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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특정 세력이나 종교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34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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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正敎, 정치와 종교) 분리'가 우리 사회에 매우 급하다. 사실 유사 이래 종교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였다. 부족국가 시대엔 불가해한 자연현상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부족의 염원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구성원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제사장들이 했다. 그 제사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삶에 축복을, 죽음에 안식을 보장하는 역할도 종교의 몫이었다. 때로는 그 종교의 세계관과 교리가 권력자의 의도나 목적에 맞지 않으면 탄압하고 어떤 정치는 종교의 권위를 업고 통치의 정당성을 얻기도 했다. 중국대륙에선 황제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불교를 배척해 수만 개의 사찰을 없애고 수십만 명의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켰다가 그들의 권력이 저물자 원상복귀 하는 일도 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도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그야말로 인류사에 큰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이해하지 못해 신의 영역으로 묶어 놓았던 것들의 빗장이 열리며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만큼 종교의 역할은 희미 해져간다. 관심에서 멀어지니 관심을 끌고 싶은 지 신자들의 정치화를 이끌어내는 일부 종교인이 있다. 인류사에서 종교의 역할이 컸던 만큼 그 폐해도 크기에 오늘날 정치와 종교는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일정 부분 관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종교가 세속 그 자체가 된다면 이미 그것은 종교라 할 수 없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 세력이나 종교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의 정치 집단, 혹은 한 국가가 이단적인 종교 집단에 의해 잠식된다면 역사의 시계를 수백 년 되돌리는 일이 벌어진다.

종교는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안식과 피안을 제공하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오랜 관습처럼 젖어 있는 온갖 신비주의와 미신과 같은 맹신을 벗고 빛나는 과거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세속의 때를 벗고 근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돈을 많이 벌려면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하려면 정치에 입문하면 된다. 종교 지도자가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그들의 믿음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자신의 욕망이나 정치에 이용한다면 그는 지옥에 살면서 신자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사자와 같다. 대형 교회를 보면 생각나는 시를 공유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조민

여자는 동네를 돌고 돌았다
매일 아침 나무토막을 두들기면서

천국 갑시다 딱, 딱, 딱 천국
갑시다 딱, 딱, 딱

어릴 때 교회 오빠는
자기 무릎에 앉으면 천국에 간다고 했다
천국은 지옥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파란 마늘 밭에서 누가 자꾸 부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불리고 계실까

밤이 더 환했다 내 방은
만능 열쇠 간판 빛 때문에
창문을 열면 천국 문이 열릴 것 같았다

자고 나면
바늘을 삼킨 물고기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2
프랑스 헌법 1조는 ""프랑스는 분리될 수 없고 불가분하며, 세속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모든 시민에게 법 앞에 평등을 보장하며, 출신, 인종,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 démocratique et sociale. Elle assure l'égalité devant la loi de tous les citoyens sans distinction d'origine, de race ou de religion." 이다. 프랑스는 헌법 첫 문장에 세속주의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세속주의을 '라이시떼(laïcite)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가지고 있다.
▪ 성직자에 한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 프랑스에서는 (대형) 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도 금지한다. 이미 지어진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여 예외로 본다.
▪ 동일한 원칙으로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별을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다.
▪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 사르코지 정권에서는 1946년 부터 65년간 방송된 기독교 라디오 설교도 금지된 바 있다.
▪ 프랑스가 말하는 tolerance는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프랑스 공화주의 근간은 자유, 평등, 박애, 세속주의, 애국주의이다.

프랑스와 종교의 대립은 프랑스 혁명(1789)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정부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이에 프랑스는 두 차례 로마를 침공한다.(1798, 1809년). 혁명 정부는 카톨릭을 앙시엥 레짐(Ancien Regime)의 한 축으로 여겼고, 프랑스 헌법에 충성 서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들은 범법자로 몰았다. 이후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를 한다. 카톨릭을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인정하는 대신 교회를 프랑스 정부의 관리 아래 두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세속주의는 1905년 제3공화국의 정교분리법에 근거한다. 프랑스인들은 모든 공적인 장소를 '종교 청정 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행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학교에서 종교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은 1937년 제정되었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세속주의 정신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 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3
오늘은 프랑스 '세속주의'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세속주의'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믿음에 관한 것들 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가에 의한 종교적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고, 종교에 대해 국가적인 특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을 의미 한다. 즉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종교에 의해 간섭 받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세속주의이다.

세속주의는 프랑스 정부가 택하고 있는 정책 기조이다. 자유를 앞세운 세속 국가라고 했다. 유발 하라리는 세속주의를 말하면서 부제로 "당신의 그늘을 인정하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늘, 아니 그림자 없는 실체는 없다. 세속주의는 가끔 종교의 부정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일관된 가치 기준으로 규정되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세계관이다. 세속주의자들은 세속적 가치들에 대해 독점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도덕과 지혜는 어느 특정 장소와 시간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간의 자연적 유산이라고 본다.

세속주의자들은 여러 가지가 뒤섞인 정체성에 익숙하다. 이들이 생활방식에서 중시하는 것은 진실과 연민, 평등, 자유, 용기, 책임의 가치이다. 종교의 힘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인문정신을 주장하는 인문운동가가 우리 사회를 도덕으로 만든다. 위의 여섯 가치를 중시하면서. 이 6 가지는 근대 과학과 민주 제도의 기초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윤리 규범이 그런 것처럼, 세속적인 규범도 사회 현실이라기보다 열망하는 이상이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1: 진실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을 말한다.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으려는 이상이다.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때 오히려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 세속주의자들은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어디에서 나온 것이든 신성시 한다. 이처럼 진실에 헌신하는 태도야말로 근대 과학의 기저를 이룬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2: 연민(compassion)
세속주의 도덕률은 이런저런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데서 나온다. 살인은 외부로부터 온 금지된 행동이 아니라, 지각 있는 존재에게 막대한 고통 끼치기 때문에 금지한다. 세속주의자들은 딜레마에 직면하면, "신이 뭐라고 명령하는가?"라고 묻는 대신, 관련된 당사자들의 느낌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폭넓게 관찰하고 가능성을 검토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타협책을 찾는다. 예컨대, 동성애자 문제를 바라보는 세속주의자들의 의견은 이렇다. 건강한 관계에는 감정적인 차원과 지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영적인 깊이까지 필요하다. 결혼에 그런 깊이가 없으면 불만스럽고 외로울 뿐만 아니라, 정신도 더 성장하지 못한다. 두 남자끼리는 확실히 감정적, 지적, 영적 욕구를 서로 충족시킬 수 있지만, 염소같은 짐승과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결혼을 일종의 기적적인 의례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호모 사피엔스의 정신은 로맨틱한 결합이 부모의 유대감과 잘 섞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세속주의자들이 과학적 진실을 중시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이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3: 평등
세속주의의 쌍둥이 가치인 진실과 연민에 헌신하는 태도는 또한 평등을 향한 헌신으로 귀결된다. 세속주의자들은 모든 선험적인 위계를 의심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누가 경험하더라도 고통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누가 발견하더라도 지식이다. 특정 집단이 경험하거나 발견한 것을 그들만의 특권으로 삼을 때 우리는 무뎌지고 우매해지기 쉽다. 세속주의자들은 '고유함'과 '우월함'을 혼동하지 않는다. 세속주의자는 자기 민족과 국가를 향한 특별한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그 의무가 배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동시에 인류 전체를 향한 의무도 인정한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4: 자유
우리는 생각하고 조사하고 실험할 자유 없이는 진리는 물론이고 고통에서 벗어날 길도 찾을 수 없다. [고통은 진리가 아닌 거짓 권위로부터 올 때 심하다.] 세속주의자는 자유를 중시하며, 어떤 텍스트나 제도, 지도자에게 최고 권위를 부여해서 옳고 그름의 최종 심판으로 삼는 일을 삼간다. 인간은 언제라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다른 길을 시도해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세속주의자는 지구가 정말 우주의 중심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지 용감하게 질문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존경한다. 또한 1789년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서 루이 14세의 폭군 체제를 무너뜨린 민중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백인 승객에게만 허용된 버스 좌석에 앉는 용기를 발휘한 로자 파크스를 찬양한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5: 용기
세속주의자에게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편견과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저항하면서 싸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개인 편견과 싸우려면, 다음을 큰 용기로 극복해야 한다. 새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감당하는 용기, 상상력 부족, , 오만과 자만심, 공감 능력 부족 그리고 삶의 내, 외부 균형 상실이 편견을 낳는다.] 또 하나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데는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미지의 사실을 두려워 하고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을 바란다. 미지의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떤 폭군보다 더 우리를 마비시킬 수 있다. [세상의 어떤 권위도 우리의 자유를 마비시킬 수 없다.]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일련의 절대적인 해답을 믿지 않으면 인간 사회는 와해될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꺼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곤란한 질문을 제기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해답을 무조건 수용해야만 했던 사회보다 더 번영했을 뿐 아니라 더 평화로웠다. 왜 그런가? 자신이 믿는 진실을 잃을까 겁내는 사람은 몇 가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사람보다 더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질문을 불허하는 답보다 훨씬 낫다.

▪ 세속주의 이상적인 가치 6: 책임
세속주의자는 책임을 소중하게 여긴다. 세속주의자는 어떤 상위의 힘이 있어서 세상을 돌보고, 사악자를 벌하며, 의로운 자에게 보상하고, 우리를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에서 보호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따라서 피와 살로 된 우리 인간이 우리가 행하는 - 그리고 하지 않는 - 모든 것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세상이 온통 비참한 상태에 있다면 해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세속주의자는 근대 사회가 전염병을 치료하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세계 곳곳에 평화를 전파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취를 거둔데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성취를 어떤 신적인 보호자의 공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식과 동정심을 개발한 결과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대량 학살에서 생태계 악화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이 초래한 범죄들과 실패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4
이상이 세속적인 세계의 주된 가치들이다. 세속적 규범이 종교적 교리와 충돌할 때는 후자가 양보하여야 한다. 세속주의 세계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의복과 의식보다는 행동을 본다. 그렇다고 종교가 있는 사람은 신을 부인하거나 전통 의식과 의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세속주의의 핵심 가치를 따라야 한다. 비슷한 이유에서, 세속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신을 믿지 말라 거나 종교 예식에 참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금지의 주입이 아니다. 오히려 세속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진실과 믿음을 분별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를 위한 동정심을 계발하며,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지혜와 경험을 이해하고, 미지의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신의 행동과 세계 전체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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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에서는 윤리적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부담스러운 기준에 부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아무 구속력은 없는 진실과 연민의 추구에만 의존해서는 운영될 수 없다. 특히 전쟁 같은 비상시기는 더 그렇다.  그럴 때는 명확한 지침과 시선을 끄는 슬로건, 그리고 사기를 북돋는 함성이 필요하다. 혁명은 소풍이 아니며 오믈렛을 먹고 싶다면 계란 몇 개는 깨뜨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쉽게 말하면 도그마로 변질된다. 도그마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종교적 믿음이 인류를 이롭게 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이나 자유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어도, 이 이야기에 대한 믿음 덕분에 권위주의 정권의 권력을 억제하고, 소수자들의 피해를 막았으며, 수십억 인구를 빈곤과 폭력의 최악의 결과로부터 보호했다. 역사상 이보다 더 인류의 행복과 복지에 기여한 신조도 없을 것이다.

이젠 생명기술과 인공지능이 이제 인간성 자체의 의미를 바꾸려 한다. 인권 도그마, 인권 운동은 종교적 편견과 인간 폭군을 상대로는 아주 인상적인 주장과 방어의 병기들을 개발해왔지만, 이 병기들이 앞으로 닥칠 소비자주의의 범람과 기술 유토피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그러나 세속주의 과학은 전통 종교 대다수와 비교하면 한 가지 큰 이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그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원리상 기꺼이 자신의 실수와 맹점을 인정한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겸손한 약속들을 하게 된다. 자신의 불안전함을 알기 때문에 작고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길 희망한다.  자신의 무 오류성을 주장하는 사람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이 더 신뢰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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