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산다는 것은 '지금-여기'서 일상을 지배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모르는' 미래의 삶을 우리는 알게 된다.
오늘도 또 흘러가는 그런 날이 아니다.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날이다. 그래 오늘은 선물이다. 영어로 현재, 지금이 'present'이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는 동시에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형용사로는 '~에 있는, 참석한'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present는 ''전(前)이나 부재(不在)가 아니라, 현(現)'이다. 중요한 것은 죽지 말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야 선물인 오늘이 계속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글쓰기가 '모른다'에서 '안다'로 이어지는 과정인 것처럼, 우리가 산다는 것도 '지금은 모르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게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 뿐이다. 앞 날을 잘 모른다. 이걸 소설 쓰는 김연수는 이렇게 정리를 했다. "과거=안다, 현재=산다, 미래=모른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지금-여기'서 일상을 지배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모르는' 미래의 삶을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떻게 살까 고민일 때, 일단 그냥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살다 보면, 길이 나오고, 그 길을 잘 고쳐가며 사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일단은 쓰고, 자기가 쓴 것을 명확하게 다듬는 일부터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쓸 수 없는 것을 쓰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것을 우선 정확하게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지금-여기'서 각자 자신의 미션, 즉 임무 아니 소임(所任,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을 다한다. '소임'이라는 말이 제일 잘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마음으로 우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어제 만난 문장이다. 이를 위해, 별거 없는 평범한 일상이 오래전부터 내가 정말 원하던 삶이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주류로 벗어나 평범한 일상 속에 고독을 즐기면서, 그런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사실 지상 낙원에서 살아도 늘 즐거울 수는 없다. 적당히 바쁘고, 가끔 한가한 삶을 살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가만히 있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겁다.
『햄릿』 4막 2장에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일을 하려고 해도 최종적인 결정은 신이 내린다." 이 번주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보면, 그렇다.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되지. 너무 남 이야기를 가지고 애를 쓸 필요는 없다. 모든 질서를 잡아주는 것은 신인데, 인간이 그 일을 하려고 하면, 그런 사람의 삶은 더 고달프고, 게다가 일찍 하늘 나라로 데려가는 것 같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면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귀한 일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찮아 보여서, 더 위대하고 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이 말을 늘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다." (토머스 카라일)
삶은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이라 생각한다. 그래, 우선 오늘을 살면서,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한 뼘만 더" 나아가는 오늘 이었으면 한다. 아침 사진은, 어제 점심 식사를 한 후, 옆 정원에서 찍은 것이다. 아주 많이 갔던 곳인데, 못 보았다. 그저 그런 나무인 줄 알았는데, "한 뼘만 더" 가까이 갔더니 키위 나무였다. 그냥 중천에 뜬 해를 바라 보고 한 컷 찍었다. 뜻하지 않게 이런 사진이 되었다.
한 뼘만 더/오은영
왼손을 펴고
한 뼘을 재어 봐.
10Cm도 안 되는 짧은 길이지?
하지만 난,
고만큼 더 멀리 바라볼 테야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 다음엔
고만큼 더 높게 뛰어 볼 테야
푸른 하늘이 가까이 내려오도록
마지막엔
고만큼 마음속 웅덩이를 깊이 파야지.
내 꿈이 그 안에서 더 크도록
내가 자라면
고 한 뼘도 따라서 자랄 거쟎아?
오늘 오후 <새통사>는 185회차 On-Off Mix 모임을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에서 한다. 주제가 "토로나-19의 역설이 주는 새로운 디지털의 길"이다. 흥미로울 것 같다. 그래 얼마 전에,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의 칼럼을 읽고 정리한 내용을 오늘 아침 공유한다.
인류의 삶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변화를 겪었다. 이 코로나-19 역시 하나의 변곡점이 되어, 그동안 우리가 관습적으로 이어왔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어떻게?
▪ 사회적 거리두기로 촉발된 자발적 격리는 4차 산업의 확산과 가속에 불을 댕길 것이다. 랜선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은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오감의 자극이 덜한 타인과의 소통은 그만큼 기계적이고 의례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벌려 놓은 사회적 거리 사이로 이미 온라인 수업, 원격진료, 패밀리 케어, 스마트 워크, 온라인 유통이 아무런 저항 없이 진입했다.
▪ 토로나-19로 지금 진행되고 것은 큰 정부가 화려하게 복귀했고, 공급위기가 나타나면서 가치사슬 체계도 국내화 하기 시작했으며 집단이기주의에 감염된 규제장벽이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줄어든 자리에 가족이 자리 잡았다.
▪ 기득권의 유효기간도 짧아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전통적 매장이 체험만 하고 구매는 줄어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 여기에 ‘물리적 거리 두기' 를 실천하면서 건강을 희생하는 방식 대신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 ‘면역력이 경쟁력’ 이 된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19는 벌써 우리의 마음건강에도 이상을 가져오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외부와의 단절은 또 다른 우울과 분노를 낳으며,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분노사회로 치닫던 우리 사회에 그 우울과 분노는 또 하나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낡은 질서는 죽었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역할이 더 강조될 것이다. 이게 또 하나의 위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인문운동가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겪은 바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세계화가 만든 국경을 타고 의료선진국의 거버넌스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도 보호주의에 다시 빗장을 걸고 방역국가를 택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글로벌 연대를 포기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진단장비가 부족하고 의료위생시설이 취약한 저개발 국가까지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지금 인류공동체는 대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는 "더구나 이러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종을 일으키고 그 주기도 짧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감염병과의 전쟁은 뉴노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안을 생각해 본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어떻게 발견하고 준비해야 할까?
▪ 공동체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키고, 나누는 마음들이 있었기에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리는 막아낼 수 있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는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변화룰 준비해야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이 위기를 피해 가기도 어렵다. 설사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새로운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위기의 시대에 리더십과 분권의 의미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상대적으로 극복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충성과 가용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한편 이를 시스템화하는 리더십의 기획설계(top level design) 능력이었다.
▪ 지구 화되고 긴밀하게 연결된 곳일수록 오염이 심화한다는 점에서 유동성을 최대한 줄이고 미래를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는 스마트 도시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깔린 사회 신경망인 온라인이 이를 충분히 연결해줄 것이다.
▪ 시장과 공공성을 동시에 보는 안목을 틔우는 일이다. 지방정부와 시장 맹신주의의 결합은 공공의 가치를 몰아내면서 최악의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황폐한 공공의료현장이 바로 그 사례이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미래로 가는 열쇠를 쥐고 우리에게 길을 묻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가 생산된다 해도 미래로 열린 창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
▪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기생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중증 기저질환을 도려내고 관행과 습관이 지배한 시대정신을 바꿔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식사는 하셨냐는 인사로 서로를 챙기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 따뜻함과 인정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개인의 존재감과 행복감은 타인을 위할 때 극대화된다. 개인의 작은 힘들이 모이고 모여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는 고통은 나눌수록 그 강도가 줄어들고 상처도 빨리 아물 수 있다는 사실을 위기 때마다 체득해왔고 또 생활 속에서 실천해왔다. 인간은 혼자서만 잘 살 수 없다. 우리는 이번에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문운동가의 꿈이기도 하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오은영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택뢰(䕪雷) 수(隨) 괘 (1) (8) | 2025.07.17 |
|---|---|
|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건너가기'를 부추긴다. (1) | 2025.07.17 |
| 대안이 AI(인공지능)이다. (1) | 2025.07.17 |
| 최고의 삶은 세상에 정의가 더 많이 작동하도록 기여하는 시간 속에 있다. (0) | 2025.07.17 |
| 나 자신을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 (3) | 2025.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