러들여 술수를 쓴다.
4. 살인 교사-파멸 한다.  다윗은 자신의 뜻대로 안 되자, 결국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보내 죽게 만듭니다.

이 수순에 나는 주목했다.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때려잡았던 다윗이, 정작 자기 내면의 욕망이라는 적 앞에서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죄는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하고 들어오지 않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틈, 한순간의 방심을 타고 들어와 결국 영혼을 집어삼킨다. 방심은 거인도 쓰러뜨린다.

2
맹자의 4단은 마음에 담겨 있다. 그 마음을 놓는 게 방심이다. 방심하면 자포자기 하게 된다.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했던 모습을 삶 터에서 자주 접하는 시절이다. 자기가 달려가는 길 끝에 절벽이 있을 줄 모르고 욕망을 주체치 못해 끝까지 달려가다가 고꾸라지는 이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맹자 식으로 말하자면 자포자기의 전형이다. 흔히 자포자기라고 하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퍼져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라는 말의 지식 재산권 자 격인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예의를 비방 하며 말하는 것을 일러 ‘자포(自暴)’라 하고, 인의를 행치 않음을 일러 ‘자기(自棄)’라고 한다.”

맹자에 따르면 자포자기 하게 되는 이유는 ‘방심(放心)’, 그러니까 마음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본래 사람은 하늘의 도덕적 본성을 마음에 타고난 선한 존재다. 다만 하늘의 도덕적 본성을 ‘단서’의 형태로 타고난다. 그래서 사람은 성장하면서 또 살아가면서 도덕의 단서, 곧 실마리를 잡고 이를 풀어감으로써 도덕적 본성을 온전히 펼쳐내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선한 이가 된다. 도덕의 단서를 타고났다고 하여 자동으로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단서를 부여잡고 지속적으로 풀어가야, 곧 도덕을 실천해가야 비로소 선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맹자는 인간을 '사단(四端)'이라고 하는 도덕적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사명은 이 사단을 계속 쌓고 키우고 충실히 하여 개인과 국가를 도적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전체 철학 체계는 이것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하여 조직된 이론 체계에 다름 아니다. 이 도덕적 가능성이 쌓이고 또 쌓여 충실히 발전하면 우주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는데, 그 최고의 경지를 "호연지기(浩然之氣,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라 부른다. 여기 서는 희미한 가능성으로 있는 인간의 본질을 '확충' 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 확충 작업을 수행하는 관건의 방법이 바로 "학(學)", 즉 배움이라는 거다.

3


오늘 공유하는 시의 "낮달"처럼 살고 싶다.

낮달/이규리

무슨 단체 모임같이 수런대는 곳에서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몇 번 웃고 마는 사람처럼
예식장에서 주례가 벗어놓고 간
흰 면장갑이거나
그 포개진 면에 잠시 머무는
미지근한 체온 같다 할까
또는, 옷장 속
슬쩍 일별만 할 뿐 입지 않는 옷들이나
그 옷 사이 근근이 남아 있는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라 할까
어떻든
단체 사진 속 맨 뒷줄에서
얼굴 다 가려진 채
정수리와 어깨로만 파악되는
긴가민가한 이름이어도 좋겠다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오래된 흰죽 같은,

보일 듯 말 듯, 미지근하고, 근근하고, 희미하고, 긴가민가하고,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것들이 세상의 주연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주목을 끌고, 화끈해 보이고, 딱 부러지게 말하던 이들은 대개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보이지 않는다. 낮달 같은 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둠이 올 때 비로소 빛을 낸다. 보이지 않는 꿋꿋한 뒷면을 지니고 있다. 이 시를 소개한 반칠환 시인의 덧붙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