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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유연성과 딱딱함의 차이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알베르 까뮈는 여행이란 "정신의 소독"이라 했다. 2박 3일간 일상을 이탈해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에 일어나 뒷정리를 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아침에 한 카톡의 문자로 삶의 지혜를 하나 얻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걷기나 운동을 하는 이유는 튼튼해 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해 지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의 근육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연해 지는 것이다. 그래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나의 층계참처럼 쉬어 가는 일이며, 유연함을 주기 때문이다.

솜과 유리는 차이가 있다. 부드러운 솜은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유리는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고, 자기 자신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준다. 왜 그런 가? 유연성과 딱딱함의 차이이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걷기를 하거나 운동을 많이 하려는 것은 내 몸의 유연성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번에 여행을 다녀와 보니, 정신이나 영혼의 유연성도 마찬가지이다. 카톡을 통해 전달된 김광석이란 분의 블로그 글 제목이 "깨지는 보다 접히는 삶" 이야기이다. 나는 깨지지 말고, 접히는 삶을 통해 데이비드 부룩스가 말하는 "두 번째 산"을 오르고 싶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부룩스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첫 번째 산에서 얻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산행이다.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이 아닌 성장을, 경직함이 아닌 유연함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최진석 교수에 의하면, 진짜로 산다는 것은 "나를 행해 쉼 없이 걷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으면서 숙고(熟考)하는 일이다. 무엇을 숙고하는가? 바람직한 일보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생각, 사유, 숙고, 인식 등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각을 안 하면 한 진영에 빠져 세상을 반쪽만 보게 된다. 그리고 감각적이고,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만족을 극복하여야 질적이고 지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감각을 극복한, 즉 숙고한 만족을 지녀야 진짜로 사는 것이다. 숙고하지 않으면, 감각적 만족에 그치고, 더 나아가 패거리를 만들고 그 진영 빠지고 만다. 그러면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 되고,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된 삶을 살게 된다.

오늘 아침 시도 그 카톡에서 얻은 것이다. 아침 사진은 제주도에서 공항으로 가던 길에 만난 일조이다. 내 인생 사진이라 생각한다. 밖은 가을비 치고는 세게 내린다. 빗소리가 다르다. 이 비 그치면, 가을도 끝나고 이젠 겨울이 시작되겠지. 또 접는다. 그래야 경직함을 버리고, 유연해 지는 것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유연해지는 "두 번째" 산행이고 싶다.

접기로 한다/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 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 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접는 것이고, 체념이 아니라 접는 것이라며, 티스토리의 [먼. 산. 바. 라. 기.]라는 분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서 마음을 접는다는 것은마음과 마음이 포개어진다는 말보다 더 아릿하다. 접는다는 말은 포갠다는 말보다 더 따뜻하다. 너를 향해서 매몰차게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하여 살며시 닫아 주는 애틋한 얼굴이지 않는가? 접는다는 것은 너를 버려 나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너를 희망하는 다른 이름이지 않는가? 접는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안고 가는 기다림을 남겨 놓는 사랑의 보루이지 않겠는가?  

서운한 것이 어디 사람만 이겠는가?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사람이든 세상이든 미워하고 원망하기 보다 한 번을 접고 그쪽 입장이 되어 볼필요가 있다. 한 번이 안되면 두 번을 접더라도 이해하고 감싸 안아 주는 것이다. "두 번째 산"에 오르려면, 두 눈 딱 감아주는 것이다. 돌아보면 서운하고 아쉬웠던 것 너무나 많다. 무슨 조화인지 잘 된 일보다는 못 된 일이 먼저 떠오르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럴 때는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넉넉한 웃음 한 번 날려주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젠 마음을 고무줄같이 유연성 있게 만들고 싶다. 세상 모든 것과 사건들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바뀐다. 이젠 받기보다 상대가 좋아할 것을 먼저 헤아리고, 먼저 줄 생각이다. 우리의 인간성은 주는 행동에서 가장 활짝 꽃핀다고 했던 헨리 나우웬의 말했다.

묵은 내 마음이 씻기듯이 가을비 치고 힘차게 내린다. 그만큼 씻을 것이 많은가 보다. 내 언친 마음처럼, 나무 가지에 매달린 몇 안되는 잎들이 다 떨어질 거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삶, "인생"도 떠날 땐 묵묵히 떠나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의 의연하게, 미련 없이 떠나는 하루의 해 처럼. 인생은 매일 매일의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나에게 절실한 한 가지에 몰입하여 쌓이게 하는 것이다. 또 시작이다. 자주 버리고 떠나는 연습을 는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 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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