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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고향에 다녀오는데, 한가위 대보름달이 대단했다. 우리 동네는 마을 한 복판 높은 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그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 운동장으로 가 달님에게 인사하고, 기도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은 말한다. 달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눈짓 한 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다. 감는데 보름, 뜨는데 보름이 걸린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더디게 오고 더디게 가는 것이다. 반면, 돌부처가 눈을 감는다는 것은 다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뜨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고 허물어지기만 하는가. 천천히 아주 더디게 사랑에 꽂혔던 시선을 거두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유한함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성을 추구하는지 모른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를 결박한다. 그래서 상처를 입고, 상처를 준다. 달은 지구에게 억만년을 사랑한다고 윙크를 해도 아직 한 번도 품은 적이 없다. 그래도 사랑의 자세를 잃지 않고 지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참으로 더디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이처럼 더딤을 즐길 줄 아는 한결같은 마음에서 온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人)은 사람(人)을 만나야, 인간(人間)이 된다. 인간은 인(人)자 뒤에 간(間)이 붙는다. 그 인간(人間)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속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에서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존재이다. 이 ‘간(間)’를 우리 말로 하면 ‘틈’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영원한 시간 속의 짧은 ‘틈’과 무한한 공간 속의 좁은 ‘틈’을 비집고 태어나, 사람들 ‘틈’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는 존재이다. 이를 우리는 ‘삼간(三間)’이라고 한다. 그러니 살면서, 그 시간의 틈을 즐겁게, 공간의 틈을 아름답게, 인간 사이의 틈은 사람 냄새로 채워가며 행복하게 살면 된다. '즐겁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명사보다 부사와 동사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를 '순간(瞬間)'이라 한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둘의 공통분모인 사이, 즉 간(間)을 포착해야 한다. 우린 이걸 '순간'이라 한다. 우린 그 '순간'을 잘 포착해 가며, '순간'을 사는 것이다. 자연은 순간순간 자신의 색깔과 자기 몸의 구조를 다채롭게 바꾼다. 고향 친구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고향 친구들과 대전으로 오면서, 나눈 대화들이다. 지금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대, 내외적으로. 그러나 나는 인문운동가로서 '근거 없이' 낙관(樂觀, optimism)한다. 일이 잘 되어 갈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이다. 내가 그런 낙관주의자가 된 것은  '모소대나무'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발걸음이 더딘 것은 사회 체질을 바꾸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중이고, 위기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어김없이.

더딘 사랑/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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