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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 지난 밤에 비가 내리더니, 어제는 추워졌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그냥 상대적으로 약간 기온이 내려간 정도이다. 난 겨울을 더 좋아한다. 겨울은 옷을 입거나, 밖에 안 나가면 되지만, 더운 여름은 대책이 없다. 감옥에서 오래 지냈던 고 신영복 교수님도 겨울이 좋다고 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여름의]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참, 세월, 빨리 지나간다. 어제부터는 <지금 이순간>이라는 뮤지컬 노래를 배운다. 지금 이순간. 나는 노자가 말한 "거피취차(去彼取此)"라는 말을 좋아한다. '거피취차'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이념들과 결별하고, 바로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 그것은 어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탐욕이다. 그 탐욕은 늘 저 먼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못보게 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는 정신이 '거피취차'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욕망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돈, 지위, 학벌, 권력, 이런 것들말고도 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다양하게 욕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노래를 배우는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배철현 선생은 늘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은 항상 ‘저기'를 바라보고, '여기'를 직시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 눈을 보고 대화하지 않고 상대방이 아닌 허상을 떠올리고 말한다. 자신의 편견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데 안달하며,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지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개진한다. 흔히 사람들의 대화와 토론을 보면, 자화자찬의 전시장이며, 아니면 상대방을 창피주기 위한 격투경기장이다. 그들의 머리는 항상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허상에 사로잡힌 장소인 ‘거기’에 홀려있다. ‘거기’를 위해 ‘여기’를 어리석게 희생시킨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동물이, 사물이 ‘신적’이란 사실을 망각한다. 신적인 존재는 항상 ‘여기’에 온전히 몰입한다. 내가 보는 모든 식물과 동물은 항상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어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유일하고 독특하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저것’을 흉내 내고 부러워한다.

우리를 온전한 '우리 자신'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라는 장소다. ‘지금’과 ‘여기’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둘은 만물을 현존하게 만드는 존재의 집이다. 과거를 삭제하고 미래를 앞당겨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이라면,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를 생경한 나로 전환시켜주고 더 나은 나로 수련시키는 혁명의 장소다. 그러니 뮤지컬 노래 <지금 이순간>을 부르며, 지금, 여기에 몰입할 일이다.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보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의 겉모습인 '형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대상이 거대한 혼돈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분자로 분해된다. 혼돈(混沌), 그건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지 않은 상태, 카오스이다. 대상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 무질서이다. 그러나 그 혼돈은 <창세가 1장 2절>에 등장하는,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창조 이전의 상태이다. 그래 혼돈은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된다. 혼돈을 경험하면서, 예술가는 자신만의 예술적 질서를 찾는다. 형상 뒤에 있는 대상의 본질을 보게 된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여실지如實智’를 강조한 것일 게다. '여실지'란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가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려워 그렇게 말한 것이다.  빨리 뮤지컬 노래 <지금 이순간>을 잘 부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이집트 미술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인문정신을 강의한다. 어제는 '피라미드가 들려주는 불멸의 꿈'을 공부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에 강의할 예정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이집트 사막의 낙타를 위로하며, 류시화 시인의  시 "낙타의 생"을 공유한다.

낙타의 생/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들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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