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오늘 글이에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위대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2)
‘위대한 개인’은 명사로서 의 직업이 아니라. 좋은 형용사가 붙은 직업인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나는 사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배철현 교수는 버락 오바마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배경에 상관없이 자기에 집중한 사람들이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고유한 것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한다.
유엔이 2017년 3월에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155개국 중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56위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본질, 심연 등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그렇게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겨울에 있었던 촛불집회를 보면, 우리는 이젠 더이상 ‘백성들’이 아니라, 스스로 평등하고 동등한 시민이라고 자각하였다. 무엇을 자각했는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
그러나 지난 촛불집회를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 가치 사고 등을 찾는 훈련은 안 돼 있고 집단적 분출에만 매몰돼 가는 것 아니냐며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시민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만들어 낸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이다. 그들은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어렵게 얻어냈다. 그 핵심 가치가 자유, 평등, 박애이다. 그 가치들을 바탕으로 도시의 질서 안에서 최선의 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시민들의 몫이다.
시민의 문법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위대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사랑, 정의, 배려, 경청, 지혜와 용기 등이 필요하다. 윤리와 도덕으로 각자의 양심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보이지 낳는다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하나로 묶을 정도의 중요성을 지닌다.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내 옆에 있는 낯선 자가 곧 ‘신’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만 사랑하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훈련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이가 위대한 개인이다. 특히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잘 수용하는 것 이게 경청이고 가장 중요한 도시문화의 핵심이다. 위대한 시민은 배려와 경청에서 나온다.
지성은 보통 글로컬(글로벌+로컬)과 오리지널이 결합해야 하는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일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전체적인 사회분위기가 압축적인 경제성장에 혈안이 됐고, 각자 먹고 살기 급급했기에 지성이 제대로 자라날 토대가 부족했다.
지성을 가지려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유일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것만 베끼는 현실이다. 남이 먹는 것, 모창하는 것,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식 농담을 통해서는 얻는 게 없다. 내 것이 없으니까 남만 바라보게 된다.
좋은 문화는 거칠고 유치해 보여도 자신만의 생각과 힘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 아름답다. 자기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 자기 세계를 표현하고, 각자의 원대한 꿈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마련되는 게 좋은 문화이다.
위대한 개인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나나 너가 아닌 우리의 가치를 발견하는, 깨닫는 사람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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