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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승리를 위해서 나를 버려야 한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제주도를 떠나는 셋째 날이다. 아침에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dot)> 속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마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영어로는 None shall sleep)"는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Nseeun Dorma,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Tu pure, o Principessa(당신도, 공주여)
(중략)
All'albe vincero!(새벽이 오면 나는 승리하리!)
Vincero, vincero!(승리, 승리)"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유작(遺作)이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남자를 혐오하며 결혼을 거부하는 투란도트 공주를 둘러싼 이야기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투란도트는 공주는 3개의 수수께끼를 모두 맞추는 구혼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왕자도 맞추지 못해 참수 당했다.

왕국을 잃고 떠돌던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가 수수께끼를 모두 푸는데 성공한다. 투란도트는 황제에게 결혼을 철회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런 투란도트에게 칼라프가 새벽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칼라프 왕자가 승리를 예감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다.

오늘 아침 하고 싶은 말은 'Vincero!'이다. 승리를 위해서 나를 버려야 한다.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이다. 다시 시작하여, 승리하리라. 제이비드 부룩스가 말하는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을 읽고 자신의 "삶의 균형을 찾았다"고 한다. 저자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했다. "첫 번째 산에서 우리 모두는 특정한 인생 과업을 수행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 등이다. 첫 번째 산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이라고 여긴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라 성공을 맛보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호된 실패의 시련을 겼으며 나가떨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 예기치 않게 옆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 내가 그랬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상을 바꾸고 삶을 다르게 살고 있다.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중이다. 힘이 좀 빠졌는데, 제주도 여행을 계기로 다시 용기를 낼 생각이다.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 계곡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계곡은 고통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통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똑똑히 바라볼 때, 그렇게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이 아닌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고뇌의 계곡에서 사막의 정화를 거쳐 통찰의 산봉우리에 이르는 것이다." (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

두 번째 산에 오른 사람들은 기쁨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 가족, 대의, 공동체 또는 믿음에 단호히 헌신한다. 이들은 자신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며,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데서 깊은 만족감을 누린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짐을 기꺼이 진다. 오늘 아침 시는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시이다.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정현종

자기를 벗어날 때처럼
사람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사람은 인문정신이 깃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한번 자유를 맛보면 부자유 상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세상을 보는 높은 시선을 한번 경험해 보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시선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게 도기 때문이다. 인문정신을 키우는 모든 지적활동은 육화(肉化)의 과정에서 일어나야 한다. 육화 과정이란 지식이 나한테 담겼다가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내 것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그 중, 시를 외우는 게 중요하다. 시를 외우면 시인에게 지배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시인만큼 커져서 오히려 시인을 압도하는 경지로 발전하기도 한다.

사람은 나라는 의식을 갖는 한 고유한 존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다 비범하다. 근데 그런 고유하고 비범한 사람들이 어떤 연유에 의해 일반화되고 평범해 진다는 점이 바로 문제이다. 따라서 늘 '나는 누구인가'하는 그 질문을 통해 잃어버린 고유함이나 비범함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남이 해 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비범해 지기 때문이다.

보다 더 나은 사회는 감각적 행동가가 아니라. 지성적 행동가가 필요하다. 일본의 요시다 쇼인이 만든 쇼카손주쿠(송하촌숙)처럼, 현재의 마쓰시타 정경숙처럼 새로운 사회를 이끌 인재가 길러져야 한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엘리트를 중시하나, 공적 책임을 많이 강조해야 한다. 자기만 잘 되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가 각자가 이젠 '위대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에전엔 왕이 하던 일을 지금은 시민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이 아니라 내 눈으로 세계를 보고 내가 결정해서 일을 하는 게 민주주의의 위대한 시민이다. 엘리트 교육이 시민교육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민이 엘리트화하는 게 핵심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보면 모든 시민을 엘리트화할 수는 없지만, 모든 시민이 엘리트가 되자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시민은 좀 더 빨리 엘리트화할 수 있고, 누구는 좀 더 늦을 수 있지만, 엘리트가 되는 사람을 좀 더 많이 길러내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 즉 '위대한 개인'이 가급적 많아야 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리더가 사회를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 역사를 보면 한 사람의 힘이 중요하다. 기독교의 예수, 원불교의 소태산, 불교의 고타마 싯다르타, 중국 혁명의 모택동처럼, 혼자의 힘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아님 빌게이트나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대중의 힘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깃발을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높은 단계의 지성에 행동력까지 갖춘 행동가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하다. 분명하게 지적할 것은 사회적 책임성을 갖춘 지성적 행동가이다. "공적 관념이 없는 독립적 주체는 이기적 주체에 불과하다. 공적 영역으로 확대될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주체이다." 이런 인재가 길러져야 한다.

제주도는 인문정신이 깃들 수 없는 동네이다. 여행객이 너무 많고, 해안에 식당들도 너무 많다. 하루에 몇 명 이상은 제주도에 들어 못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다 예쁜 섬이 다 망가질 것 같다. 특히 어제 보낸 우도는 심각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다. 나도 거기에 갔으나. 늦은 오후에 제주로 돌아 오는 배에 승차할 땐 정말 심각했다. 인분주의는 없었다. 차가 먼저 타고, 사람들은 위험하게 보호 구역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했다. 사람이 먼저인가? 물건이 먼저인가?

지난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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