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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견소포박, 소사과욕(見素包樸, 少私寡慾)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0일)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뜨거운 여름에 당당히 피는 꽃이 능소화(凌霄花)이다. 말 그대로 하면,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이다.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났다. 꽃 피우는 것을 힘들어 하는 꽃들은 없다고 본다. 핀 꽃이 덥다고 모습을 바꾸는 꽃들도 없다. 장마 더위에 귀를 활짝 펴고 웃는 능소화를 보라. 일반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는 꽃이 시들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러나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예쁜 모습 그대로 뚝 떨어진다. 꽃이 시든 채 나무에 매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에 주로 이 능소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능소화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비가 오는 때를 기다려 수십 개의 주황색 나팔을 불어 댄다. 다른 꽃은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꽃잎을 닫지만 능소화는 그렇지 않다. 한번 펼쳐낸 꽃을 다시 오므리는 법이 없으니 자존심 하나만은 최고이다.

난 능소화를 보면 슬픈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궁궐에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임금에게 눈에 띄어 하루 아침에 빈(嬪, 후궁)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다른 궁녀들의 시샘과 음모로 이어져 두번 다시 임금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 병이 들어 죽은 후, 궁 담장에 묻어 달라는 유언대로 묻혔다. 그 자리에서 자란 덩굴이 능소화란다. 기다리다 지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담을 뛰어 넘는다. 능소화의 '능(凌)'자는 ‘능가하다, 깔보다’라는 뜻이고, '소(宵)'자는 ‘하늘 소‘자이다. 그러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덩굴의 기운 때문에 능소화라고 한다. 슬프다. 동시에 이 꽃은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말을 타고 금의환양(錦衣換陽)할 때 머리에 쓰던 화관으로 장식했다고 해서 '어사화(御使花)'라고도 부른다. 조심할 것은 꽃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충이 들어가 실명(失明)을 할 수도 있단다.

어제 읽은 노자 <<도덕경>> 제32장에서는 "도(道)=무명(無名)=박(樸)"의 등식을 보여준다. 제1장에서는 "무명(無名), 천지지시(天地之始)"라는 말이 있었고, 제32장의 "도상무명(道常無名)", 제37장의 "무명지박(無名之樸)"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도(道)는 무명(無名)이나 박(樸)과는 혼연일체의 그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제32장에서 "시제유명(시제유명, 통나무를 가공하면 어떤 형태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용도에 따라 이름이 만들어진다)"이라 한 것은 박(樸)과 명(名)을 대비시켜 문명의 폐혜를 논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 도올 김용옥이다. 박(樸)은 문명 이전의 질소(質素)한 상태이고, 명(名)은 온갖 이름(위계, 명분, 권력, 관직)으로 휘 덮인 문명 세계, 즉 인간세의 난맥상을 가리킨다. 노자는 명(名)이야말로 인간세에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라고 생각하기에 무명(無名)을 강조하고 박(樸, 통나무)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바로 "지지(知止)"를 말한다. 그침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이것은 인간세 문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공유하는 꽃과 달리, 오늘 아침의 나의 화두는 '질박함'이다. '질박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가 알고 싶었다. 질박(質朴, 質樸)하다는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는 말이다.  '수수하다'는 '물건의 품질이아 겉모양, 또는 사람의 옷차림 등이 돋보이거나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면서도 검소하다 또는 사람의 성질이나 태도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순수하다'로 풀이된다.

도올 김용옥에 의하면, 우리는 이 '박(樸)'을  '박(朴)'으로 잘 쓰는데, '박(朴)'은 '박(樸)'의 약자라는 거다. '통나무 박'자이다. 목수의 손을 거친 다듬어진 나무들에 비해 통나무는 껍데기도 있고 흙도 묻은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맥락에서 '질박, 투박, 소박'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동시에 통나무는 가공되지 않은 원목으로 가공하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능성, 즉 잠재력, 다시 말해서 허(虛, 빔)의 극대치를 상징한다.

최근에 늘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 노자 <<도덕경>> 제19장에 나오는 "견소포박, 소사과욕(見素包樸, 少私寡慾)"이다. 이 말은 '순결한 흰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아라!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란 뜻이다. 좀 더 자세하게 풀면, 물들이지 않은 무명천의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 '나' 중심의 생각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다. 질박함이란 먹는 것은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이 아니라, 덜 가공한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이고, 옷은 요란한 색상이나 과장된 디자인은 피하고, 질박하고 수수한 디자인을 찾는다. 몸에 편하게 입는다.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은 물건이건 인간 관계이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능소화/정광덕​

한 많은 기다림에 가슴앓이 꽃이어라
하룻밤 화촉 밝혀 한 생을 피웠으니
등걸이 꽃꽃마다 님 그리운 얼굴이네

구름에 해 넣은듯 진분홍 꽃이어리
그리움 다져 다져 상처 내어 핏빛인가
못다한 저린 한을 붉은 물로 풀어냈나

바람에 떨어지니 네 모습 처량하다
낙화된 그 모습도 젊은 꽃 그대로니
요절한 그녀모습 다시 본듯 애접워라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목표는 인자한 사람이 되는 거다. 공자가 본 어진 사람은 강직하면서 의지가 굳은 사람이고, 일상에서 질박한 것을 좋아하고 과묵하면서 진중한 이다. 그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왈: 강의목물, 근인(子曰: 剛毅木訥, 近仁)

1. 강(剛): 강직하다는 말로 마음이 꼿꼿하고 올곧다는 뜻으로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유리함과 불리함에 따라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2. 의:(毅)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의지력이 강한 것을 뜻한다. 강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과 관련된다면 의는 결심한 것을 실현내려는 추진력과 관련된 표현이다. 브런치에서 팽소아라는 분은 "강은 펀치력이 강하다는 취지라면, 의는 맷집이 강하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것보다 강은 신념이고 의는 그것의 실천력이 강하는 것으로 읽는다.
3. 목(木):  그냥 나무로 읽어 목석처럼 뻣뻣하거나 멍청하다는 뜻보다는 통나무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나무는 사람이 꾸밈과 감춤이 없고 화려와 사치를 싫어하며 겉모습보다 내면의 뜻을 더 중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4. 눌(訥): 말솜씨가 없어서 더듬거리며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입이 무겁지만 꼭 해야 할 말은 하기에 진중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재잘재잘 떠들어대지 않을 뿐 입을 열면 조리 있게 말을 잘하기에 함부로 얕볼 수 없다는 거다.

어진 사람은 그냥 착한 사람이 아니다. 속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 강직함이라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불굴의 추진력이 굳건함, 즉 의를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질박함과 진중함을 일상의 생활 태도로 갖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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