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삶에 '소금'을 치다. (19)

여자 역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장미란 선수의 이야기이다. 경쟁심이 투철했던 그녀는 매번 올림픽을 출전할 때마다 맞붙는 상대방이 실수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실수가 나에게 이득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실패해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에 어느 날 부끄러움을 느낀 이후부터 라이벌 선수를 향한 주문은 다음과 같이 달라졌다. ‘너는 네가 준비한 걸 다해라. 나도 나의 최선을 쏟아낼 테니.’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자 승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소중할 뿐 결과는 덤이었다. 상대방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라 소중한 동료였다. 서울 수유동 성당 남창현 신부의 글에서 읽었다.
우리들의 삶은 우리를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 분잡에 휩쓸리다 보면 존재에 대한 질문은 스러지고 살아남기 위한 맹목적 앙버팀만 남는다. 숨은 가빠지고 타인을 맞아 들일 여백은 점점 사라진다. 서슴없는 언행과 뻔뻔한 태도가 당당함으로 포장될 때 세상은 전장으로 변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언론, 사법, 종교의 영역에서 발화되는 말들이 세상을 어지러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태도가 있다면 ‘머뭇거림’이 아닐까? '머뭇거림'은 다음을 내포한다.
•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으려는 겸허함,
• 함부로 속단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
모든 틈은 깨진 상처인 동시에 빛이 스며드는 통로인 것처럼, 머뭇거림은 우유부단(優柔不斷) 함처럼 보이지만 나와 타자가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머뭇거림이 사람을 자기 초월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세상의 어떤 이론도 지혜도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근사치일 뿐이다. ‘알 수 없음'이야말로 생명의 실상이다. 여기서 경외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결국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허세 부리려는 욕구에서 해방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평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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