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21일)
어제부터 많은 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올까? 사람들은 가을 대신 '여을'이라고 한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여름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가을비에 나뭇잎 보내고, 잎 떨어진 벌거벗은 나무에 겨울 비 내린다. 비 이야기 나와서 말하는 데, 봄비는 일 비이고, 여름 비는 잠 비고, 가을비는 떡 비고, 겨울비는 술 비이다. 봄에는 비가 와도 들 일을 해야 하고, 여름에는 비교적 농한기 이므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비는 햅쌀로 떡을 해먹으며 쉬고, 겨울에는 술을 먹고 즐긴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은, 어제 <인문 일지>에서 말했던 마지막 문장의 이해를 위해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한다. 노년의 문법이 필요하다. 노년은 수렴하고 비우는 시기이다. 그런 문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문법을 아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필멸성이 동물상태의 인간을, 영원을 희구하는 신적인 인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이러한 여정에서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는 부모로부터 의술을 배웠고, 그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여, 의사가 되려는 학도들을 위한 '교본'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시간의 시급함과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학 교본에 등장하는 '격언집'(Aphorismi)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 위기는 쏜 화살처럼 달아나고 경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에게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환자, 간호원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인생이 짧으니, 자신에게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다른 이들과 협력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며 심판을 하는 시간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강물이 흘러가듯 항상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137억년 전이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1시간 전이나,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순간이다. 인생은 허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다. 그런 삶을 연장하는 열쇠가 '기술'이다.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나온 것이 아닐까?
로마로 와서, 호라티우스는 히포크라테스의 문장을 라틴어로 'vita brevis ars longa(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하였다. 그는 그리스어 '테크네'를 라틴어 '아르스'로 번역하였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의 어원이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예술은 어떤 분야든지 최선의 경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예술가는 그 순간에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 들에서 최고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사람이다. 몰입하지 않는 기술이나 예술은 없다. 예술이나 기술은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 들에서 최고를 선택하는 수고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로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예술’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르스(ars, 그리스어 테크네, 기술)’의 의미가 ‘우주의 질서에 알맞게 만물(萬物)을 정렬시키다'가 되는 것이다. 이 정렬 시키는 일이 '배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을 지배하며, 몇 가지 삶의 규칙을 가지고 '지금-여기'의 삶을 정돈하는 사람은 모두 예술가이다. 그냥 충동적으로, 감각적으로 살면서 무질서한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시간 있다고 TV만 보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 '저 너머'를 꿈꾼다. 생존만을 위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 정렬, 다시 말하면 배열 혹은 베치를 우리는 문법이라고 한다. 이 문법을 그리스어는 '그라마(gramma)'라 한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카드모스(Cadmos)라는 페니키아인이 그리스에 최초로 알파벳을 전달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이 페니키아 문자를 ‘그라마티케 테크네(grammatike tekhne)'라고 표현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글자를 배치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람마’란 단순히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그 단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런 배치에는 순서가 있고 강조를 위한 침묵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람마'란 최적의 배열이다. 그래야 그 문장이 감동적이며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에서 새로운 언어의 체계를 ‘그람마(gramma)’ 라고 불렀고, 그걸 동양에서는 '문법'이라고 한다. '문법'은 어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원칙이다. 문법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언어만의 내공이며 무늬다. 단어들은 문법을 통해 언어로 완성되어 우리에게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아르테스(artes)’는 ‘최선, 예술,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르스(ars)'의 복수형이다. ‘아르스’는 하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마치 그 솜씨가 어머니가 담근 김장 김치 맛처럼, '아르스'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이 만들어준 최적화된 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실패라는 경험들이 굴복하지 않는 의지와 결합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감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 운동가도 예술가이다. 인문 운동가로서, 나는 사람들에게 흔히 말하는 쓸데 없는 일을 궁금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먹고 사는 일 이외에의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
이제 다시 어제의 화두로 돌아 온다. 노년의 '존재 양식'으로, 먹고 사는 문제로서의 양식(糧食)과 품위 있는 삶과 사회를 위한 양식(良識)도 필요하다. 품위 있는 삶과 양식을 위해 우리는 배워 그것을 익혀야 한다.
'품격'은 '품성'과 '인격'의 준말로 사물이나 사람의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품이나 품위를 의미한다.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말하고, 국격은 국가의 품위를 말한다. 격이란 물질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요즘 품격이란 말이 사라지고 있다.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말 한마디, 표정과 몸짓 하나로 지켜내는 인간의 품격. 굳이 내가 가진 것을 떠벌리지 않아도, 난 이만큼 가진 사람이라고 알아주길 강요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 비싼 명품 제품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탁월함으로, 진정 ‘자기다움’ 넘치는 사람으로 스스로가 명품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품격이다.
진정한 품격은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과 말 한마디, 그리고 상황에 맞는 표정과 우아한 몸짓 하나로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을 주고 산 품격을 온몸에 휘감아도 “나는 특별하며, 어디서든 빛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항변을 해도 소용없다. 때와 장소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상황에 맞는 태도와 행동으로 자신을 빛나게 하는 사람. 타인을 향한 고운 눈빛에 타인을 배려하는 손짓과 몸짓, 더 나아가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품격과 품위의 아우라가 있는 사람에겐 그 어느 누구도 당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품격 있는 삶이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소중한 자신을 케어 할 줄 아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충만한 자기 삶을 사는 것, 더 나아가 타인의 삶도 함께 존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자존과 품격을 지키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품격이 동반된 진정한 승리이며 비로소 개개인이 품격으로 추구하는 브랜드까지도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요즈음 어른의 품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어른의 품격은 인생 경험과 연륜을 쌓고 그 풍부한 자산을 통해 각성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어른은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기생하는 존재이다. 어른은 자기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가족 부양의 책임도 기꺼이 져야 한다. 어른이란 제 삶의 의미와 무게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다. 사는 데 필요한 교양과 지식을 쌓고, 어른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며, 시민 의식을 갖고 건강한 방식의 삶을 꾸리는 이가 바로 어른이다.
그 반대가 '어른 아이'이다. 신체는 다 자랐지만 미성숙한 자아로 아이처럼 행동하는 이들은 내면의 안정감이 떨어지고, 매사에 무책임하다. 이들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불화하고 자기 고집이 세다. 어른으로 살기 위한 적절한 배움과 수련을 건너뛰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요즈음 주변을 보면, 어른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더러 리더 노릇을 하면서 음흉한 꾀를 내며 사익 추구에 몰입하는 행태들은 불쾌하고 역겹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패들, 즉 탐욕과 이기주의, 과잉 히스테리, 갈등과 긴장들의 원인은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탓이다. 미숙한 인격체들이 만드는 사악함은 부의 양극화, 약자에 대한 자별, 공정성과 정의의 실종, 동물 학대와 생명 경시, 살인과 폭력으로 드러나고,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쩨쩨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관심이 없고, 매사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어른 품격이 없다. 어른이란 소란과 허장성세로 갈팡지팡하거나 말초 감각에 휘둘리고, 욕구와 충동에 따라서는 안 된다. '어른 다움'이란 절제와 포용, 관대함, 높은 자존감과 윤리 의식을 두루 갖춘 인격과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타인을 향한 사리와 분별이 깊고, 앎과 행동이 하나이며, 연륜과 나이에 맞는 교양과 예의로 품격을 드러내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미래 세대에게 삶의 푯대가 될 수 있는 어른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결국 어른의 품격이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닌 주변과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 즉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중한 자신을 케어 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 이러한 품격은 곧 진정한 ‘자기 다움’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 자신의 감정이 제멋대로 표출되도록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이 지배하도록 두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 쉽게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버티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 그들의 태도는 항상 세련되게 거리를 둔다. 물론 친절하지만, 적당하게 다정하고 적절한 친절을 베푼다.
▪ 자신의 사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 그들은 자랑하고 싶은 감정을 절제한다. 그것이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으며,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는다.
▪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그런 상황에서도, 상대를 비웃거나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르는 척 넘어가거나 상대가 그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기까지 한다.
▪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약점을 들추어 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 상대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을 말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품위를 인정해 줌으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다.
▪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특권을 요구하지 않으며 늘 아랫사람들을 존중한다.
▪ 마찬가지로,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김한규
그것은 끝없는 내 안의 담금질
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답다는 순종의 미처럼
곧 떨어질 듯 아름다운 자태를 놓지 않는 노을은
구름에 몸을 살짝 숨겼을 때 더 아름다워
비 내리는 날에도 한 번도 구름을 탓하는 법이 없다
우아하게 나이 든다는 것
그것은 끝없이 내 안의 샘물을 길어 올려
우리들의 갈라진 손마디에 수분이 되어주는 일
빈 두레박은 소리 나지 않게 내려 내 안의 꿈틀거리는 불씨를
조용히 피워내는 불쏘시개가 되는 일.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망의 가지를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잘라내는 일
혈관의 동파에도 안으로 조용히 수습하여
갈라진 우리들의 마른 강물에 봄비가 되어주는 일.
살다가 문득 홀로 거닐다 바라본 높은 하늘이 너무 청아해
누군가에게 꼭 하늘을 마주 바라보자는 그 말을 전하고 싶어
문자를 보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너 혹은 나의 처진 어깨를 펴 주고
가끔은 나를 버려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다
추하지 않게 주름을 보태어 가는 일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날들이 다만 슬펐을 뿐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아름답게_나이_든다는_것 #김한규 #노인의_존재양식 #아르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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