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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래도록 피는 능소화와 나무 백일홍 꽃은 우리와 함께 여름을 나는 꽃이다.

337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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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대서(大暑)보다 더 덥다는 무더운 폭염의 소서(小暑, 작은 더위)였다. 소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와, 염소의 쁠뿔 녹을 정도로 더운 대서(大暑) 사이에 드는 절기이다. 소서가 지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소서(小暑)는 24절기 중 11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고, 하지와 대서 사이에 있다. '큰 더위'를 의미하는 대서(大暑)는 12번째 절기이다. 소서와 입추 사이에 있다. 소서와 대서는 여름을 대표하는 절기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복, 중복, 말복은 24절기는 아니다. 최근 더위는 이미 '대서'인듯 하다. 장마철인데,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온 세상이 습도가 높아 불쾌하다.  ‘찌는 무더위’ 는 가마솥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푹푹 쪄내는 것 같다는 뜻이다. 이 때 에어컨이나 제습기만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몸의 리듬이 깨진다. 무더위를 이기는 비결의 하나는 ‘희망’ 이다. "보름만 지나면"하며 희망을 갖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말복만 지나면 새벽엔 이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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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가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보일 무렵이면 소서(小署)이다. 그리고 거리에는 피고 길 반복하며 100여 일 동안 붉은 꽃을 보여주는 백일홍 나무도 꽃송이를 열고 있다. 오래도록 피는 능소화와 나무 백일홍 꽃은 우리와 함께 여름을 나는 꽃이다. 이 시기는 장마철로 장마전선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 질러 장기간 머무르기 때문에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리는 때인데, 올해는 예외이다. 무덥기만 하다. 연일 기온이 초고로 올라간다. 소서에는 장마 이야기를 하여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장마가 오면 그 때 한다.

백일홍나무가 편한 발음을 하다보니 배롱이 되었다 한다. 배롱나무의 특징은 매끈한 껍질이다. 나무껍질이 미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뜻에서 일본에서는 '원숭이미끄럼나무"라 부른다. 또는 내가 어린 시절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했다.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기 때문에 간지럼을 잘 탈 것 같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무를 간질이면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가지 끝이 흔들린다. 그렇게 보인다. 배롱나무의 개화 기간으로 따지면 최고이다. 장마가 끝난 9월까지도 계속해서 꽃이 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무색하게 하는 백일홍처럼 오래도록 피는 나무라 하여 '백일홍나무' 또는 '나무백일홍'이라 하던 것이 변해 배롱나무가 되었다. 한 송이의 꽃이 실제로 그렇게 오래도록 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는 거다. 그런 특징에 주목해 주로 경관수로 심고,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활용된다. 마침 정진규 시인의 '배롱나무꽃"이라는 시를 알고 있었다. 그래 오늘 아침 공유한다. 나도 산책 길에서 배롱나무 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배롱나무꽃/정진규 

어머니 무덤을 천묘하였다 살 들어낸 어머니의 뼈를 처음 보았다 송구스러워 무덤 곁에 심었던 배롱나무 한 그루 지금 꽃들이 한창이다 붉은 떼울음, 꽃을 빼고 나면 배롱나무는 骨格만 남는다라고 금방 쓸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다 너무 단단하게 말랐다 횐 뼈들 힘에 부쳐 툭툭 불거졌다 꽃으로 저승을 한껏 내보인다 한창 울고 있다 어머니, 몇 萬里를 그렇게 맨발로 걸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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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몇일 전 우연히 sns에서 만난 서울대 도서관에 붙어 있다는 8개의 문장을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 글을 읽었다. 이런 문장들이 학생들을 정글 속으로 집어 넣고 경쟁시키는 거다. 그런 학교 문법이 젊은이들의 사유 능력을 떨어트리고, '극우'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인문 운동가로서, 대체할 수 있는 인문 정신 이야기를 어제 하였고, 못다한 것들을 오늘도 이어간다.

서울대 도서관에 붙어 있는 다음과 같은  8가지 문장을 명언이라 한다. 이건 낡은 학교 문법이다. 시대가 바뀌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우연히 카톡에서 만난 거다. 
▪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 내가 포기한 그 순간, 누군가는 간절히 버티고 있다
▪ 남들이 나를 믿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나를 먼저 믿어야 한다
▪ 게으름은 잠깐의 달콤함 이고, 후회는 평생 간다
▪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나의 10년 후를 만든다
▪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 공부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 네가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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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 과연 공부가 뭘 까? 재미있게 공부하라!" 공부가 투자가 아니라, 살아감과 공부는 한 몸이다. 사람은 배우는 존재(호모 스투덴스, Homo studens) 이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선 배움이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할 줄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타고난 '할 줄 앎(양능良能)'과 '알 줄 앎(良知양지)'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를 배워 감으로써 삶이 꾸려진다. 배움은 이렇게 살아감의 시작이고, 살아감은 배움을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살아감이 자체로 배움이 되는 이유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한 번 배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편의를 위해서는 배운 바를 수시로 익히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며, 학(學), 그러니까 배움만을 기쁨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익힘, 즉 습(習)을 그에 합쳐 기쁨의 원천으로 제시한 까닭이다. 익힘을 통해 살아감 속에서 배움을 지속하여야 하는 것이다. 살아감이 배움인 이유이다. 그 이유는 또 있다. 배움의 주체인 나도 변하고, 내가 속해 있는 세상도 변하며, 학습 대상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더해가든 사회적 지위가 변하든, 내가 변하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도 변하니 이미 배운 바라도 다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젠 살아감의 차원에서 교육을 재구성해야 한다.

공부는 한 인격이 사회와 질서 안에서 규칙과 질서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적을 내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삶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등한시했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개인”이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마치 웅장한 건물을 지탱하는 한 장의 벽돌처럼. 그 위대한 개인이 되려면, 늘 공부를 하며 배워야 한다. 배움을 통해 매일매일 위대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이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일상 속에서 탈출해 자신에게 유일하고 진실한 자아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을 말한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그 성찰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을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러니까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재미 투성이'인 것이다. 오래 살았다고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꿈을 저버릴 때 나이가 드는 것이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리라.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지만, 열정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그러니까 열정을 잃고 사는 사람이 최고로 늙은 사람이다. 삶의 열정에는 마침표가 없다.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행운을 부르는 우연이 찾아오지 않아도 삶은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깨닫지 못한 인생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많은 우연으로 점철된 여행이라 할지라도, 여행의 목적지는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행길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더없이 큰 기쁨일 것이다. 미완성인채로 여행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삶에 재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그저 감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상은 즐거운 일들 로만 가득 차게 되고, 삶은 신나고 재미있어 진다. 인생과 연애를 하듯 살게 된다. 삶에는 이론이 없다.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그 때 에르스트 블로흐가 말하는 것처럼, 그때 "놀라움이 비처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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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데는 자격이 필요하다. 진정한 공부는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어떤 지식도 삶에서 드러나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그러니까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공허하다. 명성과실(名聲過實), 명성은 높으나 실속이 없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 머지않아 실속 없는 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경쟁과 효율을 위한 장치들을 덧붙이기만 해오던 우리 사회는 이제 다른 방향으로의 진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몸에 밴 서열화의 절차를 떨궈내야 한다. 평가와 서열이 소거된 바로 그 자리에서 예기치 않은 풍요가 싹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목수정의 담벼락에 만난 이야기이다. 텔레비젼의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은 예외 없이 경쟁을 기본 구도로 한다. 패자와 승자가 존재한다. 그것이 없으면 마치 우린 숨 마져 쉴 수 없을 것처럼. 승자의 얼굴에 비친 환희와 패자의 얼굴에 드리운 어둠을. 그 잔인한 이분법을, 인간의 능력을 기필코 계량화하고 서열 화하는 사회의 룰을  학습시킨다. 누구도 이 체계화된 경쟁의 구도를 피해갈 수 없을 것처럼. 그래서 개인적 여흥의 시간에서 조차 채점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가슴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에 가슴 께가 뻐근한 일만 많다. 가슴으로 행동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아껴야 한다. 가장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다"(이병률 시인). 어린 시절 못났던 친구들은 행복이며 인생이며 계속해서 삐걱거릴 것만 같았는데, 서정홍  시인은,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못난 것들"에게 점수를 주고 있다. 동감이다. 새침하게 공부만 잘했던 친구들은 자기 앞 바라지에만 정신을 쏟으며 비싼 척하느라 시야가 좁을 수도 있겠다. 공부는 지지리 못하거나 안 했어도 했어도 인정 많고, 사람 좋아했으니 세상에 의롭게 뛰어들 이는 어쩐지 ‘못난 것들’ 쪽일 것만 같다. 사람을 살린다는 말도, 세상을 살린다는 말도 그토록 당연한 말임에도 제대로 와닿지 않는 것은 흉흉한 분위기 탓이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고 멀쩡한 세상을 죽이는 시대가 아닌가. 흉기 난동 현장에 그때의 정근이가 또 민철이가 있었다면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이 시를 소개한 이병률 시인의 덧붙임이다.


못난 것들이/서정홍

이제야 알았네. 
수업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첫눈 온다고 창밖만 바라보던 정근이, 
꼴찌가 좋다며 툭하면 수업 빼먹던 민철이, 
부모 몰래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져 여섯 달 꼬박 병원 신세 지던 동준이, 
부모 이혼하고 난 뒤에 학비조차 내지 못하던 순식이...... . 
그 못난 것들이 겨우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말이야, 
틈틈이 못난 스승을 찾아와 위로하고 간다는 것을. 
그 못난 것들이 하나같이 땀 흘려 일해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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