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8일)
1
어제는 가을을 부른다는 입추(立秋)였다. 이젠 가을의 길목이다. 아침 공기가 다르다. 24절기의 열세 번째이다. 말 그대로 하면, '가을이 들어선다'라는 말이다. 입춘, 입하, 입동처럼 말이다. 농사를 직던 예전에는 ‘어정 칠월, 동동 팔월’ 또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고, 팔월은 추수 일손이 바빠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의미와 그래도 추수는 건들거리며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젠 가을채비를 시작해야 한다. 아직 한 낮은 무덥지만, 어제 밤과 아침 바람이 시원 해졌다. 바람은 사계절 불지만 한 해 중 가장 반가운 바람은 아마도 입추 무렵 찾아오는 저녁 바람이다.
<<제철 행복>>의 김신지 작가는 입추 때마다 "입추 매직이다!" "입추는 사이언스!"라고 속으로 말한다고 했다. 입추 무렵을 기점으로 바람이 달라진다는 게 신기해서 하는 말이라 한다. 절기는 천문현상을 관찰해 만든 과학적인 계절 력이다. 해가 한 발짝 움직였으니 그만큼 계절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추에 알려진 속담으로는 "입추에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짓는다"가 있다. 늦여름 뜨거운 햇볕을 받은 벼가 어찌나 잘 자라는지 귀 밝은 개가 그 기척을 느끼고 짖을 정도라는 말이다. 이 무렵부터 처서까지 비가 오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기에 과거에는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마을에서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리기도 했다.
입추 경에는 하늘의 구름이 아름답다. 사실 우리가 자연에서 가장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하늘이다. 돼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는 동물이다. 평생 눈앞의 먹이를 위해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땅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하늘이라는 ‘이상’을 마주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하늘의 구름들은 끝없이 움직이고, 모이고, 옅어지며 사라진다. 바람에 따라 흐르는 구름들을 보며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하루에 한 번 구름을 보는 것은 좋은 명상법이다. 지구별에서 우리는 모두 잠시 지나가는 존재다. 오늘 아침 사진을 보며, 천상병 시인의 <구름>을 공유한다.
구름/천상병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느님을 도우시는 천사님들이여
즐겁게 쉬어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 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니
널리 용서하소서.
절기를 만든 조상님들의 놀라운 지혜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통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닌가? 달력을 들여다보면, 어떤 날에는 씨를 뿌리라 하고, 어떤 날에는 김을 매라 한다. 농경 사회에서 만들어진 절기이지만, 그 속에는 지구의 호흡과 태양의 리듬이 절묘하게 담겨 있다. 이미 우리는 농경사회를 지나고, 산업혁명의 시대를 지내고, 전자화된 디지털 문명의 초기 사회를 지나 오늘 같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세상을 살고 있다. 인류가 가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지구는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거의 완벽히 탈바꿈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대단한 위력 앞에 허약한 존재일 뿐이다. 무더운 여름을 에어컨이 이기게 해주지만, 그건 인간이 만든 문명의 잔재인 건물안 전동차 안의 얘기일 뿐,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에어컨 장착 비중이 큰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지구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낱 더위를 이기지 못 하고 절규한다. 찬란한 문명을 이룬 유럽은 그간 에어컨 없는 삶에 익숙해 있었지만 몇 년전부터 시작된 이상 열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러니 인간은 아직도 유약한 존재이다. 아무리 발달한 인류문명도 자연을 거스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처럼 논밭을 일구지 않아도, 절기의 감각을 잃지 않는 건 그 신기한 예언 같은 힘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건 몸의 감각이기도 하다. 한 여름밤 창문을 열고 누웠을 때, 몸을 감싸던 공기의 질감이 다르고, 어느 날부터는 소슬한 바람에 작은 쓸쓸함이 실려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을이 함께 오는 것이다. 자연은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과정은 늘 새롭다.
2
능력 없는 사람이 권력을 잡는 방법은 사람들을 선동(煽動)하는 것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비록 거짓 희망이라도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을 지지한다. 희망도 거짓 희망은 무섭다. 선동이 되어, 확증편향이 되면, 자신들의 신념을 바꾸면 바보처럼 보이고, 그럴 용기도 없고, 주는 '작은' 선물을 거부할 수 없기 대문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을 것이다"고 말했다. '선동'을 한문으로 이렇게 쓴다. 煽動 부채 선(扇)자에 불화(火)가 붙는다. 뜻은 부칠 '선'자이다. 부채질로 부쳐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선전(宣傳)은 다르다. 여기서 선(宣)자는 '베풀 선' 자이다.
선동은 영어로 데마고기(demagogy)이다. 사전에서는 '남을 부추겨 어떤 사상을 갖게 하거나 행동에 나서게 함"이라고 말한다. 선전과는 방법과 수단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목적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선전은 "주의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 따위를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다.
선동가 하면 우리는 단번에 괴벨스의 입을 떠올린다. 그는 젊은 시절에 예술가 되고 싶었지만, 세상이 그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그가 본 것은 부자들은 힘겨운 노력을 해서 그 부를 획득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그 부를 획득했을 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아는가 말하곤 했다. 그런 그가 28세 때 히틀러를 만나 그의 인생이 180도로 달라진다.
인간의 감정과 본능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그의 예술가적 통찰력은 나치당의 '선전부장'이 되어 그의 재능이 색다르게 발휘된다. 그의 생각은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라디오와 TV를 국민들에게 보급하여 의도적인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흘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철학자 레오 뢰벤탈(Leo Löwenthal)이 말한 선동가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선동가들은 음모론, 즉 ‘당신은 속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한다. 악마 같은 자들의 속임수에 의해 선량한 이들이 바보 취급을 당한다며 억울함과 의혹을 부추기는데, 당시 서양 사회에선 유대인이나 공산주의자, 뉴딜주의자 등이 주요 표적이었다. 혁명기 공산국가들은 자본가나 지식인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 선동가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를 들어 진보 정부란 무정부주의나 다름없다는 논리와 함께 세금 강탈에 대한 분노를 고조시키고, 당장 막지 않으면 모두 망할 것이라고 공포 분위기를 만든다.
▪ 외국인이나 타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며 혐오를 부추긴다. 타지에서 들어온 흰개미들이 우리의 둥지에서 알을 까고 있는데, 이를 방조하는 정부 역시 신뢰할 수 없다며 음모론을 더한다. 코로나19 초기의 선동가들이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나와 의견이나 출신이 다른 이들은 기생충이나 파충류, 세균같이 응당 사라져야 할 적들이기에, 그들을 박멸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혐오를 부추긴다.
역사의 모든 잔혹사는 이런 선동에서 시작된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생각은 사치다. 합리적 이성을 펼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진정한 개혁가이자 순교자로 내가 나서서 쓰레기들을 치워 주겠다. 그러니 어서 나에게 돈과 힘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선동가들이 흔히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선동가들의 시선과 관심이 머무는 최종 소실점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서민과 약자들 역시 단지 자신의 자기애를 드러내는 소재이자 유무형의 권력을 위한 수단일 뿐임을 알 수 있다.
3
어제 많이 회자되었던 말이 감거니가 특검에 출석하며 했다는 말, “국민 여러분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란 말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소환되었다.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라고 답했다. 이 말은 영어로는 노바디(nobody), 우리 말로는 '아무도 아닌"이다. 오디세우스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의 허영심이었다. 그리고 그가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스스로를 노 바디로 낮춘 덕분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감추고 '아무도 아닌'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숫양의 배 아래에 몸을 숨겨 키클롭스의 동굴, 자신의 허영심이 초래한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김거니가 이 책을 읽었겠는가? 그녀의 허영과 잔머리는 여전하다.
장자는 ‘아무것도 아닌 자’를 이렇게 말했다. '도(道)' 안에서 걸림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으며, 또 그런 개인적인 이해에 얽매여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재물을 모으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청빈의 덕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또한 홀로 걸어감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대중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따르는 자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어떤 지위와 보상도 그의 마음을 끌지 못하며, 불명예와 부끄러움도 그의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그는 매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으며, 긍정과 부정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은 말하기를 도를 깨달은 사람은 알려지지 않는 채로 남아 있다. 완벽한 미덕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무아(無我)는 진아(眞我)이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김거니가 자신을 지칭해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말했다. 장자를 읽어 봤을리 없겠지만 어쩜 그리 장자의 말과 반대일까?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라 했다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게 봤을까 두렵다. 패이스북에서 읽은 것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이런 글도 읽었다. 공유한다. "타인을 향해 ‘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면 그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 되지만, 자신을 향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오’라고 말하면 셋 중 하나를 보여주는 말이 된다.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자기애와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의 겸손함, 무언가에 무너진 사람의 절망감, 아니면 위선자의 거짓말."
4
우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의 초반에, 우리는 그가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 얽힌 이야기를 만난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한 무인도에 상륙하게 된다. 이 섬에는 "키클롭스들의 나라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야생 염소들이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 키클롭스들은 배가 없어서 바다를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배를 댈 안전한 포구도 있고, 샘물도 솟아나며, 포도나무도 있었다. 철 따라 나지 않는 것이 없는 섬, 그들은 거기서 그저 순풍이 불기만 기다리면 되는 터였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날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그곳에 앉아 말할 수 없이 많은 고기와 달콤한 술로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하룻밤을 잘 자고 일어난 오디세우스는 갑자기 키클롭스들이 살고 있는 섬으로 가보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야 할 이유는 현실적으로 하나도 없었다. 그는 키클롭스들이 어떤 자들인지,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무도한 자들인지, 아니면 손님을 환대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인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배 한 척만 끌고 키클롭스의 섬으로 건너간다. 호기심이 작동한 것이다. 우리를 안주하지 않고 저 너머로 건너가게 하는 힘이 호기심이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주인이 없는 동굴에 들어가 키클롭스가 키우고 있는 양과 염소, 치즈 등을 발견한다. 부하들은 새끼 염소와 영, 치즈만 가지고 어서 배로 돌아가자고 간곡히 애원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거절한다. 그는 키클롭스가 "내게 선물을 주는지 보고 싶었"다 말하고는 남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동굴을 '습격'해서 그의 음식과 재산을 약탈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키클롭스가 자신에게 줄 선물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동굴로 돌아와 불을 피우던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발견하자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 무역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해적들처럼 목숨을 걸고 파도를 타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자들인가?"
그러자 키클롭스에게 해적이냐는 힐난을 받은 트로이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발끈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며 제우스 신과 아가멤논을 들먹인다. 자신은 트로이 전쟁의 승자인 아가멤논의 백성이고, 또한 제우스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어서 자신을 알아보고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키클롭스는 코웃음을 치고 그들 중 두 명을 "마치 강아지처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내려 친" 다음 먹어 치우는 것으로 답을 했다.
오디세우스가 위험을 자초하게 된 것은, 호메로스의 서술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의 자만심과 허영이었다. 그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키클롭스의 동굴을 제 발로 찾아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키클롭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 속에 인정 욕구가 생겼던 것이다.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somebody였다. 고향 이타케에서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허영을 떨며 자신을 somebody로 생각하다가, 오디세우스와 열 두명의 부하는 차례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거대한 바위로 입구를 막아 놓았기 때문에 출구는 없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자신들이 가져온 귀한 와인을 키클롭스에게 선물했다. 와인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라고 답했다. 이 말은 영어로는 노바디(nobody), 우리 말로는 '아무도 아닌"이다. 기분이 좋아진 키클롭스는 와인 선물에 대한 답례로 가장 마지막에 "아무도 아닌(우티스)"를 잡아 먹겠다고 약속했다. 생명을 연장한 오디세우스는 살아 남은 부하들과 술에 취해 잠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눈을 찔렀다. 비명을 듣고 동굴 밖으로 몰려온 다른 키클롭스들은 누가 그를 괴롭히느냐고 물었다. 그러지 키클롭스는 "나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아닌"이야. 영어로 하면, "Nobody is killing me"이다. 우리 말로는 잘 만들기 어렵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다른 키클롭스들은, 아무도 죽이려는 이가 없는데,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미쳤나 보다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다.
5
그리고 다음 사건이 머리를 떠나지 안 했다. 이춘석 같은 인물이 4선까지 하고 법사위원장이 됐다면, 그를 만들어준 정치 시스템과 공천 구조, 그리고 정당의 무책임한 관리 체계는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관록’이라 포장해 공천하고, 지역 조직의 힘으로 당선시키고, 아무 일도 안 해도 높은 연봉과 특권을 누리게 해주는 잘못된 정치문화를 방치하고 있다. 그는 본회의장에서 국민의 삶과 법을 다루는 순간에도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주식을 매매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춘석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그냥 자기 돈 불리기 위한 방편으로 국회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법사위원장이 법을 지키지 않았고, 입법자가 법을 우롱했다면 이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기만이다. 더 황당한 건, 이춘석 같은 인물이 민주당 내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에도, 다른 정당에도 그보다 더 많은 특권과 부패의 기회를 누린 이들이 많다.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다선 의원들이 국민의 눈 밖에서 안락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언론에 드러나는 건 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정치 엘리트들의 ‘비공개 부패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이 모르는 사이, 수많은 정치 기생충들이 국민 세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며 자기 자산을 불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탈당 버튼 하나로 정리한다.
정치 개혁 없이는 이런 일은 반복된다. 이춘석 사건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주식 보유·거래 금지, 차명계좌 철저한 전수조사, 국회의원 자산 형성과정 공개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4선 의원이 보좌관이 써준 원고나 읽으며 주식 거래나 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정치의 본질이라면, 이 정치는 이미 썩었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할 때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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