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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모험을 의미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12일)

자아 확장을 위한 사랑을 시작하려면 우리는 우선 삶과 성장을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그 선택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 상실에 대한 모험이 없다면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예컨대 죽음이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면, 두렵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되어 준다. 살고 사랑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충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피하면, 어쩔 수 없이 삶도 피해버리게 된다. 사랑이라는 모험을 위해서는 상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모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을 사랑할수록 모험도 더 많아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한 걸음 살짝 내딛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도 단숨에 도약하는 것이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실제로 해보지 못할 수도 있는 도약을 말하는 거다. 많은 '어른'들은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여도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행사하는 권력에서 전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성장의 과정은 대체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러 번의 작은 도약들로 이루어지며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도약을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실제로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외양과는 달리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아이로 남아 물려받은 가치에 따라 살고, 주로 부모의 승낙과 반대에 따라 움직이고(부모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경우에도),  감히 운명을 자기 손안에 쥐어 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지 못한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주역>>에서는 이 로고스(이치)를 천지의 뜻,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아들이는 상호작용을 통해 만물에 그 이치를 심어 놓은 것이라 했다. 만물의 하나인 인간은 이 이치를 알고 순응할 때 하늘의 이상을 땅이라는 구체적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바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건(乾, 하늘)'은 서양 철학에서 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놓을 수 있다. 우주, 도, 시간, 신의 섭리 등 다양한 개념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중지 건> 괘의 괘사가 "건(乾),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시간은 생장쇠멸(生長衰滅) 혹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과정을 영원히 순환하도록 관장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은 하늘의 섭리 그 자체이다.  그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태어나 성장하고, 서서히 쇠퇴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 다 순환한다. 노자 <<도덕경>> 제25장에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하면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 온다'는 말이다. 노자는 '도'를 억지로 개념화하여 '크다'고 하는데, 이 '크다'는 말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전체 우주의 존재 원칙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전체는 가만히 있는 정지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부단한 운동 속에 있다고 보았다. 또 하나 빠뜨리는 곳이 없는 부단한 운동의 방향은 먼 곳을 향하여 있는데, 이는 어떤 극한을 향하여 간다는 뜻으로 보았다. 사물의 발전은 극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그 극점에 이르러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거다 이것이 노자가 보는 전체 자연의 운행 모습이었다.

'대(大)→서(逝)→원(遠)→반(反)'은 전체 운행의, 즉 도의 운행을 나타내는 전략 아래 동원된 유기적 의미 연관 고리들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도'가 마치 하나의 물건과 같이, 비록 원형이나 리듬성, 귀환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도'는 혼돈의 무엇이며, 독립 주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에 잡힐 수 없는 무형, 무명의 전체이다. 따라서 그 전체의 방향성은 원형이라 할지라도 단선으로 표시될 수는 없다. 순환을 반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닌 창조의 리듬이다. 순환이 없는 창조는 없다.

나는 순환에 주목한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다.

좀 어렵지만 '비우자'는 말이다.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힘으로 욕망의 재배치를 하자는 거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노자의 말 중에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반대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순환이다.

우리의 에너지도 기(氣)와 혈(血)의 순환으로 공급되며, 우리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그 순환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항상 일정한 리듬을 타고 순환하는 것이지만,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계절의 순환도 마찬가지이다. 노자의 언어는 대(大, 큼)에서 '반(反)으로 끝난다. 시작과 끝이 없다.

어쨌든, 삶은 지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도 자연처럼 싹트고, 꽃피고, 열매 맺고, 낙엽 지고, 때론 혹독한 시절을 보낸다. 자연의 순리와 같다. 늘 맑은 곳은 사막이다. 힘든 시절을 잘 견디면, 누구든 그 시간을 보내고 추억이란 이름표를 붙여 슬그머니 꺼내 보게 한다. 그리고 그런 시기가 또 온다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낙엽의 에필로그/김인육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한때의 눈부신 푸름을 접고
내 운명 여기 어디쯤에서
가지런히 손 모으고
이젠 안식해야 한다는 것

온종일 서늘한 빛으로 퍼부어 대는
늦가을 햇살이
마지막까지 나를 아파하는
그대의 아린 사랑임을 안다

머잖아 그대가 다스렸던 영토에도
눈이 내리고
그대에게로 가는 길도
내게로 오는 길도
하얗게 묻히어
가끔 그대 생각에 꿈속에서도 까무러치다가
나는 선연하게 삭아갈 것이다

서슬 퍼런 바람이 불어
그리움에 여위어간 가지들이
바이올린처럼 울어대는 동안
어느새
짓밟힌 눈들이 녹고

흙으로 스며 내린 여린 뼈마디마다
문득 내 영혼의 젖꼭지가 가려운 봄날
치운 겨울 내내 마려웠던 그리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고
그대 훤히 바라보이는 꼭대기까지
싱그러운 수액으로 기어올라
내 사랑, 깃발처럼 푸르게 팔랑일 것이다 그대.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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