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예컨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생각의 경우 정답이 없다. 다만 이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있고, 우리는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진다. 이때 중요한 것이 다양한 인용과 정확한 정의에 바탕을 둔 언어 사용이다. 왜냐하면 풍요로운 사유와 정교한 논거를 갖춘 내 생각을 가져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내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2005)에서 “기하급수적 변화”라는 아이디어와 ‘특이점(singularity -기계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는 지점)'이 2045년에 올 것이라 주장을 했다. 특이점 이론에 따르면, 그 때 우리는 ‘지성 폭발’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기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똑똑한 버전으로 스스로를 빠르게 디자인할 것이다. 커즈와일에 따르면, 우리는 더 없이 행복한 휴머니즘(transhumanism)의 기간에 들어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어지고 지구를 돌아다니는 초지능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낙관론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즉 인문학에서 말하는 singularity는 들뢰즈의 개념이다. 한국어로는 '단독성'이라 말한다. 나의 고민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나의 고민이다.
단독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성질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형이상학에서는 일반성(gener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적인 작업이었지만 들뢰즈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반성 안에 포섭되는 특수한 것들끼리는 교환이 가능하다.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으로 보면, 모든 개체는 교환 가능하기 때문에 소모품처럼 소비되지만, 단독성의 개념으로 보면 모든 것이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중하게 된다. 인문운동가는 타인이나 사물, 혹은 사건에서 단독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것이 인문정신의 핵심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단독성이 잘 보호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여기까지는 AI가 인류에게 이롭다고 보는 주장이다. 그러나 AI를 무조건 따른다 거나, 인간만이 지닌 공감 능력과 창의력을 손 놓고 기르지 않는다면, AI에 종속되거나 대체된다는 것은 AI가 인류에게 이로우니 해로우니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서, 인간만이 지닌 능력을 키우자는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인문에서 제일 싫어하는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반대로,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 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Chaos라는 혼돈의 덩어리에 '틈'을 벌려, 잘서의 세계인 cosmos에서 단독자가 되자는 것이다. 이런 경지를 우리는 '예술', '아트(art)'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아티스트(artist)라고 부른다. 나는 아티스트가 단독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는 대체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틈나는 대로, 파아니스트와 뮤지션 그리고 아티스트를 나누어 본다. 언젠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2013년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 때였다고 한다. 보통 콩쿠르가 끝나고 나면 심사위원들은 우승자의 연주에 대한 심사평을 전해주는데, 몇 줄 정도 간단한 평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독일인 괴츠케 선생님의 글은 종이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앞으로 더 깊이 있는 나의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한 구체적인 조언이 마음에 남았다. “연주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 연주자는 모든 사람을 언제든 기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분명히 개성적인 표현과 스타일의 책임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힘이 있고 큰 소리는 연주하기가 수월하다. 작고 세밀한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손가락 근육 중에서도 약한 부분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시도 어제에 이어 안도현 시인의 것이다. 이 시를 소개한 [먼. 산. 바. 라. 기.]님에 의하면, 안도현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시 창작 수업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북어를 다섯 시간 동안 관찰한 뒤 시를 써오라는 과제를 낸다고 했다. 건성건성 한 학생과 오랫동안 북어를 바라보고 쓴 글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했다.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시를 쓰는 자세는 '소심하고 째째하다'고 말했다. 좀 더 나은 표현이 없나 고민하면서 수없이 고치기를 반복해서 세상에 내놓기 때문이다. 시 한 편이 태어나는 게 얼마나 난산인지를 알겠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모퉁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 보았을지 머리에서 되새김했을지를 생각하면 허투루 읽고 지나칠 수 없다.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라는 표현은 참 좋다. 도시에서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골목이 사라지고 모퉁이가 사라지고 있다. 피맛골을 없앤 건 모퉁이를 싫어하는 현대 정신이었다. 그 놈은 추억과 그리움, 인간적인 따스함까지 통째로 쓸고 가버리는 쓰나미다. 인공지능과 함께 하려면 우리 인간은 '모퉁이'를 남겨 놓아야 한다. 아침 사진을 보니, 오리들도 자식 자랑하나 보다. 자랑하고 싶으면, "오백 원 내고 해". 큰 사고 없이 오늘 수능 시험이 잘 끝났으면 하고 바란다.
모퉁이 /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 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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