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24일)
1
이젠 두려움의 종교가 아니라, 사랑의 종교여야 한다. 이젠 두려움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의 교회여야 한다. 종교와 교회가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심판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여야 한다.
그런데 삶이 각박하고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종교는 이들의 마음을 받아주지만 종교를 가진 모든 이들이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좋은 상품과 불량품이 있듯 신앙을 빙자해 사람을 이용하는 ‘불량 종교 인들’이 있다. 이들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다른 이의 고통에 둔감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힘들게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심한 경우는, 같은 사람끼리 기독교를 빙자해 자신을 '하느님'이나 '재림 예수', '독생자'나 '독생녀'라고 사칭하며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인들이 있다. 심지어 자신이 ‘구원 받을 사람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며 사람들의 충성심을 요구하고, 헌금 액수가 구원과 직결되는 듯 왜곡하기도 한다. 일부 종교가 왜곡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상처 많고 의존적인 이들이 이 같은 왜곡된 가르침에 길들여 지면 잘못을 알면서도 그 굴레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독립심이 없고 의존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거다. 그리고 신앙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 위에 서야 한다. 참된 믿음은 거짓을 분별하고 오직 하느님께 만 충성하는 삶, 동아시아 철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모습대로 사는 삶이다. 노자 식으로 말하면,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2
늙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늙음이 낡음이 아닐 수 있다. 늙음이 오히려 '새로 움'일 수도 있다. 말장난 같지만, 다 ''마음 먹기이다. 아침에 <<어른의 품위(dignity of adultes)>>이라는 책의 광고를 만났다. 책 표지에는 "어른은 나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로 만들어진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품위'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흔히 우리는 품격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책은 '품위'라 말했다. '품위'라는 말의 영어 'dignity'를 번역하면, 우리는 흔히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자존감(dignity)'의 사전적 정의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자존감은 다른 이와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이렇다. 늘 기억하는 내용이다.
▪ 실력을 쌓는 것,
▪ 작은 성공을 누적시키는 것,
▪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
▪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 외부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
그러나 이런 것보다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이 '별'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거다. 그 '별'은 스스로 움직이며 빛으로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가 더 높은 수준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존감은 바깥에 있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다. 그러나 자존감과 자존심은 구별해야 한다. '자존심(pride)'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duhnity)'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실천이다.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우고 흘러가듯이, 걷고 또 걷는 길 뿐이다. 남들보다 내가 더 가졌다고 다른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려는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지역, 타고 다니는 차, 들고 다니는 가방 등의 이름에서 자존감을 얻으려 한다. 사람들은 상품이 아니다. 따라다니는 라벨로 다른 이들을, 또 나를 판단할 수 없다. 인정받기 위해, 부러운 눈길을 얻기 위해, 또 가볍게 보거나 얕보는 듯한 눈길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비하는 지 모른다. 나의 인간적 가치는 내가 얼마나 가졌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나의 재산과 재능을 지혜롭게 쓰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 나에게 더 소중한 가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 아직도 나를 거만하게 만드는 그것들을 나에게서 없애기 위해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소중하다. 각자 겸허한 심정으로 상대의 삶을 대할 일이다. 그것이 종교이고 지극한 수행이다. 이런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자존감이고 그걸 우리는 '품격' 또는 '품위'라고 한다.
이젠 우리도 '자존감'을 갖춘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할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존엄도 영어로 디그니티(dignity)라 하는 데, 이 말의 뜻은 한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 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 교육은 '능력 우선주의'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능력주의(meritocracy)'라 했다. 이를 '존엄주의(dignocracy)'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수월성 교육에서 존엄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독일처럼 경쟁 교육을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라고 자주 말했다. 경쟁 없는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외부의 유혹에 경도된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그 마음인 '본심'이다. '욕심'은 '과유불급'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처사다. 그것은 배가 부르면서도 자신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게걸스럽게 먹으려는 식탐과 같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자신이 배부른지 알면서도 과도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러나 '본심'은 성배와 같아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지 가만히 추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매일매일 수련할 때, 슬그머니 등장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다.
별/정진규(1939~)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교육이란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며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위대하고 창의적인 모든 결과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밖에 있는 별을 찾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 혹은 자기에게만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별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그 "별은 스스로 움직이며 빛으로 이야기 한다." (박석신)
최근에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가장 흔히 듣는 노래가 <나는 반딧불(작사, 작곡 정중식)>이다. 이 노래의 가사가 인문적이다. 노래 가사의 화자는 '내는 누구인가'를 깨닫고, 그런 자신을 믿는다. 가사 내용을 공유한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3
'품위'와 '품격'은 조금 다르다.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 기품'이다. 그리고 '품격'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으로 정의한다. 그러니까 '품격'은 내적 이미지의 표현이고, '품위;는 외적 이미지에 해당된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품격'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과 타고난 성품에 바탕을 둔 미덕과 인격적 완성도를 의미하며, '품위'는 문화적, 생활적인 차원에서 세련된 태도, 예의 바른 행동, 교양 있는 언어와 같은 전반적인 완성도를 뜻한다. '품격'은 내면의 가치라면, '품위'는 그 가치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품격'은 '사람됨의 바탕'인 인격적 속성이고, '품위'는 '사람이 갖춰야 할 점잖음'과 같은 성숙한 태도 및 문화적 척도이다. '품위'를 유지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외적인 모습을 가꾸는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품격'은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품격을 높이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진정한 품격은 치열하게 사고하고 성찰하며, 생각의 '그릇'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품격은 겉으로 보여지는 상이 아닌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다. 굳이 겉모습과 격식을 따지지 않고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 품격 있는 사람이다. 사고방식이나 철학이 고상하고 인품이 바르면 그게 품격 있는 거다. 요즈음 사람들은 품격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철학과 예술을 멀리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권위와 격식만 따지는 품위가 아니라, 진정 품격 있는 사람이 그립다.
개인의 품격에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의 종류가 있다.
(1) 보이는 품격: 자신의 신체적 형태와 자세, 행동이나 걸음 걸이, 얼굴 표정 등, 전체적인 용모로 나타나는 품격을 말한다. 보이는 품격을 '볼품'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므로 먼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볼품 즉, 외적 이미지를 신분과 역할에 맞도록 가꾸는 거다. 여기서 "어른의 품위"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2) 들리는 품격: 대인 관계의 필수 조건이 원활한 소통이라면, 자신의 목소리나 말투, 음성과 발음, 대화 방법과 수준에 따라서 품격이 결정된다. 이렇게 들리는 품격을 '인품'이라 말 할 수 있다. 인품은 관계적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대화를 더 풍성하게 하면서, 인품을 견인할 수 잇는 도구가 고품격 유머이다. 상황과 품격에 맞는 적절한 유머는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상대의 공격에 불쾌하게 맞서지 않고 우회적인 유머로 넘기는 거다.
(3) 느끼는 품격: 상대방과 마주보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히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걸 성품이라고도 한다. 생각이나 마음가짐, 반응이나 태도 등이 성품으로 비쳐지게 된다. 이게 내적 이미지이다. 볼품과 인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마지막으로 각인되는 성품이 안 좋게 비쳐지면 상대방은 실망하게 되고 관계는 거기서 끝나기도 한다.
4
나는 나를 살필 줄 아는 너그러운 어른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 선을 지키고 나를 아끼며 행복에 집중하는 거다. 세 가지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선택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 선택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거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거다. 그것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거다. 품위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더 넉넉한 마음을 갖는 일이다. 몇 가지 실천 가능한 것들을 나열해 본다. 이런 날들이 모여 어제보다 더 단단한 나를 만들면 품위는 쌓여 갈 것이다.
▪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 지가 중요하다.
▪ 순간의 행복을 미루지 않고 만끽하며 사는 거다.
▪ 언제 어디 서나 새롭게 배울 점을 찾아 내는 거다.
▪ 조급해 하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내는 거다.
▪ 안달복달하지 않고 하루에 할 일 한 가지만 해도 알차게 보냈다고 만족, 아니 자족하는 거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어른이란 결국 자신의 완벽함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숨기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태도가 진짜 어른스러움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아름다움을 꼬인 것 없이 받아들이고 만끽할 기회를 계속 만드는 거다.
언젠가 노트에 적어 es 어른 조건이라는 글이다.
어른의 조건
음식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발효가 되어 더욱 맛있어지고,
건강에도 유익한 유산균이 생기는
발효식품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헛되이 세월만 흘려보내
나이만 먹어가는 노인이 있는 반면에,
세월과 함께 내면에 깊이가 생긴
어른이 있습니다.
진정한 어른은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의 인생을 보면서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인과 어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노인은 허송세월을 흘려 보낸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신밖에 챙길 줄 모르지만,
어른은 넓은 아량으로 주변을 챙기고,
항상 배려합니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지만,
어른은 젊은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합니다.
노인은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지만,
어른은 자신을 비우고 나누어줍니다.
노인은 '나'와 '타인'을 늘 비교하지만,
어른은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에 슬퍼하지만,
어른은 가득 찬 내면을 볼 줄 알며,
이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언뜻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설령 지금은 젊다고 할지라도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인생은 멀리 와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어른의 조건'을 갖추었는지
삶의 자리를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5
오늘 말씀은 <루카 복음> 9,1-6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이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나는 걷습니다 당신의 길을/상지종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셨다.”(루카 9,1-2)
당신께서
당신을 주시며
보내시는 당신과
보내어지는 나를
오롯이 보듬어
온 누리
모든 이에게
기쁨 희망 살림이 되라고
나를 보내시어
나 걷고 또 걷다가
스스로에게 물으니
걷고 있는가
멈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길을 걷고 있는가
다른 길이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가
다른 누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걷는 내가 걷고 있는가
당신 없이 나 홀로가 아니라
나와 함께 걷는 당신이 걷고 있는가
나 없이 당신 홀로가 아니라
기쁨이 되어 기쁨 나누러 걷고 있는가
슬픔이 되어 슬프게 하지 않고
희망이 되어 희망 건네러 걷고 있는가
절망이 되어 절망하게 하지 않고
살림이 되어 살리러 걷고 있는가
죽임이 되어 죽이지 않고
오롯이 보내시는 당신과 함께
바로 보내어지는 내가
참으로 걷고 있는가
묻고 또 묻다가
나 바로 선 그 자리에서
당신께서
당신을 주시
보내시는 당신과
보내어지는 나를
오롯이 보듬어
온 누리
모든 이에게
기쁨 희망 살림이 되라고
나를 보내시니
나는 다시 힘차게
당신의 길을 걷습니다
"기쁨, 희망, 살림". 이 세 단어가 예수의 정신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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