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13일)
가을은 절정에서 돌아가는 계절이다. 곱게 물든 낙엽들은 뿌리로 돌아가고, 무르익은 열매들은 몸으로 돌아간다. 내 인생의 가을도 절정이다. 하루 하루 충만하게 살고 있다. 맨발 걷기도 매일 착실하게 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다큐 영화 <인생을 짊어지고>에는 지게로 짐을 지고 산장까지 운반하는 '봇카'라는 직업이 나온다. 일본의 오제 국립공원에서 12㎞ 떨어진 산장까지 필요한 물품을 나르는 일을 하는 젊은이들의 영화이다. 자신의 키보다 높고,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83㎏의 무게를 나른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짐의 무게가 아니라 균형이라는 거였다. 짐을 쌀 때 철저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오롯이 자신에게 오고, 균형을 잘 잡지 못하면 내내 힘들어지기 때문이라 했다. 늘 중심을 생각하며 걷는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우리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무게가 아니라, 균형이다.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면 중심을 잃고, 사는 게 힘들어진다. 다음의 세 가지 '조(調)'가 몸의 균형을 만들어 준다. 조신(操身), 조식(操息), 조심(操心)이 아니라,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이다. 몸을 고르는 것이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고르는 것이다. 특히 조심(調心)은 마음을 모으는 것으로, 마음이 모이는 곳에 기(氣)가 모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기가 흐트러진다.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성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정성스러움과 욕심은 다르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항공사에도 탑재물을 관리하는 '로드마스터'라는 직업이 있다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 역시 균형과 배치이다. 화물마다 무게와 부피가 달라서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중심을 찾는 것이 이 일의 핵심이다. 비행기가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와 흔들림 속에서 잘 견딜 수 있는 핵심은 균형과 무게 중심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이라는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의 균형을 찾았다"고 했다. 그 책의 표지에는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라고 쓰여 있다. 저자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했다. 첫 번째 산에서 우리 모두는 특정한 인생 과업을 수행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 등이다. (…) 그러다가 문득 무슨 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라 성공을 맛보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호된 실패의 시련을 겼으며 나가떨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 예기치 않게 옆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 내가 그랬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일상을 바꾸고 삶을 다르게 살고 있다.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중이다.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 계곡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계곡은 고통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통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똑똑히 바라볼 때, 그렇게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이 아닌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고뇌의 계곡에서 사막의 정화를 거쳐 통찰의 산봉우리에 이르는 것이다." (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 두 번째 산에 오른 사람들은 기쁨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 가족, 대의, 공동체 또는 믿음에 단호히 헌신한다. 이들은 자신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며,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데서 깊은 만족감을 누린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짐을 기꺼이 진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 보면, 정규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면 일부 교사들, 공무원들 그리고 연구원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초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자기 자신과 사회 사이의 건강,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이 늘 평행하게 존재한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개인이라는 차원으로 너무 많이 치우쳐 왔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균형을 잡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관계와 공동체와 헌신(이 세가 덕목은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가장 열렬하게 바라지만 초개인주의적인 생활 방식 때문에 늘 훼손하고 있는 덕목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부룩스(이경식 옮김)의 <<두 번째 산>>) 이게 이 책을 쓴 목적이라 한다.
노후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나? 언제 시작해도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남은 삶에서는 오늘이 가장 빠른 순간이다. 부담되는 노인이 아니라 도움 주는 어른 노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일이다. 행복한 노후를 방해하는 3대 요소가 빈곤, 질병, 고독감이다. 그 중 나는 세 번째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 위해, 내가 정한 노후 대책은 열심히 활동하고, 많이 접속하여 관계를 만들고, 그 활동 마당을 유지하며, 차이를 생성하는 일상을 명랑하고 즐겁게 영위하는 거다. 나 자신을 보다 더 활짝 열고 타자에게 接續한다하는 거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지속하고, 타자와 접속하라.' 이게 최근에 내 삶의 지향이다. 아마도 이게 영성의 지혜를 알고 사는 길 같다. 이게 삶의 성장의 길같다. 인생의 사는 맛은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은 관계의 폭을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하고, 원하는 활동을 계속 더 확장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가 '활동을 한다'이다. 태양이 뜨면, 낮에 활동을 하는 거다. 몸을 움직이는 거다. 그 활동하는 곳이 직장일 수도 있고 자기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내 어도 된다. 두 번째는 '누군가 또 무언가와 관계를 맺는 거다.' 다시 말하면 접속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이다. 삶은 활동과 접속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이 생성되게 하는 거'다. 특히 차이가 생성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진정한 차이는 어떤 것을 배우면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느낄 때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낮 동안의 빛이라는 위대한 힘과 내 편이 되어 싸우는 거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는다. 내가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조르바가 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현재에 집중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다만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찾는 거'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똑같은 곡을 수백 번 연습하며 반복 연주하면 지루할 뿐더러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연주자들에게 "오늘은 다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연주해주세요"라 부탁하면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좋은 연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서울대 한소원 교수에게 배운 이야기이다. 오늘도 내 일상을, 특히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달라지게 하고, 그들의 달라는 것을 찾아 볼 생각이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서 아름다움과 신기함과 재미를 경험할 생각이다. 그러니 가을이라 슬퍼할 이유 없다. "가을 날의 묵상"이다.
가을날의 묵상(默想)/양광모
뉘우침으로
얼굴 붉어진 단풍잎처럼
뉘우침으로
목까지 빨개진 저녁 노을처럼
가을은 조금
부끄럽게 살 일이다
지나간 봄날은
꽃보다 아름다웠고
지나간 여름날은
태양보다 뜨거웠으리
그럼에도 뉘우칠
허물 하나 없이 살아온 삶이라면
또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가
믿으며, 가을은
허물 한 잎 한 잎 모두 벗어 버리고
기쁜듯 부끄럽게 살 일이다
이윽고 다가올 순백의 계절,
알몸으로도 거리낌없이
부끄러운듯 기쁘게 맞을 일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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