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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 자신이고 싶다.

9년 전 오늘 글입니다.
'참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 자신이고 싶다.

#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의 글에 만난 이야기이다.
일본에 하늘로 날아간, '고이'란 물고기 신화가 있다. 이 물고기는 ‘잉어’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며 연못이나 어항에서 볼 수 있는 주황색 물고기이다.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한 조그만 잉어가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강물을 거슬러 헤엄쳐 ‘갈 때까지 가보는 힘겨운 도전’이었다. 이는 매 순간 집중하고 몰입해야만 했다. 한눈을 팔다간 자신도 모르게 한참 떠내려가 바다 입구까지 밀려간다. 강물에 몸을 실어 내려가는 다른 물고기들은 고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시류에 어울려 살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극복할 수 없는 강물을 대적한다는 말인가! 고이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못 들은 체하지만, 사실은 금방이라도 다른 물고기들처럼 강물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고이는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이는 뾰쪽한 돌에 부딪혀 피가 나고 다른 포식어류들의 공격에 노출되지만 이 강물의 원천(源泉)으로의 외로운 여행을 감행하였다. 고이가 강물에서 만나는 장애물들과 자신의 마음에 생기는 부정적인 생각조차 물리치고, 자신을 매 순간마다 단련시켜가며 강하게 만들었다. 강물의 상류로 가면 갈수록 물길이 거세지고, 지세는 가파르게 변하였다. 고이의 체력이 강해진 만큼, 고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배 이상으로 어려워졌다. 그런데 고이의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을 때, 고이를 완벽하게 좌절시킬 만한 장애물이 등장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90도로 세워진 폭포였다. 하늘에서 쉬지 않고 퍼붓는 폭포수는 고이 몸을 거의 산산조각으로 찢을 수 있었다. 고이는 망연자실하였다. 도저히 거슬러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때, 고이는 '불가능한' 상상력을 이렇게 동원하였다. “내가 비록 물고기지만, 물고기이기를 포기하겠다. 지느러미와 꼬리를 날개로 만들어 폭포 위로 날아가면 되지 않는가!” 고이의 자기믿음이 그 순간에 그를 한 마리 용으로 변모시켰다. 그러자 고이는 자신을 가차없이 떠내려 버리는 강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용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나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밑에 아련하게 사라지는 폭포수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 연휴에는 이범선의 <피해자>라는 단편을 읽었다. 거기서 만난 문장을 기억으로 재구성한다.
너는 나보고 암탉이 품어 생긴 병아리들과 같이 키운 꿩이길 바래. 너는 날더러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한다. 너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고. 그러나 이미 난 날 수 있는 꿩으로서의 용기를 잃어버렸어. 그러나 훌쩍 이외로 쉽게 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다음에 오는 꿩의 생활은? 나는 뿌려주는 모이를 주워 먹을 줄은 알아도 산에서 이리저리 헤매면서 모이를 찾나 낼 재주를 미처 못 배웠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주인의 뜻 하나에 맡겨두고 그대신 사는 날까지는 답답하지만 안전한 뜰 안에서 사는 닭이야. 용기를 내어 산으로 날아가기에는 너무 크도록 닭의 생활을 해왔어.

시류에 떠내려가 피라미가 될 것인가, 닭장에 갇힌 닭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신화를 찾아 용이 될 것인가? 날 수 있는 꿩이 될 것인가?

모든 수고들 중 가장 숭고한 행위인 깨달음인,  '참나'를 찾아 떠나는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읽고 싶은 이야기이다. 자신의 신화를 구축하고 그 신화를 찾아 인내하는 자가 되고 싶다. 그 어떤 사람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유혹하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