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6일)
어제 맨발 걷기를 하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책을 한 권 알게 되었다. 그 제목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팔레머)이었다. 아직 안 읽었는데, 오늘 구입하여 정독 할 생각이다. 그 책 속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내가 결혼을 통해서 배운 게 뭔지 아나? 절대 다른 사람은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변하는 것이 쉽다."
그러니 우리는 과제 분리를 해야 한다. 상대방의 모습이 싫다면 그것을 내가 고치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 "과제분리"(아들러)라는 말을 아침에 소환했다. '과제 분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자는 거다. 그리고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거다. 누구의 과제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생을 좀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방법은 타인의 과제를 비우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저기 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긋는 거다. 나의 기대와 신뢰를 받는 상대라도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일 뿐이다. 단지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는 표시하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 저래라"하며 다른 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않고 싶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을 기울인다면, 타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다는 말인가?' 자신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상대가 내게 어떻게 행동을 하든 내 행동을 정하는 것은 '나'이다.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사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그래서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 밖에 없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게 아들러가 말하는 "미움 받을 용기"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거다. 인정 받지 못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로부터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자유는 미움을 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관계는 세 가지이다. 나와 나, 나와 남, 나와 세계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는 인간 관계에서의 문제로 타인을 '적'으로 여기지 말라고 했다. 타인에게 관심 기울이기, 타인은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기, 타인과의 과제 분리하기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 부여'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과 인생과 세계에 대한 의미 부여를 '생활 양식'이라고 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자신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견해인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때의 정해진 패턴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생활 양식'은 생각의 관점을 바꾸면, 어렵다 할지라지라도 바꾸기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관계가 끊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다. '나-너'의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가 어려우면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 보다 다른 '나-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제를 분리하면서,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수평관계가 필요하다. 수평관계란 '같지는 않지만 대등하다'는 뜻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서로 열등 콤플렉스가 없다.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제 분리'는 단지 출발점이다. 그 다음으로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동체 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아들러의 생각이다.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이 감각을 키우려면,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려면 필요한 것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주장했다.
(1)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 자기수용이란 평범해질 용기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이다. 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00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과제분리와 함께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다. 긍정과 수용의 차이에서 긍정은 이성적인 면이 강하다. 다른 말로 하면 '승인'이다.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성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긍정은 '인정함'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수용은 감성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어색하게' 긍정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자와의 관계가 더 쉬워질 수 있다.
(2) 타자신용이 아니라 타자신뢰: 신뢰는 조건을 달지 않고 무조건 믿는 것이다. 조건 없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신뢰의 관계 속에서 배신은 나의 과제가 아니라 타인의 과제이다. 난 '어떻게 할 것인 가'만 생각하면 된다. 타자 신뢰를 통해서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가질 때 인간 관계의 즐거움이나 기쁨은 그만큼 더 크다. 신뢰와 신용의 차이에서, 신뢰는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면, 신용은 마음 속으로 약간의 의심을 하지만 그래도 믿는 것이다. 신용이라는 말은 거래에 사용된다.
(3) 타자공헌: 타자공헌은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공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힘을 써서 이바지 하거나 재물을 바쳐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 때 다른 사람을 친구로 여기면, 친구가 있는 그 곳이 '내가 여기에 있어도 좋다'라는 소속감이 생긴다. 거기서 관계를 유지하려면 타자공헌을 해야 한다. 타자공헌은 친구인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나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하다고 생각했을 때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길 때에,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공헌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타인의 과제에 불쑥 끼어드는 행위를 '개입'이라 한다. 이런 관계는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보고,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라고 보고 개입을 하는 것이다. 양해를 하지 않고, 남의 일에 불쑥 끼어들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려고 하는 것이다. 개입이나 조종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수평관계에서 근거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 부여'라고 한다.
아들러 심리학의 견해는 과제를 앞두고 능력이 있든 없든 과제에 맞설 용기를 잃는 것을 문제로 본다. 그래서 이런 구체적인 실천을 끝으로 다짐해 본다.
(1) 과제를 분리할 것
(2)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대등한 수평 관계를 맺을 것
(3) 용기 부여란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4)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 고맙다, 기쁘다, 도움이 됐다. 이런 것들은 평가가 아니라 보다 순수한 감사의 인사이다. 인간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타인에게 공헌했음을 깨닫게 된다.
비 개인 오후에, 딸과 맨발 걷기를 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 분리'를 다시 기억하며 여러 생각을 하며 걸었다. 배우 하정우는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계속 해보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흥미로운 것을 배웠다. 티벳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우리는 "소요학파"라 부른다. 그는 걸어 다니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이 학파의 공부 방법은 느리게 걷기였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마음은 풍경이고, 걷기는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 했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마음의 여행이라 불러볼 만하다. 그래 천천히 걸어야 한다.
시월이 깊어 간다. 오늘은 목필균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시월/목필균
파랗게 날 선 하늘에
삶아 빨은 이부자리 홑청
하얗게 펼쳐 널면
허물 많은 내 어깨
밤마다 덮어주던 온기가
눈부시다
다 비워진 저 넓은 가슴에
얼룩진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는
시월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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