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23일)
1
품격은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타인 앞에 드러나는 나의 태도가 곧 나의 수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품격은 겉모습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거다. 옷차림이나 말재주보다, 마음의 깊이와 관계의 방식에서 드러난다. 그런 사람은 화를 쉽게 내지 않는다. 감정에 끌리지 않고 상황을 먼저 살핀다. 자존심보다 관계를 중시하고, 말보다 침묵이 힘이 될 때를 안다. 품격 있는 사람은 분노보다 여유로 자신을 증명한다.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또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반대말은 '결핍'. '모자람, 분주함', '초조함' 등이다. 여유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거나 시간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유라는 개념은 자신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의 반대말인 결핍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원인이 있다. 그리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려면 자신이 지금 무엇에 쫓기고 있는 지부터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 진다.
노자는<<도덕경>>제 48장에서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라는 말을 한다.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라는 뜨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 '도'로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한다. 남보다 빨리 갈 필요도 없다. 조금 느릴지라도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삶, 경쟁에 밀릴까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2
품격 있는 사람은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남의 사정은 깊이 들여다보기 전까진 결코 알 수 없다. 겸손하게 듣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태도는 진짜 내면의 힘을 보여준다. 그래 일상에서 타인에 대한 '판단 중지"를 해보자. 스캇 펙(Scott Peck)은 '괄호로 묶기"라 했다.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 이전에 행동하던 것과 달리 행동하는 것은 모험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괄호로 묶기"라며,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확대와 결국에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교에서는, '판단 보류의 영성'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라 하자'는 것이다.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자'는 말이다. '판단 보류', 나도 이것을 실천하려고 늘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한 데, 잘나면 얼마나 잘났을까. 인간이 한 세상 사는 동안 서로 연민하며 사는 것 밖에 없다." (이해인 수녀님)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겸손, 자기의 약점을 항상 자랑할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이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다 비슷비슷하다.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잘 안 되지"라며 연민의 정을 갖는 는 거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낫냐" 며 당당해 하는 거다.
그리고 판단 중지하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건 진심으로 듣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련이기도 하다. 나는 '판단 중지'라 말한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 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 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합일은 실제로 우리 자신을 확장하고 확대하는 것이어야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늘 새로운 지식은 획득 된다. 더욱이 진심으로 듣는 것은 "괄호로 묶기", 즉 자신을 제쳐주는 것이므로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고 듣는 이에게 마음 속에 간직했던 것을 개방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2인 춤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3
품격 있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킨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안다. 함부로 나서지 않고, 맡은 책임을 묵묵히 해낸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결국 신뢰를 얻는다. <<주역>>의 핵심은 관계론이다. '길흉화복'의 근원은 잘못된 자리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내가 있는 '자리', 즉 '난 누구, 여긴 어디'를 묵상하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직위(職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위치까지 확장되는 용어이다. 한문으로 하면 '위(位)'이다. <<주역>>에 따르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득위(得位), 그렇지 못한 것을 '실위(失位)'라 했다. 득위는 만사형통이지만, 실위는 만사 불행의 근원이다. 잘못된 자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한다. 벼슬길에 나가는 사람은 자세가 중요하다고 맹자는 강조를 했다. 이 문제는 벼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서로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내가 그 상대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 문제이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군자도 도에 뜻을 둔 이상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다." 대선 후보이든, 나같은 평범한 사람도 내 자리를, 내 위치를, 내 웅덩이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 한다.
능력이 못 미치는 자리에 욕심을 내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운 좋게 능력을 넘어선 자리를 얻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실위'가 된다. 고 신영복 교수는 "사람이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본인이 가진 능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담론>>)고 말했다. 나는 이 주장을 '그릇 론'이라 한다. “30 정도의 여유, 30 정도의 여백이 창조의 공간이 된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 받는 자리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 난다.” 또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자리와 관련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지위의 권능을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자리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히말라야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동상(凍傷)이 아니라, 산 아래 평지에 살아 아주 작게 보이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는 부단한 성찰과 겸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꾸준한 엉덩이의 힘으로 성실함과 진정성이 더해지면, 자신의 자리는 있는 그대로 자 자리에서 빛난다.
4
밥그릇을 씻으며/성명진
한 끼 분인
밥그릇 속이 깊다
밥 한 그릇이면
슬픔을 면하고
죄 짓는 일을 피할 수도 있겠지
요만한 깊이라면
발을 헛디뎌 넘어질 만한
함정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힘들게 살아가는 자라
밥그릇 속에 주먹을 넣어 본다
아니다
손을 펴 밥그릇을 씻어준다
톡,
두드려 주기도 한다.
5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품격은 자기 자신을 단단히 가진 사람이 풍기는 기운이다. 함께 있을 때 상대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편해지는 사람이 진짜 품격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불편하게 살며, 고행(苦行)을 기꺼이 한다. 그것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근본(道)'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따른다. 근본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본마음(바탕)을 터득한 것이다. 도가에서는 이런 본마음, 즉 존재의 근본 상태를 '덕(德)'이라고 표현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을 갖는다. 타인들은 이 사람을 추종하고 싶어 한다. 중후함이 경박함을 흡수하는 이치이다. 기능적인 활동에 갇힌 사람은 편한 것을 추구하며 가벼운 잡담과 비교 욕망에 빠져서 자신의 본바탕을 놓치고 가볍게 흔들린다. 이는 가벼운 기능과 비교와 잡담에 빠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성스러운 어떤 본바탕을 상실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상태를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빠져 달아나 버렸다"고 말한다. 여기서 존재는 바로 존재자의 고향이자 덕이 활동하는 곳이다. '불편'을 자초하면서, '덕'이라고 불리는 본바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키우는 일이다. 이 '덕'의 유지가 바로 인간을 기능적 활동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인간으로 서게 만든다. 눈 앞의 편리함을 위해 공공의 책임감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은 경박함이다. 이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가 덕이 있는 자이다. 여기서 매력과 존경이 생길 뿐 아니라 비범하고 특별하며 위대한 일들도 덩달아 일어난다. 고행은 육체의 고통을 견뎌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수행이다. 몸을 괴롭게 하여 마음에 매달린 온갖 애착과 욕망을 끊어버리는 수행이다. 시인은 그 수행의 본보기를 겨울나무에게서 본다. 톱질 몇 번이면 쉽게 넘어가는 나무. 한 발짝도 움직일 줄 모르는 나무. 땔감이 되든 의자가 되든 사람이 가공하는 대로 물건이 되는 나무. 그 힘없고 하찮은 나무가 맨몸 하나로 강추위에 맞서고 있다. 찬바람 눈보라를 제 몸에 깊이 새기고 있다. 가혹한 추위를 꽃과 열매와 향기로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나무는 해마다 고통이 어떻게 희망으로 바뀌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수행의 경전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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