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10일)
오늘 공유할 괘의 괘명은 "천수송(天水訟)" 괘이다. "송(訟)"이라는 단어는 보통 "송사(訟事)", "소송(訴訟)"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외괘(상괘)가 '건천(乾天, ☰, 하늘)'이고, 내괘(하괘)가 '감수(坎水, ☵, 물)'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송(訟)’이라 한다. 다투는 것이다. 전쟁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경쟁하는 갈등의 상황이다. 천지부모로부터 어렵게 나와 몽매함을 깨우치고, 음식으로 체력을 강하게 하면서 기다리던 상황에서, ‘수천수(水天需)' 괘의 상육에서 드디어 ‘不速之客三人’이 되어 험한 데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오게 되니, 드디어 경쟁의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인생사의 경쟁이고, 부족, 민족, 국가간의 경쟁이자 전쟁이기도 하다. 내괘가 '감수 ☵, 물'로 험한 상황을 의미하고, 외괘는 '건천, ☰, 하늘'로 강한 세상사를 의미한다.
괘상을 보면, 앞의 괘인 <수천 수>괘의 반대 괘, 즉 종괘이다. 앞의 <수괘(需卦)>와는 반대로, 하늘이 위로 올라가 있고, 물이 하늘 아래에 있다. 그런데 하늘은 강건하여 위로만 치솟으려고 하고, 물은 아래로만 내려가려고 한다. <대상전>에서도 이 '감수 ☵ 물'의 상황을 구름(운)으로 표현하지 않고, 물(수)로 표현했다. 구름이 아니라, 물이니 그것은 즉각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이 괘는 상과 하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것은 분열의 상이고,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쟁송(爭訟)의 상이다.
<천수송괘>의 괘의는 "작사모시(作事謀始)"이다. 이 뜻은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이다. 이 말은 <대상전>에 나오는 거다. "象曰(상왈) 天與水(천여수) 違行(위행)이 訟(송)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作事謀始(작사모시)하라"이다.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행함이 송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일을 지음에 처음을 꾀하여야 한다'로 번역된다. TMI: 與:및 여(더불 여), 違:어길 위, 謀:꾀할 모. < 송괘(訟卦)>는 외괘의 '하늘 ☰' 천 괘로 하늘대로 위에 있고, 내괘의 '물 ☵' 수 괘는 아래로 흐르니,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행하는 상이다. 이러한 기운의 양상을 보고 군자는 만일에 있을 다툼(분쟁)에 대비해야 하고, 일을 도모함에는 처음부터 계획을 잘 세워 나가야 한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하늘이 위에 있고, 물이 그 아래에 있는데, 이런 형국에서 천과 수는 가는 방향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 엇갈림의 모습이 바로 <천수송> 괘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 형상을 본받아 어떠한 사업을 일으키려고 하거나,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반드시 그 시작을 잘 헤아려 싸움이나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는 거다.
<서괘전>은 <수천수 괘> 다음에 <천수송 괘>가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飮食必有訟(음식필유송)이라 故(고)로 受之以訟(수지이송)한다. 음식에는 반드시 송사가 있다. 그러므로 송괘로 받는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천하의 모든 다툼은 음식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벌이고 있는 모든 분쟁은 그 명분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먹고 살기위해 벌이는 것이다. 음식이란 단지 먹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천연자원, 식량, 식수, 무기 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것을 말한다. 이 <천수 송> 괘의 앞에 놓인 <수천 수> 괘를 "음식지도(飮食之道)'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천수 송> 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송(訟)"이라는 것은 단지 재판을 거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다툼, 충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천수 송> 괘를 하나의 인격체로 놓고 이야기하자면, 상괘를 외괘, 하괘를 내괘라 하니, 외면적으로는 강건한 모습, 고집불통의 모습을 지니지만('건천(乾天, ☰) 하늘' 괘), 그 내면에는 음험한 성격(원래 험-險-의 속성을 지닌 '감수(坎水 ☵) 물 괘)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인간은 필연적으로 쟁소으 송사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역학을 보아도 위에 있는 사람들이 강압적으로 아랫사람들을 누르려고만 하고, 밑에 있는 사람은 음험한 생각을 품고 위에 있는 사람들을 전복시킬 틈만 노리고 있다면, 그런 사회는 쟁송이 들끓는 사회가 될 뿐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그렇다.
한 마디로 갈등(葛藤)이 아닌가? 영어단어 갈등(conflict)의 어원은 라틴어 confligere에서 기인한다. ‘서로 부딪치다’라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서구 문화에서는 흔히 갈등을 열(熱)에 비유하기도 하고, 갈등의 해결은 열이나 불을 끄는 행위로 표현된다. 해결을 위해선 과열된 온도를 낮추고, 불씨를 제거하기 위한 강력한 외부 조치가 필요 해진다. 하지만 한자어 갈등(葛藤)은 배경이 전혀 다르다. 서로 감아 올라가는 특성이 있는 두 식물인 칡과 등나무가 얽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동양에서의 갈등은 서양에 비해 양자가 유기적인 상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비유된다. 고로 해결 과정에서도 뒤엉킨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때로는 갈등의 불씨를 찾아 서로를 끊어내는 해결 방식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갈등의 동서양 간 차이는 개인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연관이 있는 듯싶다. 개인을 독립적인 개체로 이해하는 개인주의 문화일수록 갈등은 개체 간의 가열된 충돌로 이해된다. 하지만 개인과 자신을 둘러싼 타인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집단주의 문화라면 충돌은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일로 해결해야 한다. 최근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서양식 갈등 해결 방식에 젖어 있다. 이웃사촌으로 살던 마을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고, 세대 간, 계층 간 신뢰도 무너지면서 국민 모두 관계를 점점 버거워 하고, 관계를 다 끊고도 잘 살 수 있으리라 믿는 듯하다.
그러니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계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거다. 갈등이 생기면 우선 상대방의 잘잘못부터 따지는 데 익숙하지 않게 된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내 선택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계는 늘 기본설정 ‘디폴트’(default) 상태다. 그렇다면, 주어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어떻게 할지부터 우리는 살필 수 있다. 갈등 속에서 경쟁해야 할 이유는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 경쟁은 충분히 바람직하다. 하지만 마치 상대와의 관계를 끝장내겠다고 덤비면 우리의 존재도 함께 무너지고 만다. 애증의 관계이든 공조의 관계이든 그 어떤 관계도 갑자기 끝낼 수도 자의로 없앨 수도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운명처럼 주어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갈등은 우리의 존재가 관계 없이 살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시발점이 된다. 그러면 갈등 관계라도 운명 같은 선물로 여길 수 있다, 그때 우리들에게는 성장이 있고 작은 행복이 가능하게 된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처럼 말이다. 지난 목요일 계룡산 상신리 도예촌에 있는 갤러리 상신에서 찍은 거다. 탁자 위에 놓인 소녀가 싸우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서 내일 <천수 송괘>의 육 효를 읽어 본다. 그리고 오늘은 언젠가 김정수 시인이 다음의 덧붙임과 함께 소개한 시가 생각나 오늘 공유한다.
관계/이우림
욕실에 내던져진 운동화 세 켤레
말똥말똥 눈을 뜨고
서로 바라본다
비누 풀어 거친 솔로
빡빡 씻어보지만
좀처럼 속을 허락하지 않는
운동화와 나의 관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세탁기 속에 처박아 넣고
버튼을 누른다
우당탕탕
또다시 우당탕탕
속을 허락하기 전까지 모든 관계는
그렇게 시끄러운 것
"이 시는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운동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함부로 욕실에 내던져진 세 켤레의 운동화는 불화를, 더러운 운동화는 갈등이 상당히 지속됐음을 뜻한다. 도무지 속을 드러내지 않으니, 더 답답하다. 좋게 말로 해서 그런지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한다. 속을 끓이던 시인은 운동화를 빨며 감정을 추스른다. 예전 시집살이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친다. “거친 솔로/ 빡빡 씻”는 장면은 빨랫방망이로 이불 빨래를 퍽퍽 두드리던 것과 비슷하다. “운동화와 나의 관계”라 했지만, 실제로는 나와 운동화 주인들과의 갈등이다. 갈등보다는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아 생긴 불만이다. 운동화를 빨 때는 세제를 넣은 미지근한 물에 불려야 찌든 때가 잘 빠진다. 성급하게 화해를 시도하면 더 틀어질 수도 있다. 한데 시인은 참기보다 “우당탕탕/ 또다시 우당탕탕” 직접 부딪치는 방법을 택한다. 다행히 통한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관계는 한바탕 시끄러워야 속까지 허락한다. 한번 속을 허락한 관계는 오래간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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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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