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2일)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자신의 저서 <<장인(The craftman)>>에서 우월한 천재와 열등한 장인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했다. 그는 고귀함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일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세심하게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할 때, 손으로 하는 작업 역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있어 장인 정신에서 요구되는 헌신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고 주장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사적(私的)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정성스럽게 하고 싶어서 무슨 일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게 하고 싶은 자신을 만들 때, 그런 헌신은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간결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커왔다. 부모와 학교로부터 '해야 하는 재미가 없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신나는 일'을 교육을 통해 세뇌를 받으며 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완수해야 할 한 가지 고유한 임무가 있다.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는 고독을 통해, 그 임무를 터득하고, 아니면 스승을 통해 지도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어려 서부터 동료 들과의 경쟁 속에서, 자발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일보다는, 부모와 친구들이 좋아하고, 대중이 흠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직업을 선택하여 인생을 보낸다. 만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의도적인 일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신명(神命)도 창의성도 없다. 신명은 깊은 몰입을 통해 들리는 신의 목소리이고, 창의성은 온전한 집중을 통해 등장하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것만이 내 관심이다. 우리 모두는 고유(固有)하기 때문에, 세상에 하찮은 일은 하나도 없다. 어떠한 일을 하든, 진심으로 헌신하고 노력한다면,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유하고 귀중한, 즉 고귀(高貴)한 일이 된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말을 오늘 알게 되었다. 이 말은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감각이 인지의 일부분이 된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은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인지 과정에서 몸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들이 몸에 투영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모습을 보면, 몸으로부터 들어오는 물리적 경험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체화된 인지"는 '몸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으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로 최선을 다하고 타인들과 교류할 것을 말한다. "체화된 인지"의 가장 유명한 실험으로는 2008년 예일대 심리학자인 존 바그의 실험이다. 따뜻한 커피나 차를 들고 있는 학생들이 찬 커피나 차를 들고 있는 학생들 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더 긍정적인, 따뜻한 평가를 하는 경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하찮은가? 평범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높은 것과 낮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가치를 속단하지 않기 위한 공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철학자가 에마뉘엘 레비나스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을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는 행위를 비판하고, 성급한 판단 을 경계했다. 그는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복잡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안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을 섣불리 판단할 때, 타인은 통제되기 쉽고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평면적인 인물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그의 책, <<전체성과 무한>>에 나오는 말이다. "말로써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은 어떤 사유가 가져다 준 관념을 줄곧 압도하는 표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나의 능력 밖에 있는 타자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타자에 대해 무한의 관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레비나스는 언제나 타인의 우위에 서고자 하는 자아, 타인과 비교하려고 하는 자아를 초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타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고유한 주체이며, 차이는 창의력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타인을 우리와 닮은 또 다른 자아로 인식하려 하듯, 우리의 자아는 우리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만남을 통해 변화한다는 거다.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세상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세상을 관찰하는 공간을 발견하는 사람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그런 감수성의 공간을 발견하는 경이로움과 멈춤의 장소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인간이 타인을 위해 멈춰 서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레비나스는 "윤리적 주체"가 되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윤리적 주체"란 타자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타자 중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어쨌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덕목은 '선(善)'이다. '선'이란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라'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만 생각하고, 나의 욕심에 따라 나 밖의 것을 내 것으로 자기 화하지 말고, 타자에로의 초월로 타자가 보내는 호소에 응답하는 것이 '선'이다. 나쁜 사람은 '나 뿐만'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사적인 욕망보다 이를 위해 도덕적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양심의 압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레비나스의 철학, '타자 윤리학'을 다음과 같이 5단계로 잘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이를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기의 5단계라고 부른다.
1. 'Il y a(일리야)"라는 존재의 심연(웅성거림만 존재하는 '거기 있음'의 세계)
2. 향유를 통한 이기적이고 주체적 자아 (주체적인 동일성 세상에서의 향유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초월)
3. 타자에 대한 환대와 타자의 얼굴을 통한 관계적 만남-나는 이를 '접속'으로 이해한다.
4. 타자 학습을 통한 타자 되기(이를 통해 타자의 세상이 드러남)
5. 많은 타자를 통한 무한의 경험 (무한의 세상을 목격)을 통한 "윤리적 주체"로 거듭남.
정리하면, Il y a(일리야, '거기 있음') → 향유 → 환대, 얼굴 → 타자 되기 → 무한 경험을 통한 윤리적 주체가 된다.
1에서 2로 초월: '그저 있음(Il y a)'의 세상에서 초월해서 사랑도 해가며 삶을 향유도 해가며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도 해가며 미래를 대비해가며 집에 소유도 축적해가며 사는 삶으로부터 초월하여 자신의 주체적 자아를 찾는 일이다. 향유를 통한 주체성과 동일성으로 쌓인 재현의 세상을 통해 내 영혼이 부르는 길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는 거다.
3에서 4로 무한의 세계로 확장: 자아실현을 넘어선 타자 되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자의 얼굴에 대한 환대가 제대로 자신의 주체성을 초월하여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타자의 세상은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고, 부모를 잘 만나 세상의 행운을 다 향유해 온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낮춰 타자를 환대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세상이다.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현현(ephiphanie)된다. 타자의 세상이 그냥 모습이 드러난다. 이 때, 잘난 사람들이 자신을 낮출 때 타자는 그 잘난 이들에게 스승이 된다. 행운을 만끽해온 장본인인 나는, 타자를 환대해가며 타자 되기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 재현에 의해 구성되었던 우주에 균열이 생기고 이 균열을 빠져나가, 무한의 세상을 목격하게 된다.
4에서 5로 "윤리적 주체"로 거듭 남: 환대를 통한 무한의 세계를 경험하면, "윤리적 주체"로 거듭난다. 다시 말하면, 환대를 통해 향유하는 주체가 초월 되어 "윤리적 주체"가 될 때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타아(他我, 윤리적 주체)" 실현의 강한 무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이야기이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전제가 있다는 거다. 몇 차례의 초월을 통해서 "타아(윤리적 주체)" 실현의 세상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일리야"의 세상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현존재가 그냥 "타아" 실현할 수 있는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그건 상호작용에 뛰어들어 자아와 단절되고 타자와 합일되는 지점에 도달하면, 비로소 자신에게서 탈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또한 박애 정신에 바탕을 둔 이런 추월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연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어지는 이야기를 내일로 넘긴다.
7월이면 늘 기억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편을 공유한다. 오늘은 모처럼 서울에 일이 있어 일찍 나간다. 그리고 오늘의 일정은 저녁 늦게 끝난다. 오늘은, '타자 되기'로 "윤리적 주체"가 되어, 무한의 세계를 만날 생각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지난 주 아침 산책길에 만난 치자 꽃이다.
7월은 치자 꽃 향기 속에/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 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렐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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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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