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31일)
억울한 젊은 영혼들 앞에 마뜩한 진혼도 떠오르지 않는다.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할 진혼(鎭魂)마저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지금 우리는 젊은이들을 잃었다. 이미 태어나 예쁘게 꽃핀 생명도 지키지 못한 사회이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마땅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런 마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사회의 운영을 구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미안함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온전한 책임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장관의 언급이나 주최 측이 없으므로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사고 책임과 관련해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인파가 몰릴 것 예상하면서도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지 않은 서울시와 용산구의 책임일까? 현장 대응을 잘 하지 못한 경찰의 책임일까? 그 모든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일까? 사고 발생의 발단이 된 축제의 주최자가 없었고, 사고가 발생한 곳도 내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거에 하던 대로 했는데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경찰 측 태도, ‘경찰이 참사 방지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취지의 이상민 장관 발언은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를 도외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 복판에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거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면 대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어제부터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면, 국가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한다. 특히 보수 정부의 문제이다. 이번이 세 번째이다. 다음의 서울대 장덕진 교수의 지적을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내야 한다. 방법이 많지 않다. 보수 정부에게 기대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경험이 있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 번이 세 번째이다.
1.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이명박 정부는 위험의 사회화와 그 반작용으로서의 위험의 정치화를 최초로 경험했다. 이익을 보는 집단은 분명한데 그에 따르는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산시켜버릴 때, 국가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분노하게 되고, 그것은 위험의 폭발적 정치화로 이어진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그랬듯이 그 당시에도 집회를 조직 화하는 세력, 즉 필요조건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란 아무리 열심히 조직하더라도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필요조건에 시민들의 폭발적 참여라는 충분조건을 더해준 것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냈던 이명박 정부였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위험하면 못 먹고 안 먹는 것인데, 수입업자들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올 것”이라는 대통령 본인의 발언이었다. 시장이 어련히 알아서 걸러줄 텐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오죽하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한국 사태를 두고 “신자유주의 국가가 다가오는 위험사회에 맞서 국민을 보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는 훈수까지 둬야 했다.
2.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훨씬 더 큰 비극이었지만, 과정은 아주 단순했다. 낡은 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졌고, 그나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을 감독해야 할 관료들이 사업자와 결탁해 이익공동체가 되었고, 머리를 올리느라 7시간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은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라는 한가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 그 내막이다. 복잡한 현상과 맞물린 광우병 사태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전개이다. 그러나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3.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 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보수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지키면서 진행된다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치적 위험이 곳곳에 도사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짜 리스크는 낮은 지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는 것에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축제의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맞이한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여러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을 수없이 사전에 다듬어야 한다.
서울대 장덕진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8월9일자 칼럼에서 “지지율에 갇힌 채 좀 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삶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중략) 닥쳐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보았듯이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지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어서 부적절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피해가는 길은 여러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을 수없이 사전에 다듬는 거다. 지금은 우선 슬픔을 연대할 시간이다. 오늘 아침 시구처럼,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그저 덜 아픈 사람이/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사회적 연대가 그나마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사회연대에 관한 논의는 그 핵심으로 사람들 끼리는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서로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의 의존과 책임을 이어주는 중요한 무언 가가 있다. 바로 고마움, 미안함, 혹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안쓰러움이다. 이러한 무거운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타인에 대한 책임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각자의 지옥에 갇히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희생자에게는 조금 더 따뜻하게, 책임을 물을 곳에는 조금 더 엄정하게 대하길 기대한다. 이런 슬픔의 연대를 거쳐야 우리는 회복의 연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나를 위로하는 시를 공유한다. 그런지 아침 맨발 걷기에 나가서 만난 하늘도 울고 있는 듯했다. 그게 오늘 아침 사진이다.
누가 그랬다/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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