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9일)
노자 <<도덕경>> 제 32장은 "도상무명(道常無名)"이 키워드이다. '도'는 늘 이름이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름 따위는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도'는 손대지 않은 통나무와 같다. '도'가 이름이 없듯이 통나무도 이름이 없다. '도'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같이 투박하고 질박하다.
사실 우리도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짓지 않는다. 엄마 배 속에서 내 이름을 고민해 들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남의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 조국, 내 고향, 내 얼굴 모두 내 의지가 동의한 적이 없다. 이름 하나 내 마음대로 갖지 못하는데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있다. 이름은 내 의지가 아니지만 내 이름 뒤에 '답게'를 붙이는 일은 내 의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최근 뉴스를 보면, 권력다툼에 직간접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익숙한 이름들이 스스로의 이름에 '금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경향신문>에서 '김택근의 묵언'을 읽었다. 김 시인에 의하면, 인간은 마지막까지 이름으로 존재한다. 누구나 이름으로 기억되고 끝내 이름 하나를 남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수도승들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스스로 지우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이름에 붙어 있는 '만(慢)'을 없애야 비로소 이름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만"가 들어가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이 4 개이다. 자만과 교만 그리고 거만과 오만, 이렇게 4 형제이다.
• 자만(自慢)은 자기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익숙해지면서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자만은 겸손함을 잃고 자신만만함이 도를 넘어서는 순간 찾아온다.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과신한 나머지 중심을 잃은 상태이다. 주로 자만은 허영심에 나오는 과시욕망에 사로잡혀 생기는 불청객이다. 자만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없애야 사라진다.
• 교만(교만)은 자만이 갖고 있는 자만심에 더하여 교태 스러움까지 겸비해서 시건방짐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만이 더 극에 달하면 교만해 진다. 교만은 자신의 지위 높음을 자랑하여 뽐내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뜻을 담고 있다. 자만은 자신감의 역기능으로 작용해 겸손함을 잃은 상태이지만, 교만은 타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못 봐줄 정도로 뽐내면서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교태(驕態, 아양)는 외양이나 태도가 아양(귀염을 받으려고 알랑거리는 말)을 부리는 것이다.
• 거만(倨慢)은 교만의 형이다. 거만은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기 위해 거들먹거린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교만이 자만심에 교태 스러움을 겸비한 자세와 태도를 지칭한다면 거만은 교태 스럽지는 않지만 행동거지 표정이 상대의 기분을 건드릴 정도로 업신여기고 지나치게 거들먹거리는 경우를 지칭한다.
• 오만(傲慢)은 자만과 교만 그리고 거만을 넘으면 그렇게 된다. 오만은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져 겸손함을 잃고 불쾌감을 줄 정도로 시건방지게 행동하는 불치병에 가깝다. 오만은 불손(不遜, 말이나 행동 따위가 버릇없거나 겸손하지 못함)과 교만은 방자(放恣,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짐)와 어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불손'하고 '교만방자'하다는 말을 사용한다.
이 4 형제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지위 높음에 자만하여 교만하기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행동거지의 거만함은 어른도 몰라보는 오만의 극치이다." "자신감이 자만으로 흐르기 전에 자기의 존재 이유를 파악하고 자존심에 상처받기 보다 자존감을 회복하여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기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참고로 자신감(自尊心, pride)과 자존감(自尊感, dignity)은 다르다.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김 시인에 의하면, 성철 스님은 이름의 무서움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한다. “실제로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날리면 이름병에 걸리고) 이름병에 걸리면 남들이 다 칭찬해주니, 그럴수록 이름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책을 좀 보아서 말주변이 늘고 또 참선이라도 좀 해서 법문이라도 하게 되면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데, 이것도 일종의 명예병이다.”
이름은 태어나 줄곧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죽어서도 이름은 남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름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셈이다. 이름은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니다. 남이 불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면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이름 감옥’을 벗어나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아무개’라고 제법 목에 힘을 주던 사람도/ 가을 잎 지듯 그렇게 죽고 나면/ 그 이름만이 뒤에 남아 홀로 떠돌 것이다.”(숫타니파타)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라서 그럴까? 아님 세태를 감지하는 내 안의 감각이 고장 난 것일까? 듣기도 보기도 싫어 저녁에 버린 이름들이 자고 나면 다시 솟아난다. 세상에서 지워질까 봐 안간힘을 쏟는다. 쌓인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려고 이름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싸우고 있다. 아무리 인걸들의 무용담이 사라진 시대라지만 지금의 유명인들은 참으로 왜소하다. 특히 우리 정치권에는 건강한 이름이 드물다. 주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잊혀지고 싶다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 머리통이 작은데도 큰 감투를 써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 국민과의 약속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팽개치는 사람,
• 앞에서는 정의를 외치면서 거짓말로 사법부 전체를 망치는 사람.
그래도 지난 주는 영화감독 박찬욱 그리고 수학자 허준이 교수 이름 때문에 한 주를 버텼다. 노자는 "이름은 만물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것이니 이름을 이미 얻은 후에는 대저 또한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始制有名(시제유명) 名亦旣有(명역기유) 夫亦將知止(부역장지지)" 이름을 얻은 후에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넥타이를 열 개 정도 장만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값이 싸다고, 무늬가 예쁘다고, 신상이라고 하나씩 더 사는 행위가 여식췌행(여식췌행, 먹다 남은 밥이나 군더더기 행동)이다. 서른 세 평 아파트를 장만했으면 충분한데 더 넓은 평수를 장만하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것도 여식췌행이다. 넥타이 열 개, 서른 세 평 아파트로 살림의 도가 완결되었으므로 그 후부터는 그러한 물건들이 주는 충족감과 행복감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 이후부터는 과도한 욕심이다. 기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 서민의 삶에서 볼 때 넥타이 열 개, 서른 세 평 아파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살림의 완결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면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것이 도에 합당한 삶의 태도다. 노자가 말하는 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본질을 이해하고 보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고 거기서 삶의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 <<도덕경>> 제32장의 주된 메시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늘의 시 대신, 오늘도 노래 하나를 공유한 다음에 이어가고, 블로그로 옮길 생각이다.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에 처해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바람의 빛깔(Colors of the Wind)' 가사 중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무얼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를 게시했다. "바람의 빛깔", 이 번안 곡은 누가 가사를 옮겼는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잘 풀어내고 있다. '이름 병'걸린 모두가 여러 반 잘 들어야 할 노래이다.
https://youtu.be/QV0Sml6o1AE
바람의 빛깔(Colors of the wind, 디즈니 에니메이션 '포카혼타스' OST)/오연준
사람들 만이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 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 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오연준 #이름병 #자만 #도덕경_32장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통 사람들의 품위는 완벽한 무언 가가 아니라, 일종의 중용이다. (5) | 2025.07.09 |
|---|---|
| 나는 <인문 일기>를 그런 뜻에서 매일 쓰고 공유한다. (0) | 2025.07.09 |
|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3) | 2025.07.09 |
|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그리 깊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5) | 2025.07.09 |
| '읽기'란 자기 자신만큼 읽는 것이다. (4) | 2025.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