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오늘 글이에요.


'나'를 찾는 여행
<대학>은 군자가 지켜야 할 최상의 도리로 “나를 기준으로 남을 헤아리라”는 “혈구지도 絜矩之道”를 주장한다. 그러니까 덕의 핵심은 “남도 나처럼 이해하고 사랑하자”이고, 이것을 현실에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공자가 주장하는 ‘仁(사랑)’이다. 사랑, 즉 인이 가장 중요하다. 지혜(智) 없는, 정의(義) 없는, 예의(禮) 없는, 성실함(信) 없는 사랑은 없다.
예수님도 그랬다. 믿음, 사랑, 소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德은 仁의 실천이다. 이러한 덕을 자신과 남을 기준으로 둘로 나눈다. 하나는 나 자신을 닦는 것은 ‘수신 修身’이 되고, 남을 돕는 것은 ‘치인, 治人’이 된다.
<중용>에 의거하면, 수신(修身) 방면으로는 지혜(知), 사랑(仁), 용기(勇)를 “3가지 두루 통하는 덕”이라는 ‘3달덕(三達德)’을 배양하고, (니버의 기도에서 보는 것처럼, 서양인들은 수신(평온함)을 위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靜),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용기(踊),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智)를 갈고 닦는다.)
치인(治人) 방면으로는 ‘인의예지신’의 구체적 실천이자 인간관계의 핵심인 “5가지 두루 통하는 길”, ‘오달도(五達道)’를 그 길로 삼는다. 부자(父子), 군신(君臣), 형제(兄弟), 부부(夫婦), 붕우(朋友)간의 도리, 즉 오륜(五倫)의 길을 말한다.
덕망 있는 사람이 되려면, ‘3달덕’을 배양하고, ‘5달도’를 행함에 날로 새롭게 하여야 ‘인의예지신’이 완비된 덕(德)의 극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 다시 되풀이 되지만, 인간이 형이상학적으로 진리를 파악하는 지혜의 완성을 한 마디로 ‘도(道)’라고 한다면, 덕(德)은 인간의 모든 형이하학적 삶 전체, 즉, 인간 대 인간의 제반문제인 인사(人事) 문제와 인간 대 물질의 경제 문제를 다 통합하여 나와 남 전체에게 보다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이다.
‘덕’을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남도 나와 같다. 나를 잘 알아서(내가 나를 모르면, 남도 모른다. 그러니 내 욕망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자문하며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보다 더 남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자!”라는 이념을 명확히 하는 것은 ‘도’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남에게 당해서 싫은 일은 남에게 베풀지 말자!”는 방식으로 실천하여 하루하루 그 실적을 쌓아가는 것이 바로 ‘덕’이 되는 것이다.
이는 “혈구지도(絜矩之道)”의 구체적인 실천이 ‘덕’이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자’는 말이 ‘혈구지도’라는 말이다. “곱자(구부러진 자, 나무나 쇠를 이용하여 90도 각도로 만든 ‘ㄱ’자 모양의 자)를 가지고 재는 방법”이라는 사전적 의미이지만, 자기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천하에 ‘사랑(仁)’의 밝은 덕(德)을 베풀어 “모두가 다 같이 잘 살자”는 대동(大同) 사회를 이루어 가기 위해 실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혈구지도”하는 태도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하는 경구는 많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
추기급인(推己汲人)” 자기의 황동범위를 남에게 까지 확대하는 것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말하는 충서의 실천이다.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도 그렇게 대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이다. ‘제 배 부르면 남의 배 고픈 줄 모른다’는 속담과 그 뜻이 일치한다.
양심으로 답해야 한다. 시어도어 파커(미국 신학자로 노예 폐지론자)의 설교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 설교는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한 설교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도덕의 우주를 이해하는 척하지 않습니다. 그 긴 곡선에서 나의 눈이 미치는 곳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 곡선을 계산하거나 전체 모습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양심으로 예측해 볼 뿐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보이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분명 정의의 방향으로 굽어 있습니다."
스티븐 핑거(미국 심리학자)는 "도덕의 곡선"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공감 범위의 확장"이라는 말을 쓰면서, 과거보다는 우리가 많이 평화로워졌다고 한다. 사랑과 관심을 친족에서부터 이제는 전 인류적으로 확장되었다는 말이다.
德은 친애함(사랑)에 있다. 진정한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덕이 이루어질 수 없다.
“덕재친(德在親)” (<대학고본>) 신(新) 대신 친(親)을 덕의 근본 특징으로 보고 있다.
나는 톨스토이의 이 말을 좋아한다.
"이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모든 비난을 해결하고 얽힌 것을 풀어 헤치며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절이다." (톨스토이) 친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도 늘 해왔다. 왜냐하면 친절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행복의 출발이다. 이런 친절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이다. 친절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부드러운 말씨를 쓰는 것이다. 친절의 크기는 우리 모두의 행복의 크기이다.
<대학>은 덕을 정신방면(윤리)과 물질방면(경제)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덕을 천하에 베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강조한다. “어진 인재를 등용하자.”는 인사정책과 “재화를 풍족히 하여 모두 다 그 혜택을 받게 하자”는 대동적 경제정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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