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5일)
오늘의 문장이다. "네가 말을 하려 할 때는 그 말이 침묵보다 나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 이젠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단테는 르네상스를 자신이 아닌 곳, 학교나 책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에서 발견하였다. 자신의 심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온통 내가 아닌 외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귀는 외부에 열려져 있어, 그것을 듣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인류가 동물의 상태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신적인 상태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금부터 4만 년 전 지하 동굴로 들어가 홀로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는 고독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고독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구석기 시대의 벽화들이다.
단테는 깨어난 그 무엇을 ‘스피리토 아모로소(spirito amoroso, 사랑하는 영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와 괴테가 발견했다는 ‘다이몬(daimon, 자신을 자신 답게 만드는 천재성)’이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 전에 들었다는 ‘내면의 소리(inner voice)'이며,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가 들었다는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이며, 스티브 잡스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글자 사이의 공간(space between letter combinations)'이다.
나의 하루를 빛나게 만드는 첫 단추는 ‘마음의 과녁’을 정하는 수고다. 인간의 바깥모습은 그(녀)의 안모습의 정확한 표현이며 균형이다. ‘안’의 정돈과 절제가 없는 ‘바깥’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며 사치다. 안의 수련은 바깥의 개성으로 조화롭게 드러난다.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아름답게, 독창적으로 만드는 개성個性은 내적일 수밖에 없다. 개성은 눈에 드러나지 않으며, 잠복潛伏한다. 말과 행동은 개성을 조금씩 보여주는 통로다. 안이 없는 바깥은 없다. 개성이 없이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은 구차스럽다. 바깥은 안이 힘을 통해 확장된 것이다. 바깥은 안이라는 침묵 훈련을 거치지 않으며 변명에 불과하다. 그 안은 그 사람의 스타일이다. 나는 내 ‘안’을 관찰하고 응시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이란 단거리를 뛰기 위해 ‘안’을 준비시켰는가? 바깥은 안의 가감 없는 표현이다.
어느 수도원의 팻말에 “침묵에 보탬이 되지 않는 말이면 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한다.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 물건이면 어떤 것이든 소유하지 말라'로 바꾸어 볼 수도 있다. 침묵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서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과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말 보다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리는 침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런 기다림의 기간이 있어야 있을 것이 있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자연은 침묵으로 가르쳐 주었다.
말은 가능한 한 적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충분할 때는 두 마디를 피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사람 답게 살다 간 사람들은 모두가 한 결 같이 침묵과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을 우리들 자신마저 소음이 되어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정말 말을 적게 하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불평, 불만, 비난, '3ㅂ'를 조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 내부는 비어 있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는 것이다.
자코메티가 나에게 묻는다/박수소리
난 이 말이 좋다. "그는, 삶의 군더더기를 매일매일 깎아내고 있다."
20세기 초 근대를 종식시키고 현대를 시작할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킨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삐쩍 마른 모습으로 어디론 가 바삐 걸어가거나,
대지에 굳건히 몸을 대고 우주의 끝을 응시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찾고 싶어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심연을 응시하도록 침묵을 훈련시키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그의 강렬한 눈빛은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만이 갖는 눈빛을 가진다.
침묵의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그런 눈빛을 갖는다.
침묵을 연마하여야 한다.
침묵이란 자신이 굳이 입으로 발설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지장이 없는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침묵의 시간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치의 시간이다.
침묵의 시간은 김치가 익기 위해 장독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침묵의 시간은 와인이 어두운 지하실의 오크통에서 침잠하는 시간이다.
"지혜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여기서 "잠잠하느니라"라는 히브리어가 '조각하다'이다.
'잠잠하다'는 말의 사전 뜻은 '말없이 가만히 있다'는 말이니, 침묵한다는 말이다.
'조각하다'에서 '조각'이라는 말은 '재료를 새기거나 깍아서 입체적으로 형상을 만들거나 그런 미술 분야를 뜻한다.
한문으로는 이렇게 쓴다. 彫刻. '각' 자가 '깍을 각'자이다.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려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침묵하는 사람은 마치 조각가처럼 자신의 삶에서 쓸데없고 부질없는 것들을 매일매일 깍아내는 사람이다.
미켈란젤로가 다윗상을 조각하기위해 다듬지 않은 커다란 대리석을 보다가 한 말은 잘 알려져 있다.
"내 손에는 정과 망치가 있다. 나는 이 커다란 돌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낼 것이다."
자코메티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자신에게 감동적인 '신의 형상'을 찾아 매일매일 깍아냈다고 한다.
자신과 세계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모색하면서.
자코메티의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내 삶의 군더더기에 대해 묵상해 보았는가?"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걷어낼 용기가 있었는가?"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위학일익 僞學日益, 위도일손 爲道日損".**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삶의 길은 버리는 것이다.
군더더기를 깎고, 덜어내는 것이다.
*<구약성서> 잠언 11:12
** <도덕경> 48장
*** 배철현교수의 <국민일보> 칼럼을 읽고 쓴 글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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