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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레비나스의 철학, '타자 윤리학'을 위한 6단계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21일)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 윤리의식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도덕적 압력'이다. 이 윤리의식이  우리를 '선하게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아침이다.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윤리적 주체"가 되라는 말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유를, 나는 언젠가 윤정구 교수의 페북을 읽고 정리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충북대 김연숙 교수와 10년 동안 레비나스의 책을 번역하였다.

윤정구 교수는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을 쉽게 설명하였다. 그걸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적 주체"란 타자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타자 중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어쨌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덕목은 '선(善)'이다. '선'이란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라'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만 생각하고, 나의 욕심에 따라 나 밖의 것을 내 것으로 자기화하지 말고, 타자에로의 초월로 타자가 보내는 호소에 응답하는 것이 '선'이다. 나쁜 사람은 '나 뿐만'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사적인 욕망보다 이를 위해 도덕적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양심의 압력을 키워야 한다. 윤정구 교수는 레비나스의 철학, '타자 윤리학'을 다음과 같이 6단계로 잘 요약했다. 정리가 된다.

1. 'Il y a(일리야)"라는 존재의 심연(웅성거림만 존재하는 '거기 있음'의 세계)
2. 향유를 통한 이기적이고 주체적 자아 (주체적인 동일성 세상에서의 향유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초월)
3. 타자에 대한 환대와 타자의 얼굴을 통한 관계적 만남-나는 이를 '접속'으로 이해한다.
4. 타자 학습을 통한 타자 되기(이를 통해 타자의 세상이 드러남)
5. 많은 타자를 통한 무한의 경험 (무한의 세상을 목격)
6. "윤리적 주체"로 거듭남.

정리하면, Il y a(일리야, '거기 있음') → 향유 → 환대, 얼굴 → 타자 되기 → 무한 → 윤리적 주체가 된다.

1에서 2로 초월: '그저 있음(Il y a)'의 세상에서 초월해서 사랑도 해가며 삶을 향유도 해가며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도 해가며 미래를 대비해가며 집에 소유도 축적해가며 사는 삶으로부터 초월하여 자신의 주체적 자아를 찾는 일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오늘 아침공유하는 박노해 시인의 시,  첫 연의 마지막 질문, "내 영혼이 부르는 길을 따라갈 수 있는가"에 '아니오'라고 답한다. 향유를 통한 주체성과 동일성으로 쌓인 재현의 세상을 통해 내 영혼이 부르는 길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거다.

3에서 4로 무한의 세계로 확장: 자아실현을 넘어선 타자 되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자의 얼굴에 대한 환대가 제대로 자신의 주체성을 초월하여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타자의 세상은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고, 부모를 잘 만나 세상의 행운을 다 향유해 온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낮춰 타자를 환대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세상이다.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현현(ephiphanie)된다. 타자의 세상이 그냥 모습이 드러난다. 이 때, 잘난 사람들이 자신을 낮출 때 타자는 그 잘난 이들에게 스승이 된다. 행운을 만끽해온 장본인인 나는, 타자를 환대해가며 타자 되기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 재현에 의해 구성되었던 우주에 균열이 생기고 이 균열을 빠져나가, 무한의 세상을 목격하게 된다.

5에서 6으로 "윤리적 주체"로 거듭 남: 환대를 통한 무한의 세계를 경험하면, "윤리적 주체"로 거듭난다. 다시 말하면, 환대를 통해 향유하는 주체가 초월 되어 "윤리적 주체"가 될 때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타아(他我, 윤리적 주체)" 실현의 강한 무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이야기이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전제가 있다는 거다. 몇 차례의 초월을 통해서 "타아(윤리적 주체)" 실현의 세상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일리야"의 세상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현존재가 그냥 "타아" 실현할 수 있는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레비나스는 '공공(公共)의 철학'이다. 자아실현이라는 <정신모형 1>의 세상을 넘어서 "타아" 실현이라는 <정신모형 2>의 세상을 플랫폼으로 구축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서 더 고르게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 변화를 실현시키려는 철학이다. 물론 자아실현이 안 된 사람이 '타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이다. 자신의 주체적 독립의 토대를 마련한 후 타자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자가, 내 방식대로 말하면, '위대한 개인'이다.

레비나스 철학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해 이를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긍휼(矜恤.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과 환대(歡待,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의 기반이라 보기 때문이다. 긍휼감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넘어져 피 흘리고 있는 타자의 얼굴을 통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응답해 자신의 주체성, 동일성, 전체성의 가면을 벗고, 타자의 고통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이런 '타자 되기'를 실현하는 세상은 결핍의 해결을 추구하는 자아실현을 향한 욕구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다. 레비나스는 이 '타자 되기'를 실현하는 세상을 여성성으로 설명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환대를 제대로 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의 얼굴에 대한 환대로 이어간다. 그게 여성성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의 고통을 앓는다. 자신도 성장의 고통을 가지고 있고, 이런 자신의 성장의 고통에 대한 직면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여성성이다. 이 여성성은 내가 동일성의 집에 거주하고 있어도 나에 대한 환대를 느끼는 나의 얼굴이다.  

우리는 지금 타자와 새로운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좀 쉽게 말하면, 모든 생명체의 관계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포식(捕食), 기생(寄生), 경쟁(競爭), 공생(共生)이 그것이다. 포식과 기생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반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포식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 호랑이나 늑대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기생의 대표 격인 칡덩굴이 인간의 손에 의해 제거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배연국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의 글에 보고 언젠가 적어 두었던 것이다.

"자원이 유한한 환경에서 생명체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공생이 완전히 배제된 파멸적 경쟁은 종의 번성에 기여하기는 커녕 쇠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성공적인 생존전략은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벼, 밀, 옥수수, 과일, 가축 등이 지구상에 번성한 것도 공생 전략을 생존 수단으로 삼은 덕분이다. 인간은 이들에게 열매와 고기 등을 얻는 대가로 이들이 서식할 환경을 마련해준다. 식물들이 곤충들에게 꿀을 주고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것 역시 공생원칙에 충실히 따른 행동이다."(배연국)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제1원리는 "네 자신을 알라"이다. 자기 이해에 대한 정언 명령이고, 제2원리는 "길을 잃고 헤매는 내 자신을 제대로 돌보라며, 숙고하라는 자기 규율의 정언 명령이다. 자기와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자기인식의 나침반으로 인문학 고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인문학적 지도 위에서 나침반의 극성(極性)을 다시 점검하며 정신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이렇게 잘 정리한 윤정구 교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가 '국격'을 떨어트렸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한 사람의 '격(格)', 한 국가의 '격'은 이제까지 말한 '타자 되기'와 '환대'가 일상에서 일어날 때 주어지는 것이다. 고전 <<대학>>은 "격물치지"라는 말로 '인문적 지도'를 그려 주었다.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사리를 통하여 그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 머리를 밝혀가는 중에 만나는 그 길, 지혜)에 가까워진다" 중심과 부분, 근본과 말단, 일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아는 것이 격물(格物)이고, 이러한 격물을 통하여, 먼저 할 것(先)과 뒤에 할 것(後)을 정확히 아는 것이 '치지(致知)'이다. 이게 그 어려운 '격물치지'란 말이다. 여기에 "'격'자가 나온다. 품격.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고민하며, 격물치지를 이루며 일 할때 '격'이 나온다. 이게 지혜이고, 순 우리말로 슬기이다.

고전 『중용』은 이렇게 '인문적 지도'를 그려주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하늘이 우리에게 본성을 주었는데, 즉 인간의 격을 말해 주었는 데,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길(道)'라고 했다. 그 길은 우리가 인간으로 품격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이 그  '길(道)'라고 본다. 그리고 그 '도'를 잘 '다듬고 기르는(修道)' 것이  '교(工夫 공부)'라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적 결정의 순간에 감수성이 작동한다. 그래 내가 선택한 길은 강요 받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통해, 보다 더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유인으로, 게다가 품격 있는 선비(=군자, 보살)로 행복한 삶보다 '거룩한', 영성이 높은 더 나은 삶을 사는 거다. 그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으려 아침마다 <인문 일지>를 쓰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이 되기 위해서는 이력서가 아닌 나의 조문에 들어갈 내용을 생각하며 일상을 명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조문에 들어갈 내용은 한 존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깊이 있는 인격을 기르는 방법보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한다. 지금은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훨씬 더 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게 레비나스의 철학이다. 현 대통령 부부를 우리는 '격'이 없다고 하지만, 나 자신부터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 문제는 내일 <인문 일지>에서 이어가고, 여기서 멈춘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은 제1의 철학이 윤리라고 주장한다. 이는 진정성을 획득한 '타자 되기'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넘어지고 다쳐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환대"이다. "진실로 남이 될 수 있는 능력이/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인 것을"(박노해,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일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노해 시인의 시 전문을 공유한다. 여러 번 읽어가며, 성찰하게 하는 좋은 시이다.

남이 될 수 있는 능력/박노해

진정 나는 나일 수 있는가
나 자신이 되는 일을 하고
내 가슴이 떨리는 사랑을 하고
내 영혼이 부르는 길을 따라갈 수 있는가

진정 나는 남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으면 많은 남들이 될 수 있는가
남이 되는 일을 하고 남이 되는 밥을 먹고
남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는가

남이 될 수 있는 만큼이 나인 것을
남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실력인 것을
진실로 남이 될 수 있는 능력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인 것을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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